북적북적 시끄러운 클럽의 어두침침한 구석 자리에 둥글게 모여 앉은 사람 속에서 쓰디쓴 알콜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동료이자 적인, 친구이자 라이벌인, 공유자이자 원수인 사람들끼리 오붓하게 둘러앉은 자리는 왁짜지껄 시끄러웠다. 큭, 오늘 술이 다네. 형형색색의 불빛에 눈이 아롱아롱 왔다갔다 어지러웠지만 정신은 말짱했다. "사하, 오늘의 챔피언에게 한마디 해주는게 어때?"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끼여서 앞이 희뿌옇게 번져있었다. 그러나 형광핑크와 딥블루의 엄청난 조화를 보여주고 있는 불빛만은 그 뿌연 연기속에서도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상대에게 말을 할때는 얼굴과 눈을 마주해야 하는게 일반적이지만 나는 "Fly" 라고 써진 조형물을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난 네가 재수없어" 독한 알콜 때문에 맛이 가버린 목이 걸쭉한 음을 냈다. 나의 말이 끝나자 주위가 잠시 쥐죽은듯 가라앉더니 곧이어 '휘이익-' 하는 휘파람 소리부터 '여어어~' 하는 야유 소리까지 산발스럽게 뒤척거렸다. 나의 싸가지 없는 말을 직격탄으로 들은 그러니까 오늘 무슨 대회였더라? 가만가만 머리가 왜 이렇게 어지럽지? 앞이 휘청휘청 마구 흔들리고 있었지만 꿋꿋하게 하던말을 이어나갔다. "진짜 짜증나, 한대 패줬으면 속이 시원하겠어" 3월 7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2004년 포뮬러 원의 첫번째 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움켜쥐고 샴페인 펑- 펑- 터트린 파일럿에게 나는 뒤틀린 속을 고스라니 내비췄다. 파일럿, 비행기를 조종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F1 드라이버를 Pilot 이라고 부른다. 특별한 이유는 알수 없지만 모두들 그렇게 부르니 나도 그렇게 부른다. "정말 정말 정말 재수없어" 2등은 필요없다. 1등만이 존재하는, 그리고 자본주의적 줄기가 서슬퍼렇게 도사리고 있는 스포츠 아닌 스포츠가 F1이다. 그곳에서 늘 2등, 2등, 2등 만 하는 나로써는 눈앞에서 매일 우승트로피를 빼앗아 가는 저 강철같은 인간이 싫을수 밖에 없다. 그리고 더불어서 찰떡 처럼 붙어다니는 그의 파트너도 더없이 싫다. 아우, 재수없어. "사하, 괜찮아?" 누군가 내이름을 부르며 어깨를 툭 쳤다. 정신은 말똥말똥한데 몸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테이블 쪽으로 꼬꾸라지더니 '콰당' 소리를 내며 머리를 찧었다. 그리고 다음순간 나는 긴 어둠의 터널 속으로 빠져들어가 아까 못다한 질주를 하고 있었다. 아, 정말 아까웠다고! 더이상 2등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썅, 나도 1등하고 싶어!!!! 왁자지끌한 소음, 한무리가 나를 누군가에게 넘겨주는 소리, 웃음섞인 저질농담, 그리고 한숨짙은 욕지껄이가 들렸지만 난 눈을 감은체 까만 어둠속에서의 질주를 멈추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다. 상쾌한 밤바람에 알콜냄새가 실려왔다. "......" 새하얀 햇살이 창을 통해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이상하다. 밤이였는데, 조금전까지 대회 하나를 마치고 다음 경기장소로 옮기기전 뒤풀이를 하기위해 선수들끼리 모여서 친목을 다지고 있는 연기 자욱한 클럽에 앉아 있었는데 햇살이 비추는 아침이였다. 눈이 부시다. 여긴 어디지? 그리고 이건 누구지? 누군가 뒤에서 내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데 촉감이 생소하다. 당연하지 난 누구랑 못잔단 말이다. 부스스. 몸을 일으켜 앉아 1도씩, 1도씩, 1도씩 고개를 움직여 나를 부둥켜 안고 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괴물이 되어 버렸다. 에드 아야톤 프로스트-!!!!!!!!!!! 컬컬한 목이 갈증을 호소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경악했다. 상체가 맨몸이라 '설마' 하며 이불을 슬쩍 들쳤는데 브리프까지 몽땅 벗겨져있다. 오, 마이 갓! 그리고 옆에 누워 곤히 잠자고 있었던 그리고 아직도 잠을 자고 있는 인간은 어제 내가 싫다, 싫다, 싫다 노래를 불렀던 녀석 역시 실한올 걸치지 않고 맨몸이였다. 남자 둘이서 맨몸으로 끌어안고 잤다고? 이건 거짓말이야! 거짓부렁이라고!!!! 창문을 열고 '현실이 아니야-!!!!'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옷을 찾아 입는게 먼저 해야할 일이다. 부스럭, 부스럭. 내가 한번 움직일때마다 부산스러운 소리가 울렸고 죽은듯이 잠자던 원수가 눈을 스르르 뜨는게 보였다. 침대 아래에 몸을 숨기려다 '쿠당' 무릎을 찧는 바람에 더욱 눈길을 끌게 되버린것은 절대로 실수였다. 저벅, 저벅, 이쪽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고 난 어쩔줄 모르는 공황 상태에 빠진 머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열심히 마인드 컨트롤에 들어갔으나 '후두둑' 머리위로 떨어지는 술냄새 확 풍기는 옷가지에 버둥버둥 거리다 다시 한번 바닥에 '쿠당' 몸을 헌사해야 했다. 씨발새끼 조용히 가져다 주면 어디가 덧나냐? 800마력, 최고 18,000RPM에서 나오는 엄청난 굉음과 평균 시속200Km와 최고시속 300km가 넘게 달리는 차를 장난감 다루듯 가볍게 제어하는 이상적인 포뮬러 원 파일럿이 가져야 하는 자질, 대담성, 철저한 에고이즘, 순간 반응력, 철저한 자기 관리, 트랙을 읽는 능력, 지능, 본능, 끈기, 철저한 완벽성, 새로운 테크닉에 대한 갈증, 그리고 기계에 대한 무서운 감각을 고루 갖추고 계신 F1 계에 뜨고있는 신성이자 서킷의 황태자인 에드 아야톤 프로스트. 그래 이놈의 본성은 술취해 쓰러진 놈을 홀라당 벳겨서 끌어안고 자는거였군. 거참, 특이한 취밀세. "루이스 사하 이젯-" 루이, 사하, 이젯, 모두 나의 이름이 맞았지만 글쎄- 내 외모는 저런 버터냄새 나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동양계다. 불렀으니 대답을 해야하나? 음산하게 목소리 깔고 나의 이름을 부른 에드 인지 아야톤인지 프로스트인지 하여간 셋중에 하나인건 확실한 서킷의 황태자께서는 바지 하나만 달랑 입은체였다. 난 옷을 던져주자 마자 허겁지겁 입어서 모두 옷을 입을 상태였다. "왜" 어제 모든이 앞에서 재수없다라고 말한것에 대해 보복이라도 할셈인지 에드의 얼굴이 뭐랄까 굉장히 시니컬하다. "어제 밤에" 아, 역시 그걸 말할셈? 난 옷차림을 한번 더 점검하고 이곳을 떠날 채비를 했다. 뭐 내가 저녀석 싫어하는건 유럽 사람이라면 다 알아. "스트립쇼 잘봤어" 꾸엑! 뭐? 느긋하게 말을 건낸 에드는 침대 끝에 걸터앉더니 담배 하나를 문다. 스트립쇼라니! 스트립쇼라니!!!!!?!! 완전 패닉 상태가 되어버린 내 얼굴을 그제서야 눈치를 챈건지 목넘어 '큭' 웃은 에드는 뭐랄까 약점 잡았다 라는 표정으로 달콤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내가... 스트..." 그럴리가 없어. 난 이래뵈도 정도를 걷고 있는 훌륭한 F1 파일럿이라고. 돈이 부족한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비정상적 취향을 가진것도 아닌 내가 옷을 훌렁훌렁 벗어재끼는 그런 스트.. 했을리가 없어. 난 스트까지만 말하고 다음을 차마 잇지 못해 입을 꾹 다물었다. "어디까지 기억해?" 후- 담배를 맛있게 물은 에드는 눈꼬리를 휘며 즐겁게 물었다. 아주 살짝 정말 정말 열심히 봐야지만 보이는 그 눈꼬리의 휨은 조그만 변화였지만 철근으로 만들었지 싶었던 에드의 이전모습들을 깡그리 잊게 할만큼 부드러워 보였다. 뭐 그래봤자 재수 옴붙은건 똑같다. 옴팡지게 짜증나게 만드는 얼굴이랄까. 내게 있어서는 그렇다는거다. "술먹고 테이블에 머리 박은거 까지" 그리고 그 다음에 누군가들이 나를 정체불명의 녀석에게 척하니 넘겨주며 웅얼 거린것도 기억했지만 거기까지 다 설명할 필요는 없을것 같다. 나를 받아든 정체불명의 인간은 에드인것 같으니 말이다. 내 간결한 대답에 에드는 턱을 쓰윽 훑더니 눈을 반짝인다. 어이, 난 너 싫어하거든. 어제 세번이나 강조해서 말해줬잖아. 빨리 대답하고 이만 서로의 갈길로 가자고. 대답을 재깍재깍 하지않고 시간을 음미하듯 느그적하게구는 에드의 모습에 짜증이 파르르 일어났다. 확 승질같아서는 몇대 패줬음 정말 좋겠대도. "너희 팀원한테 너를 넘기려고 했는데 다들 뒤풀이 가고 없길래 여기로 데려왔었어" 잠깐 그럼 밖에서 스트... 를 한게 아니라 여기서 스트... 를 했다는거야? 심장이 꽉 옭죄이는 기분이다. 내가 미쳤었나. 아니 어쩌면 지금도 미쳐있는걸지도. 왜 이 내가 에드 아야톤 프로스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거냐고! 그 생각이 들자 난 더 들을것 없이 돌아서려고 했고 그런 내 귀에 에드는 한마디 날렸다. "다음에는 스트립쇼를 하기전에 너무 술 많이 마시지마. 냄새는 좀 역겨웠어" 그리고 다음은 '크하하하하-' 통쾌한 웃음소리. 뒤돌아가서 멱살쥐고 짤짤짤 흔들어 줘버렸으면 좋겠지만 나는 코웃음 한번 치고 내가 잠시 돌아서 술주정을 험하게 했나보군 하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문을 열고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마치 바깥세상과 에드의 방이 서로 다른 세상이라도 되는냥 경계를 긋듯 문을 지나쳤다. 그리고 에드를 바깥세상에서 차단시켜 버리겠다는듯 문을 거칠게 집어 당겼다. [타앙-!!!!!!!!!!!!!!!!!!!] 무례한 모습을 보인것에 대한 사과는 다음에 좀더 이성적이 되었을때 하는것이 좋겠다. 지금 들어가면 살인날것 같으니까 말이지. 개새끼. 다음 경기에서 보자고. 죽여버리겠어. 살심이 부쩍부쩍 자라고 있었다. 탁탁탁탁 발을 재빠르게 놀려 달렸다. 계단을 오르고 좁은 복도를 지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음침한 분위기 속에 화려한 조명이 번뜩이는 클럽 안이 보였다. 빈테이블 몇개가 산발적으로 있는 곳을 보니 특유의 구석 저깊은 자리에 별로 반갑지 않은 이들이 오글오글 모여있는게 보였다. "니들 무슨짓 한거야?" 도착한 나를 보며 손을 들던 녀석들은 테이블 정중앙 자리에 앉아있는 그러나 완전히 술에 쩔어 반쯤맛이 가버린 에드 아야톤 프로스트를 무슨 경매 상품 마냥 두손으로 '슥' 가리키더니 영업용 스마일을 지어보인다. 이것들이 단체로 돌았나, 무슨짓을 한거야? 포뮬러 원은 돈이 많이 들고 또한 돈이 많은 변수가 된다. 페라리, 메르체데스, 베네통, 도요타, BMW, 알파 로메오, 맥라렌 등은 기업에서 자금줄을 대고 스폰서를 주선한다. 기업이 조직한 레이싱 팀인 이들은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막강한데 그런 이유인지 한팀 안에 여러명의 파일럿을 두고있다. 그중 일등 파일럿이 있고, 이등, 삼등 파일럿이 있는데 에드는 두말할것 없이 일등 파일럿이다. 소란스럽고 그러면서도 음산한 이곳에는 이들 팀의 일이삼등 파일럿은 물론 이와는 반대로 돈많은 개인이 팀을 조직하는 파일럿까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술이 떡이 된 에드를 둘러싸고 있었다. "자 그럼 손님이 다 왔으니 한번 해볼까?" 무슨일이야? 도대체가! 라는 나의 눈빛에 데릭은 손가락으로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보기 시작하는 폴을 찔러댈뿐 별달리 설명이 없다. 어리둥절해 하는 나와는 반대로 모두들 즐거워 보인다. 지난 멜버른 대회 이후로 대인기피증을 빙자한 에드놈 피하기를 하는사이 무슨일이 있었던건지 오늘 있었던 경기에서는 예외적으로 에드를 집중 공략한 이들이 천하무적 에드에게서 우승트로피를 채간것이다. 나는 오늘 이들의 뒷풀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을 작정이였다. 그런데 저녁 호텔방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내게 녀석들이 단체로 전화를 걸었다. '재밌는 일이 있다' '에드를 팔아 먹겠다' '동참해' 라고 소리를 지르는 놈들의 계략에 휘말린 나는 '팔아먹는다고?' 라며 놀라서 헐레벌떡 뛰어온것이다. 반쯤 흐물흐물 흐느적 거리는 에드는 나를 보자 피식- 웃는다. 완전히 나사가 빠져버렸구만. 난 본인한테 묻는게 가장 확실할것 같다고 생각했기에 잘나신 에드 아야톤씨를 툭툭 쳤다. 한번 김새는 미소 짓고는 눈을 감아버린 에드는 나의 툭툭 거림에 눈살을 찌푸리며 눈을 뜨더니 멍하다. "무슨일이야?" "저 나쁜새끼들... 음... 날 남자한테 팔겠다던데... 웃기지도 않는다고 했더니... "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자동차에 올라서 뺑뺑이 도는 거라고 포뮬러 원 파일럿을 만만히 보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한달에 최소 2경기 최대 3경기를 소화하는 3월부터 10월까지 빡빡한 일정이 잡혀있는 포뮬러 원의 정규시즌 18전을 모두 소화하려면 엄청난 체력이 필요하다. 18경기를 다 참석해서 기록 안에 드는것도 엄청난 것인데 대회 우승트로피의 반을 휩쓸다 시피하는 에드를 남자한테 판다니 그 무슨 지나가는 개가 비웃을 이야기인가. "바레인 경기를 두고 내기하자고 하더니 오늘 나만 집중공략 하더군. 아, 치사한새끼들.. 음" 그런데 술은 왜 이렇게 많이 먹은거야? 에드는 대충의 정황을 설명한 뒤 술기운에 취해 또다시 옆으로 펙- 꼬꾸라졌다. 한편 클럽 중앙에서 폴이 비싼값에 에드를 팔기위해 계략을 펼치고 있었다. 이봐 폴 여자라면 음, 술에 쩔어버린 이상태의 에드라면 좀 문제가 될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여자라면 돈내고 경매에 참석하겠지만 남자가 과연 참석할까? 응? "음음음, 남성 여러분. 저기 멋진근육으로 짜여진 (탕) 이시대 최고의 명 파일럿 (탕)" 폴은 테이블 하나를 탕탕 쳐가며 되지도 않는 판촉을 벌이기 시작했다. 쿵쾅쿵쾅 울리던 음악은 꺼져있는 상태고 술렁술렁한 내부에는 여자들은 관전하는 사람들 처럼 흥미진진한 표정에 남자들 중 몇몇은 어디다 열심히 전화기 다이얼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 '우와아아아아아-' 하는 특수 함성효과를 내고 있는 나의 동료들은 대략 무시하도록 하겠다. "에드 - 아야톤 - 프로스트 -! 를 2달러 부터 시작, 오늘의 경매품에 올려놓겠습니다!!!! (탕탕탕)" 쿠엑! 2달러라고? 얘가 한달에 벌어들이는 비정규 상금에 광고료가 얼만데 지금 2달러라고 했어? 하하하 나는 황당함에 기막히다는 웃음을 지었고 사람들은 상품인 에드를 유심한 눈으로 훑어보고 있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프로스트 연합팀에 연락을 할걸 그랬나. 지구촌에 30명도 채 되지 않는 F1 파일럿 중에서도 단연 최고품이라고 할수 있는 녀석을 단돈 2달러에 판다니 말이 되냐고!!?!! "2달러" 에드 아야톤 프로스트 헬밋값도 2달러는 더나가! 난 기가 막혀서 말을 못하고 있는데 점점 경매가는 올라가고 있었고 서킷의 황태자는 술에 취해 널부러진 상태 고대로였다. 오, 하느님. 저 덩치큰 녀석이 지금 경매의 최고가를 부른것이 진정 현실입니까? 녀석들이 나를 왜 부른지 알것 같다. 나보고 사라는 이야기다. 민간인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나보다 많을 가능성은 적다. 스카웃비 랭킹 2위인 (1위는 당연한거지만 에드다) 내게 지금 경매가는 쇼핑한번 하는것보다 싸게 치는 값이다. "더 없습니까?" 폴은 능글능글 맞게 질문을 했다. 미우니 싫으니 재수없으니 피하느니 해도 같이 트랙을 달리는 서킷의 흥분을 공유하는 사람 중 하나다. 저런 오우거 같은 무식한에게 넘겨주기는 걱정스러운거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왜 이 재수없는 놈을 위해 피같은 내돈을 지출해야 하냐고! 그냥 사이좋게 지내라고 한마디 하면 될것을! 꼭 이렇게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냐고 당신들은!!! 난 처절하게 이를 갈았고 성질을 누끄러뜨리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1000달러-" 고요한 클럽 내부에 피곤에 지친 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술먹어서 널부러져 버린 포뮬러 원 파일럿에게는 1000달러도 어마어마한 가격이지만 상대는 에드 아야톤 프로스트다. 기본 예의는 지켜줘야 되는것 아니겠어? 그리고 녀석이 깨어나면 반드시 이잣돈까지 붙여서 돈을 되돌려 받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예에- 낙찰됐습니다!!! (탕탕탕)" 으이구 아주 신들이 났구만. 오우거 녀석은 나를 험한 눈길로 노려봤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 더 걱정은 에드를 어떻게 할것인가가 더 문제다. 트랙에서 조져버리려고 했는데 이상한걸로 조지게 생겼는걸. 망연하게 에드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폴이 툭 치곤 한마디한다. "즐거운 밤 되어~ 사하" "지랄마셔, 폴-" 179센티 결코 장대한 키라고 할순 없지만 절대 짧지도 않은 기럭지인 나라도 180센티를 너끈하게 넘는 에드 아야톤을 짊어지는것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거움이다. 이새끼가 뼈속에 철근을 박았나 뭐가 이렇게 무거워! 에드를 오른쪽 어깨로 부축하듯 들고 한걸음씩 걷고 있는데 참으로 짜증나는 일이 아닐수 없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이녀석을 버리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버리고 싶으나 그럴수가 없다. 하루에 최하 3시간씩 체력훈련한 나의 자존심이 그런 행동을 허락할수가 없다. "웃쌰-" 헤에- 겨우 다왔다. 호텔에 들어왔으니 이제부터는 끌까? 생각도 했지만 호텔이란 자못 비밀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곳이지만 실제로는 비밀이란게 없는 곳이다. 곳곳에 달린 감시카메라와 24시간 서슬퍼렇게 눈뜨고 있는 호텔리어들 때문에 나는 눈물을 머금고 에드를 다시 부축했다. 젠장, 너 내일 일어나면 나한테 좀 맞아라 새꺄. 그렇게 원한 사무치는 에드를 침대에 던져놓고 나도 던져지듯 그옆에 누웠다. 그리곤 불도 끄지 않고 잠들어 버렸다. 피곤한 밤이였다. 움칫. 멈칫. 부스럭. 부스스. 눈을 감은체 였지만 옆에 누워있는 사람의 움직임이 감각을 통해 고스라니 전해졌다. 이 상황은 언젠가 어디에서 한번 겪은적이 있는 것으로 포지션이 반대가 되긴 했지만 꽤 낯이 익은 광경이였다. 술에 먹고 뻗어버렸는데 눈을 떠보니 햇살이 내리쬐는 아침. 옆자리에는 싫은 사람이 누워서 함께 잠을자고 있었다. 더욱이 서로가 서로를 꽉 끌어안은체 말이다. 스르르.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분주히 둘러보는 에드를 누운체로 빤히 쳐다봤다. 놀랐지 새꺄? 놀랐을꺼다. 그것도 엄청. 나도 당해봐서 알아. 피식. 부스스 내가 몸을 일으키자 화들짝 에드가 놀란다. 호오, 언제부터 그렇게 놀라는 감각까지 익혀두셨데? 뭔가 상당히 재밌어진 나는 미소를 지었다. 잠시 상황을 정리해 보자. 난 어제 에드 아야톤 프로스트를 무려 1000달러나 주고 샀다. 그러므로 녀석은 내꺼다. 흐음, 이거 상당히 재밌는게 아니라 대단히 즐거운 기분이 든다. 대화는 대략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떻게..." 그쪽이 그런 질문을 하신다면야 나도 같이 맞수를 때려야 하는거겠지. 물한잔을 쪼르륵 따룬 뒤 에드에게 내밀자 녀석은 물잔을 흔쾌히 받아들었다. 당연하지 술먹고 난 다음날 목이 엄청 칼칼하다고. 자신의 완전히 구겨진 옷을 본 에드는 나를 한번 힐끔 보더니 상당히 의미심장한 표정이 되었지만 상관치 않고 내가 할말만을 해주었다. "어디까지 기억해?" "네가 클럽에 온것까지" 어디선가 들어본 질문에 에드는 물을 탈탈탈 비우며 깔끔하게 대답을 했다. 고압적인 자세는 거기까지라네. "혹시 그거 알아?" 나의 느그적한 질문에 녀석은 '글쎄' 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아아, 모르나보군. 헤헤헤. 난 아는데. "에드 아야톤 프로스트가 어제부로 1000달러에 내껄로 낙찰됐다는거 알아?" "풉-" 물을 한잔 더 따뤄마시던 에드는 푸르륵- 물을 입밖으로 뿜어냈다. 아, 추해. 더럽다고. 역시 돈으로 환원받고 소유권을 넘기는게 좋으려나? 이자는 하룻치지만 많이 받는게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어제 폴이 찍어준 낙찰 확정을 기념하는 인증마크가 커다랗게 찍힌 기념사진을 지갑에서 빼내보였다. 그것을 본 에드는 어이없다. 웃긴다. 놀고있다. 죽을래. 미쳤냐. 돌았군. 이런 싸이코들. 이란 얼굴이 되었다. 표정없는 음속의 파일럿 인줄 알았더니 표정이 굉장히 다채롭구만. 하하하. 난 통쾌하게 웃어주었다. "어쩔셈이야?" 아침식사를 하는 중 에드는 상당히 불만스런 얼굴로 내게 질문을 했다. 아아, 이봐 댁은 내꺼라고. 아까 설명해줬잖아 못 알아들었어? 호오, 너한테 1000달러는 애들 껌값이라 이거냐? 하긴 나한테도 백화점 한번가서 물건 쓸어오는 값이면 날이면 날마다 우승하는 분께는 껌값일테지. 흐응. 난 괜히 속이 뒤엉켜서 눈을 가늘게 떴다. "1000달러 돌려받고 없던일로 하지" 나는 선심쓴다는 듯 말했고 에드는 일이 너무 쉽게 풀리자 모호한 표정으로 내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일이 너무 쉽게 풀리면 나에게 널 쥐어준 사람들이 아쉬워할것 같아서 하는짓이니 너무 내 원망은 마.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긍정적인 얼굴이 된 에드를 향해 나직하게 덧붙였다. "대신, 이자로 명파일럿 에드 아야톤 프로스트씨의 스트립쇼나 볼까?" 스트립쇼라니. 여자도 아닌 남자의 스트립쇼를 보자고 말하자니. 내가 돌았나. 아무리 돈으로 이자를 받기가 면구스러워도 그렇지 무려 스트립쇼를 이잣돈 대신 받다니 나 알게 모르게 요사이 많이 망가졌구나. 후훗. 나의 스트립쇼란 말에 에드는 우그작 인상을 찡그렸다가 얼굴을 천천히 폈다. 그러지 말고 한번 깔려라 하고 문의할껄 그랬나? 말해놓고 보니 너무 강도가 약한거라 아쉽네. 이제라도 스트립쇼 대신 한번 자자고 할까? 음, 그건 어렵겠다. 남자랑 자본적이 없어서. 물론 1000달러를 평생 울궈먹으며 괴롭힐수도 있겠지만 뜨겁게 스트립쇼 한번보고 마무리 하지. 질질 계속 우려먹으면서 연계의 끈을 두기엔 내가 귀찮으니. 스트립쇼를 햇빛 쨍 내리죄는 대낮부터 하고싶진 않았다. 그래서 시간도 죽일겸 스트립쇼 전용 의상이나 사러가볼까해서 밖으로 나왔다. 물론 에드도 함께.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발걸음도 가벼웁게 걷는 나와 달리 에드는 상당히 질척이는 걸음으로 여기저기 주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어디가는거야?" "스트- 읍!" 목적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무작정 끌려나온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어슬렁어슬렁 따라오던 에드는 불만인듯 내게 물어왔고 난 솔직 담백하게 대답을 하려고 했는데 갑작스레 달려온 에드가 내입을 손으로 우악스럽게 막아버렸다. 뭐야! 질문해놓고 대답을 못하게 입을 막으면 어떻게하라는건데! 나보고 지금 텔레파시라도 보내라는거냐? 내가 외계인인줄 알아?! 후덥지근한것이 봄답지 않게 끈적끈적한 기온이 부담스러운데다 갑작스럽게 거의 날 끌어안듯한 폼새가 된 에드의 자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다 찌르듯이 박혀오는 사람들의 시선도 엄청 부담스럽다. 젠장, 뭘보냐? "할말 안할말 가려서 좀해" 허이구. 웃기시네. 지는 나한테 멜버른에서 '스트립쇼' 를 몇번이나 강조한 주제에 나한테는 왜 못하게 하는데? 벌건 대낮에 사람 많은 대로 위라서? 대담무쌍한 이미지와 달리 상당히 의외로 무지 소심하시네. "옷사러 가야지. 그거! 하려면 이런옷은 너무 심심하잖아?" 우거지 상이던 에드는 무척 답답한듯 한숨을 푸우 내쉬더니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나를 노려봤다. 그러나 무섭지 않다. 에드는 나에게 빚졌고, 난 그런 에드의 약점을 쥐고있다. 나야 워낙 엽기적인 놈이니 어제의 기념사진 같은거 빠져나가도 눈하나 깜짝 안할테지만 예로부터 고압적 자세로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또아리를 튼 뱀처럼 의기양양하게 살아온 천재 파일럿께서는 그런게 빠져나가면 망신살이 쫙- 뻗치다 못해 우주에다 레이저 빔까지 쏴버릴테니 곤란하시겠지.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모든 이는 평등한 조건에서 태어나 교육환경과 가정안에서 받은 보살핌으로 인해 가꾸어져 간다는 태어날때 모두 같은조건을 갖고 태어난다라는 이상적인 말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음악에, 운동에, 학문에 천재적 재능을 가진자가 있으면 또 천재라고 좋아라한다. 나는 범인이고, 녀석은 천재다. 간혹 천재라서 과도하게 폼잡아야 하는 에드로써는 범인인 나에게 (범인중에서 정신이 헤까닥 미쳐버린 녀석일지도) 약점 잡힌것이 미치게 수치스러울런지도 모른다. 서킷의 황제로 군림했던 아버지를 둔 에드는 훌륭한 혈통과 전통성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다. 뿐만 아니라 그놈의 혈통좋고 전통까지 두루가춘 집이 얼마나 큰지 말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달려도 프로스트 가문의 땅을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거부이기까지 하다고 한다. 거기다 돈만 많을뿐 아니라 천재성 있는 에드 아야톤 프로스트가 처음 카트에 오른 나이가 겨우 4살이였고, 그이후로 자신의 아버지가 쌓은 위업을 하나씩 깨부시며 명실상부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가고 있는 인간같지 않은 인간이였다. 그러고 보니 이인간은 정말 인생의 전부를 트랙에서 보낸 놈이군. 좋은집 뛰어난 재능에 늘씬하고 유연하면서도 서늘한 모양새를 가진 수려한 외모까지 갖춘 없는게 없는 에드가 겨우 1000달러에 엽기적인 나에게 코 꾀였다는건 분명 분한일인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쉽사리 이런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다. 오늘 하루 염원없이 괴롭히다 놔주지. 푸훗. "그거 알아?" "뭐" 나의 특별의상을 입은 에드는 굉장히 불만스런 표정으로 서있었다. 나로 말할것 같으면 커다란 침대에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널널하게 누워서 불편한 기색이 만연한 에드를 즐겁게 구경하고 있는 중이다. 껑충하니 큰 키에 늘씬한 몸을 가진 에드는 연한갈색 머리칼에 간간히 아주 짙은고동빛 머리칼이 섞여있어 마치 부분염색을 한듯 독특한 머리칼을 갖고 있었다. 칼날처럼 매끈한 코와 잘생긴 입술이 보기 좋게 자리잡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아주아주 독특한 짙은 호박색 눈이 보석처럼 박혀있었다. 뭐, 잘생겼군. 못생긴거 보다는 낫지 뭘. 눈도 덜 괴롭고. "아주 다 깨벗는것 보다 약간 가리는게 더 야하고 재밌데" 웃음끼서린 나의 말에 에드는 잘생긴 얼굴을 찌푸렸다. 헤에. 나는 뭐 마냥 신난다. 벗어봐. 벗어봐. 남자 벗는거 구경하려고 돈을 천달러나 쓰고 더불어서 특별의상을 위해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쓰다니 완전 돌았다라고 좀전까지 스스로를 우웩- 미친변태라고 놀렸지만 지금은 마냥 신난다. 내가 언제 잘나신 에드씨의 스트립쇼를 구경하겠는가. "스르륵-" 메어져 있던 타이가 스르륵 풀리고 살짝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에드의 머리칼이 사르르 흔들렸다. 툭. 가볍기 그지없는 타이가 큰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고 스슥, 스슥, 옷깃 스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수구린체 에드가 열심히 단추를 끌르고 있었다. 이거 탈의실 훔쳐보는거랑 뭐가 다른거지? 마치 예전에 옆집누나 옷갈아 입는거 창문틀에 붙어서 구경하던 기분인데. 남자를 상대로 내가 뭐하는거야? 자신의 상태가 심히 비정상임을 판단한 나는 사이드 테이블에 올려뒀던 땅콩 한주먹을 입으로 털어넣으며 에드를 불렀다. "어이" 탄탄한 복근과 잘 절개된 가슴근육을 가진 에드의 상체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바지에 손을 대려던 에드는 나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고 생뚱맞은 얼굴로 '또뭐' 라는 상당히 불친절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와드득, 와드득. 땅콩을 뿌셔먹으며 난 자리에서 일어났고 떨어진 옷가지를 주워 에드에게 내밀었다. "재미없어" "어쩌라고" 에드는 자신의 화려한 근육들을 보고도 영 아니라는 표정으로 딱 잘라 재미없어라고 말하는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슬쩍 인상을 그리고 있었다. 나보다 한뼘쯤 큰 에드는 내 정수리를 쏘아보며 무어라무어라 불만스럽게 혼자 투덜거리더니 어쩌라는거냐고 물었지만 난 그저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주고 말았다. 어쩌긴 옷을 입어, 이사람아. "너, 가" 내가 도대체 지금 무슨짓을 벌이고 있었던거지 싶어서 얼굴이 화끈거리는걸 감춘체 왠 재미없는 짓거리를 했데라는 투로 에드의 옷을 챙기자 에드는 짜증으로 염증이 난 표정이 되어 옷을 주워입었다. 한손엔 자신이 입고왔던 쇼핑백을 들고 말이다.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에드의 뒤를 엄마오리 따라가는 새끼오리 졸졸졸 따라가자 에드는 신경질적으로 휙 돌아봤다. 난 그런 신경질스러운 에드를 향해 방긋 웃어줬다. 뭘 웃어 새끼야란 표정이다. 엄청 살벌하다. 잘못하면 너 나한대 패겠다? "안녕, 잘가-" 사람 이거해라 저거해라 주문을 하다가 갑자기 다 재미없어졌어라고 심통부리며 냅다 쫓아내려고 하는 내모습이 나조차도 너무나 우스깡스럽고 어이없어서 난 전에 없는 미소를 지어보였고 에드는 나의 변화무쌍한 성질머리에 이골이 났는지 한심스러워란 얼굴로 에드 아야톤 프로스트 전매특허인 본래의 무덤덤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잘있어" 짜증이 잔뜩 실린 에드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를 본 에드는 곧장 반대편 인도로 향했고 한번 되돌아 봤다. 스스로의 행동이 무척이나 겸언적어진 난 오래된 친구를 배웅하듯 손을 흔들었다. 훠이훠이 손으로 공기를 쓸자 그런 내모습 본건지 에드 역시 자신의 골탕먹이려고 하루를 허비한 불쌍한 중생에게 손을 휘이휘이 내젓고는 자신의 팀이 묵고 있는 곳으로 바삐 움직여갔다. 폴을 위시한 어제의 경매상을 야합한 이들이 원하는대로 고삐 빠진 망아지 같던 내가 다소 이상한 의미에서였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에드에게 친절해진것 같았다. 무서운 아저씨들이라니까. "......" "무슨말이든 해봐" 유럽 3대 스포츠는 축구, 사이클 그리고 F1 이다. 그래서 가쉽란에 오르는 빅쓰리도 대게 축구선수, 사이클 선수, 포뮬러 원 파일럿이 많다. 사진안에 두사람이 있으면 더좋다. 두배의 가쉽거리다. 깜빡깜빡. 눈을 심하게 깜빡이며 오늘자 신문같지 않은 신문을 뒤적였다. 내게 부축을 받고 있었던 에드가 마치 내게 키스한것 처럼 보이는 사진이 대문짝 만하게 실려있다. 제목도 무쟈게 짜증난다. '아야톤과 사하, 연인?' 웃긴다. 왠 연인. 우엑 그런 닭살돋는 단어를 잘도 내 사진 위에다 쓰다니 언놈인지 걸리면 귀싸대기 오백만대다. "오해야" 딱 잡아서 오해라고 얼에게 (우리팀 미캐닉 대빵이다. 미캐닉이라. 그냥 정비사쯤으로 말하면 얼이 날 줘패겠지만 쉽게 말해서 정비사지 뭐) 말했지만 나이 많은 능구렁이 같은 얼은 그저 눈을 쓰윽 내리뜨며 '좀더 불어' 라고 압박을 준다. 아, 진짜 오해라는데 거참 되게 못믿는구만. "에드가 술에 취해서 부축했을 뿐인데 사진이 묘한 각도에서 찍힌것 뿐이래도" 연인. 애인. 사귄다. 밀애. 등등등 과히 닭살 퍼레이드가 펼쳐질 단어들이 신문지상에 난무하고 있었기에 얼이 쉽사리 믿지 못하는게 이해가 되었지만 정말 이건 오해다. '절대로 오해야' 라고 말하는 내게 얼이 다음 신문을 쫘악 펼쳐보인다. 젠장. 바레인에 가서 다시 그호텔에 묵으면 내가 인간이 아니고 좀비다. 호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던 때에 잠시 쉴 요량으로 내게 에드를 기대게 했는데 그것이 에드가 나보다 컸던 이유로 마치 벽에 기대서 있는 나를 에드가 뒤덮고 있는듯한 형상으로 찍혀있었다. 더군다나 그때 술이 잔뜩취해있던 에드가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해서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었는데 제3자의 (정확히 말하자면 이어주기 놀이에 단단히 빠져버린 놈들) 눈으로 보니 굉장히 야스러운 사진이 되고 말았다. 끄응. 이거 호텔 CCTV가 찍은 사진이다. 필시 호텔에서 제공한 사진이다. 씨발, 그놈의 호텔 지배인 눈길이 묘하다 싶더니 이런짓을 뒤에서 잘도했군. 너 이새끼 너부터 죽었어. "오해래두" 끝까지 오해로 밀어붙이려는 나에게 얼은 마지막으로 비장의 카드라도 되는냥 다음 신문을 쫘악 펼쳐보였다. 이런 썩을! 망할! 죽일놈들! 크아아아아악! 경악으로 물든 내눈에 똑똑히 박혀들어오는 질릴정도로 많은 수십장의 사진의 나열에 숨이 턱 막혀왔다. 신문에는 스트립 의상을 사러가기 위해 바레인 시내를 돌아다닌 모습이 찍힌 사진이 마치 영화필름처럼 주욱- 나열되어있다. 사람이 많은 인도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나란히 걷고 있는 두남자. 평온해 보이는 분위기 속에 틀림없이 동행인듯한 같은방향으로 내뻗는 다리 모양새와 척척 발걸음이 잘 맞는 절친하게 보이는 사진들의 죽- 늘어섬.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다. 부스럭. 마지막 사진을 본 내머릿속은 완전히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버렸다. 하이라이트는 이거로군. 스트립쇼를 말하려던 내게 달려들어 입을 틀어막았던 에드의 행동이 반대편에서 찍힌 사진에 마치 키스한것처럼 찍혀있다. 남의 사진이였다면 압권이군 하고 웃어줬을 상황인데 당사자가 나이고 보니 뱃가죽이 뻥- 뚫린듯 기분이 매우 거북하다. 아악! 이게뭐야!!!! 끄어어어어억!!! 속으로 요괴의 소리를 내며 얼굴이 아연하게 변해버린 나를 보며 얼은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내가 응큼한 아저씨들의 꾀임에 넘어가서 뒷풀이에 잘못갔다가 우연히 에드 아야톤을 경매에서 1000달러 주고 사게됐는데 그때 이렇고 저렇고하는 요상한 이사진들이 찍힌거야라고 어에게 말해주고 싶지만 할수가 없다. 젠장할! 그걸 말하면 더 오인받게 생겼다. 저 능구렁이 얼굴봐라. 완전히 에드한테 넘어가버린 불쌍한 중생 하나 더 생겼군 이란 표정이다. 정말 차마 못할 이야기지만 진짜 말해버리고 싶다. 이건 거짓이라고! 오해야!!!! 하지만 사진을 다시본 나는 말할 기운을 잃었다. 정말 키스한것 같은 사진이잖아. 우라질. 눈알이 튀어나오는듯한 충동을 계속 느끼며 신문을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어댔다. 그렇게 몇분 덜덜 거리고나니 새로운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앞으로보나, 뒤로보나, 옆으로보나, 위에서보나, 아래에서보나, 후들겨서보다, 메쳐서보나, 어디로보나 남자인 나다. 그런데 왜! 이 내가 에드 아야톤의 보살핌을 받는것 같은 모호한 포즈를 취한체 사진을 찍은건지 도대체 이해할 길이 없었다. 니미, 이사진 찍은새끼 나한테 걸리면 진짜 귀싸대기 오백만대다. 감히 나를 남자아래에 깔리는 놈으로 만드는 사진을 찍어대?! 그것도 상대가 에드라고! 미쳤냐 씹새야!!! 크아아아아악. 분노로 흥분해댔지만 내가 이렇게해, 저렇게해 라고 할때마다 일그러진 표정인체였지만 군말없이 나의 명령에 일체복종해주었던 에드를 죽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거야 말로 완전히 민폐를 끼쳐버렸다 싶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새끼 잡고 묻고 싶다 왜 하필 이제와서 이런사진을 막 배포하는건데. 너 나 물먹이려고 작정했지? 바레인 경기 끝난지 보름도 넘었다. 근데 왜 이제와서 이런사진 막 뿌려대는건데. 하지만 어쩐지 이해도 될듯 싶다. 정말 물먹이고 싶었다면 말이다. 산마리노전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클래식 서킷인 이몰라에서 열리지만 머신의 능력치에 따라 결과가 판가름나는 다른 클래식 서킷과는 달리 이몰라는 클래식 답지않게 파일럿의 능력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서킷이다. 왜냐면 커브가 거의 마의 커브라고 할만큼 많다. 커브길은 항상 추월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추월의 하려는 자와 이를 막으려는 자 사이에서 파일럿 능력의 차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더욱이 이몰라는 브라질리안 영웅 세나가 경기중 사망한 서킷이다. 이런 긴박한 경기를 코앞둔 나에게 이딴 엽기적인 기사를 퍼붓다니 정말 젠장할! 소리가 절로 날 상황이다. 손을 휘이휘이 저으며 쉬라는 얼을 피해 밖으로 나왔는데 복도 끝에서 한무리의 사람이 몰려오는게 보였다. 아직 미숙한, 재주가 대단치 못한 신출내기 파일럿인 내게 이런 낯간지러운 기사는 상당히 타격이 크다. 혼자서 특이한놈 취급당하는거야 하루이틀이 아니지만, 스캔들이라니! 거기다 남자랑! 그것도 같은 종목에서 라이벌로 있는 철천지 원수랑 스캔들이라니!!! 완전 광분한 상태로 척척척 복도를 활보하던 나는 헛! 놀라서 멈춰섰다. 어엇. 멈춰, 멈춰. 나는 사람을 피해 벽뒤로 돌아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경기를 하루 앞뒀음에도 불구하고 떨리지도, 긴장하지도 않는건지 다른이들은 잔뜩 웃어대며 즐거운지 나를 발견하자 큰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헤이! 아야톤 애인, 사하-!!! 여기 애인있어!!" 젠장, 정말 그 기사 쓴 새끼 잡히면 귀싸대기 오백만대다. 작년까지만해도 금요일 오후는 경기를 준비하는 시간이였다. 연습 주행을 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관중을 모아놓고 트랙을 도는건 일요일 오후2시 부터 시작되었는데, 흥행해서 돈 벌어먹어보자로 눈이 시뻘개져있는 FIA들이 각팀의 머리에 쥐라도 나게 하려는지 경기방식을 아주 획기적으로 뜯어고쳐 버렸다. 금요일은 챔피온쉽 순위가 높은 순서대로 출발하여 1회주행, 토요일은 금요일 기록의 역순으로 1회주행하게 한다. 그리고 둘을 합산하여 가장 빠른 기록을 낸 사람이 일요일 마지막 결선에서 유리한 포지션에 위치한다. 원래대로라면 토요일 주행이 끝난뒤 피트에 돌아온 차량에 급유도 하고 셋업도 할수 있도록 했으나 그것을 원천봉쇄해버려 토요일 주행후의 상태로 일요일에 경기를 치뤄야 하도록 규정이 바뀌어 여러가지로 변수가 엄청 많아졌다. "오지 말라니까!" 덕분에 일요일에만 잘 달리면 되었던 경기가 무려 이틀간 경기를 하는 중압감으로 변해버렸다. 제기랄. 저것들은 토요일 경기를 앞둔 주제에 다들 뭐가 저리도 좋은거야. 끄아아아아아아악! 복도를 척척척 달리며 나는 뒤따라 오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꽥- 질렀다. 오지마! 그만와! 저리가! 그런 내게 응수하듯 경매쟁이 놈들이 에드를 옆구리에 낀채로 '애인 여기 있대도!' 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크하하 웃어대는 폼새가 정말 맘에 들지 않았다. 도망치고, 피하고, 숨고를 반복하다 개떼들을 (선배들을 이리 부르는건 죄가 아니다. 정말 개떼 같았기 때문이다) 따돌리고 피트로 돌아왔다. 내일 주행을 위해 피트에서 한차례 소동이 있은후 모두들 지금은 자신의 숙소로 돌아간것 같았다. 심지어는 피트에 붙어사는 악덕 미캐닉 팀장이자 우리 팀의 감독이기도 한 얼조차 보이지 않았다. 부스럭부스럭 빈피트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부품통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챙캉-. "우왁!" 숨소리도 죽인체 수많은 부품 속에서 링너트를 골라내고 있던 중에 등뒤에서 커다란 쇳소리가 울려 화들짝 놀라버렸다. 엄마 몰래 나쁜짓 하다 걸린 아이처럼 잔뜩 쫄은 상태에서 슥- 고개를 돌려보니 떨떨음한건지 무덤덤한건지 알수가 없는 표정인 에드가 서있었다. 댁이 여긴 웬일이래? 턱턱턱 링너트를 손안에 쥐고, 쏟아부어둔 부품들을 쓸어담았다. 그리곤 테이블 의자를 하나 빼내어 앉으라고 고갯짓을 하자 에드의 표정은 더욱 의뭉스럽게 변했다. 말을 하시지. 말을. 슥슥슥 새끼 손가락 손톱만큼 작은 링너트들 중 품질이 높은 상너트를 구별해 내어 한쪽 자리에 빼냈다. 그리고 마른천으로 쓱싹쓱싹 닦아서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만들었다. 같은 기계에서 같은 쇳물로 만든 것들이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모양이 조금씩 다 다르다. 마치, 같은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자식들이 제각각 다른것 처럼 기계로 일률적으로 쾅- 찍어내는 너트들 조차 다 다른것이다. 슥슥슥 말없이 나는 너트를 닦고 에드는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소퍼모어 징크스가 있다는 2년차를 지나 이제 막 3년차 파일럿이 된 나의 플라잉 랩(기록주행, 땅에서 달리는 머신을 타고 낸 기록이 어째서 플라잉한 기록인지 알수가 없지만 다들 그렇게 쓰니까 나도 쓴다.) 성적은 꽤 안정적이다. 문제라면 늘 2위를 하는게 문제랄까. 오늘 플라잉 랩 성적 또한 내앞에 앉아있는 누구씨에게 아주 조금 미치지 못했던걸로 기억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중요하니 더욱 잘해야지라며 마음을 닦듯 슥삭슥삭 너트를 닦으며 마인드 컨트롤 중인데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꽤 신경쓰인다. 하지만 계속 원수, 원수 하기엔 내가 너무 악당같아서 더군다나 아까 그 신문에 대문짝 만하게 난 기사들이 면팔려서 그걸 극복해보고자 나는 에드 아야톤 프로스트씨한테 좀 곰살맞게 굴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생각해도 오늘 주행기록이 그에 못미친것은 약간 짜증난다. 속상해서 한대 패주고 싶고 또 ... 뭐 기분도 많이 나쁘고 괜히 자존심 구겨지는 기분도 들고 또 ... 아주아주 여러가지로 재수도 없고 그런데 에드도 술 먹고 뻗기도 하고, 맛간 소리도 하고, 필름이 끊기기도 하는 나와 같은 인간이고 나처럼 자동차라면 사족을 못쓰는 동족이라는 점에서 또한 이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그에게 파일럿으로써 약간의 경외감도 갖고있다. 가장 모양새가 잘 다듬어진 너트를 마지막으로 열나게 닦은뒤에 에드 앞에 슥 들어보였다. "오늘의 미스 링너트양이야. 이쁘지?" "쿡-" 어쭈? 비웃냐? 3년차인 나보다 2년 정도 일찍 파일럿이 된 에드는 경기 시작 12분전 혼자만의 공간에 들어가 뭘하는지 다른이는 알수없는 시간을 보내는 버릇이 있다. 나는 사람이 다 가고없는 텅빈 피트에 홀로남아 이렇게 그날의 미스 너트냥을 뽑는것으로 긴장을 풀곤 한다. 그러고보니 되게 궁금하다.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서 뭐하는데? 누구들 말처럼 진짜 식전 행사로 마스터베이션 하는건 아니겠지? 나의 미스 링너트양을 쿡- 비웃은 에드는 내가 열나게 닦아 놓은 반짝반짝 윤이 좌르를 흐르는 링너트를 유심히 보더니 혼잣말을 슬쩍 흘리며 손으로 내 머리를 쓸었다. 재수없게 왜 머리를 만지고 지랄이래. 슥- 내 머리위에 닿아있는 에드의 손을 얼굴을 찡그며 피하자 에드는 웃었다. "생각보다 귀여운짓을 많이하네" "뭐?" "귀엽다고. 예쁘다, 링너트" 저기 잠깐 나한테 지금 귀엽다고 했어? 눈이 썩었구나! 그리고 말을 좀 끊어서 할래? 나한테 귀엽다고 말한뒤에 (우웩) 예쁘다, 링너트라고 말한거냐, 귀엽다고. 예쁘다, 라고 나한테 말하고나서 잠깐 쉰뒤에 링너트 달라고 손 내민거냐? 헷갈리게 굴지말고, 애매모호하게 뭉뚱그린 선에서 움지럭 거리지말고 화끈하게 기면 기다 아니면 아니다라고 하란말이다, 썅! 기묘한 기분이 들어버린 나는 모호한 분위기가 무척 부담스러웠다. 그런 내게 에드는 지나가는 말로 다시 혼잣말을 한다. "이런 귀여운짓하는 애인이라면 괜찮을지도" 오늘의 미스 링너트 냥을 쓰다듬으며 나에게 하는 말인지, 링너트에게 하는 말인지 상대를 정확히 알수 없는 말을 한 에드는 주머니에서 조그만 나무로 만든 트로피를 꺼냈다. 하얀 테이블 위에 연갈색의 트로피는 앙증맞고 귀여웠다. 미스 링너트양을 제외한 나머지 링너트들을 부품통 속에 일괄로 넣어버린 뒤 나는 엄지손가락 반만한 나무 트로피를 유심히 살폈다. "내가 처음으로 받은 트로피야" "네가?" 도대체 어느 대회길래 이런 재밌는 트로피를 주는거지? "친구들끼리 밤에 불법으로 레이스를 했을때 부상으로 마련된 트로피였지" 아항, 그런 나쁜짓을 하시고 다녔군. 내가 알겠다는듯한 표정을 짓자 에드는 그 트로피를 내쪽으로 밀었다. "이거 주려고 왔어" "나한테?" 조금 조잡한 느낌이 드는 트로피지만 친구들끼리 불법으로 한거래도 처음으로 받은 트로피라면 소중한거잖아. 내가 알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에드는 트로피를 툭툭 치며 좀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곤 숨을 한번 크게 삼키고 말한다. "아래 내 전화번호 있어, 본의 아니지만 공식적으로 너 내애인이잖아" "응?" 의문스럽다는 내 단발마의 물음에 고개를 왼쪽으로 휙 틀어버린 에드는 말없이 있었고 난 에드의 말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트로피 아랫둥을 들어 바닥을 살폈다. 나무 트로피 밑바닥에 세밀한 조각도로 써진 번호가 보였다. 이게 뭐하자는건지 알것도 같고 모를것도 같다. 나쁜징조 같지는 않다만 기분이 참 묘하다. 내가 네애인이라구? "대신 이건 나 가질게" 링너트를 손안에 꽉 쥐어보인 에드는 자신의 소중한 나무 트로피를 남긴체 나의 미스 링너트양을 갖고 그대로 가버렸다. 긴바람이 불어와 머리를 한바퀴 휘젓고 지나간 기분이다. 아랫둥에 이거 직통전화번호겠지? 조그만 트로피가 보물이라도 되는냥 만지작 거리는 내손길이 나조차 의심스러울 만큼 행복해 보였다. 진짜 내가 미쳤나. 왜이러지? [부릉- 부르응 - 부릉-] 뜨거운 공기가 옴몸에 척 휘감겨 오는 트랙의 한가운데 서서 경기 시작전 긴장감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얼은 무표정한 얼굴로 팀 미캐닉들에게 끊임없이 주문을 퍼부었다. 얼이 점검, 점검 또 점검을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에드가 보였다. 경기 직전에 에드를 보면 보통 빈정상하는 기분이 지대했었는데 지난대회 이후로 안면을 심하게 튼것이 요긴하게 작용했는지, 어제 트로피 받은게 좋아서인지 속이 울컹- 치솟던 감정이 아주 미약하게만 느껴질뿐 전처럼 심한 거부반응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경기 시작 20분전. 곧 있으면 에드는 화장실로 들어가는 버릇을 발휘할 것이고 그 전까지는 자신의 팀원들과 팀플레이에 관해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눌것이다. 난 얼의 눈을 피해 그런 에드를 힐끔힐끔 훔쳐보고 있었다. 그런데 에드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눈이 탁 마주쳐 버렸다. 얼굴을 돌릴까, 시선을 바꿀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나를 본 에드는 아무런 사심없이 휘이- 휘이- 손을 저으며 아는척을 해온다. 괜히 딴짓하는척 하려고 했던 나는 속이 뜨끔해 손을 한번 슬쩍 들어보이고 돌아서서 피트로 돌아왔다. 내가 왜 쑥쓰러워 해야하냐고!!! "어디갔다와?" "트랙 구경했어" 야릇한 눈길로 나에게 뭉뚱한 질문을 하는 얼에게 난 아무일도 아니라는듯 대답을 하고 심플한 검푸른 헬밋을 옆구리에 끼고 머신으로 다가갔다. 포뮬러 원이 300Km 이상으로 달리는것은 날개짓하기 직전의 새처럼 애처로운 퍼득임이 아닐까, 뱅글뱅글 지겹도록 트랙을 돌다보면 부웅- 하고 날아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땅위를 달리는 머신을 조정하는 드라이버를 파일럿이라고 부르는걸까 별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잘했어-" 집중을 못했다. 쓸데없는 감상에 너무 빠지는 바람에 트랙을 달리면서 너무 느슨하게 굴었다. 우거지상이 된 내게 얼은 잘했다고 격려를 한다. 아마 피트의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해낸것에 대한 보답정도 인것 같다. 오늘도 에드 아야톤 프로스트씨의 팀이 우승을 했다. 사람들은 천재에게 환호했고 악당역을 하는 2인자인 나에게도 마지못해 박수를 청했다. 그러니까 이런게 입장차이로군. 그들은 천재가 매일매일 쌓아올리는 위업을 보며 자신의 일처럼 흐믓해 한다. 나는 그걸보며 질투한다. 에드는 천재였고, 사람들은 천재의 조력자이자 서포터이지만 나는 악당이였다. 오늘 다시한번 깨달았다. 와그작. 테이블에 굴러다니는 사탕하나를 까서 입에 넣고 마구잡이로 씹었다. 와스스 부서지는 사탕을 우그적우그적 깨물며 피트를 나왔다. 극도로 신경질적인 나를 미캐닉들이 슬금슬금 피하는것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냥 있을정도로 착한 놈이 못된다. 아예 피하는게 상책이지. 경기 직전까지는 정말 정말 기분 짱 좋았는데 지고나니 세상이 다 우중충하다. 지끈지끈. 사람들은 모두 축제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었다. 커다란 대회 하나가 수만명의 사람을 행복하게 했고 그중에 단연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면 우승한 에드일것이다. 그런식으로 따지자면 꼴찌를한 던이 가장 불행해야 하겠지만 지금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건 바로 나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오는게 정말 죽을것 같다. 결국 난 만인이 행복해 할때 억지웃음을 지으며 사진을 찍어야했고 뒷풀이를 하자고 괄괄대는 놈들을 피해 호텔방에 혼자 쭈꾸리고 앉아있다. 2등 트로피는 신물이 날 정도로 많이 받은것 같다. 왜이리 인생이 청승맞은지. 1분도 안되는 촌각 같은 시간때문에 누구는 울고 누구는 웃는다. 누구는 승자고 누구는 패자다. 누구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누구는 엔돌핀이 솟구치는 경험을 한다. 세상은 그렇게 조악적이다. 젠장. 티르륵- 몸을 거칠게 일으키다 사이드 테이블에 올려뒀던 물건들을 바닥으로 떨어뜨려 버렸다. 얼른 주워담지 않으면 청소하는 누님씨들이 싹 쓸어가버리기 때문에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머리가 지끈지끈 울렸지만 난 바닥에 착 붙어서 물건들을 쓸어올렸다. 응? 트로피-! 까슬까슬 앙증맞은 나무 트로피 아래에 섬세한 조각도가 훑고 지나간 흔적이 남아있었다. 번호는 직통일거다. 달칵. 수화기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뒀다.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그놈의 징글맞은 뒷풀이가 벌써 끝났을리가 없지 싶다. 혹시 그래도 모르지. 전화기 앞에 설레이는 맘으로 앉은 난 오늘따라 이상스럽게 굴고 있다. 뚜르릉- 뚜르릉- 울리는 통화대기음이 심장을 두근두근두근 폭팔 상태로 밀어붙인다. - 네 전화 넘어로 들리는 나직한 목소리에 하마트면 놀라서 난 전화를 끊을뻔했다. 뭐라고 하냐. 우승을 축하한다고 해야하나. 웃기고 있네. 지금까지 그것때문에 땅파고 있었던 주제에. 아니지, 한판 붙자고 그럴까. 니네 그 잘난 파트너 로이든 빼버리고 둘이서 1대1로. 아니다, 아니야. 카트에서 진 주제에 포뮬러로는 이길것 같냐? 내가 할수 있는 만가지의 상상들이 머리를 몰아치며 입에서 말을 떨굴수 없는 상태로 몰아붙여가고 있었다. - 여보세요 에드의 살짝 짜증스러운 목소리에 난 정신을 차리고 버럭 하고픈 말을 끄집어냈다. "화낼려고 전화했는데 들어볼테야?" - 사하? "루이야" 지끈거리던 머리로 인해 힘이 죽어 칠렐레 팔렐레 늘어져 있던 내가 순간 툭- 튀어나온 말들에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공처럼 팅팅- 거리기 시작했다. 인생은 종이 한장 차이로 결판나는것이라는데, 기분이 삽시간에 변하는게 뭐그리 대수겠어? - 그래, 루이. 언제부터 친했다고 친근하게 전화를 받고 지랄이야 이놈은. 너무 고분고분한 그러나 살짝 웃음이 담긴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부르는 에드의 목소리에 나는 심통 맞았던 얼굴을 더 부풀리며 털썩 침대에 누웠다. 지금 지한테 열내보겠다고 하는데 웃었다 이거지. 오늘 너 죽었어. "로이든 죽여버리고 싶어!" - 푸하하하. 로이든도 널 예쁘게만 보지 않을꺼야. 루이. "아씨, 진짜 짱나! 이길수 있었다고!!!!" 이건 거짓말이군. 오늘 이길수 없었다. 난 정신을 반쯤 놓고 있었다. - 다음엔 이겨봐. 루이. "니네 팀 졸라 짜증나. 프로스트 망해버렸음 좋겠어-!!!!!!!" 전화통 잡고 꾸에에에에엑- 소리를 지르자 속도 좋지 지네팀 망하라는 나의 저주에도 에드는 쉬이 웃었다. - 우리감독도 너 정말 싫어해. 루이. "아, 씨발 왜 말끝마다 루이, 루이, 하고 지랄이야! 악! 끊을꺼야! 자다가 확 침대에서 굴러떨어져 버렷!" 쾅-! 괜히 엄한사람에게 전화를해서 투정부린 나는 그걸 고스라니 즐거이 들어주는 에드의 행동에 기가 질려 버럭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라는건 좀 너무했나. 뭐어때 지네팀 망해버리라는데도 웃어댄 놈인걸. 설마 침대에서 떨어지겠어? 뒤척뒤척 또다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때르르르릉- 때르르르르릉- 씨발, 어떤새끼가 아침부터 전화질이야 전화질이! 어젯밤 별별 생각을 다하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든 나는 아침부터 성난 망아지 마냥 울어대는 전화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크아악! 만약 별 시덥잖은 놈이면 오늘 너 죽었어. 어제 경기는 죽 쒔지, 그런 나한테 얼은 잘했다고 헛소리하지, 밤에 잠은 못잤지, 기분은 개같이 드러워졌지 아무튼 전화한 놈이 누군진 모르지만 내가 생각해도 불쌍한 종말이 도사리고 있는게 틀리없어서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누구야" 전화를 받고나자 프런트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세를 낮추지 않고 뻣뻣한 고압적인 목소리와 몸짓을 유지한체 전화통을 노려봤다. 상대는 받자마자 '누구야' 라고 싸가지 없게 말하는 나의 전화예절에 (이런것도 예절이라고 할수 있다면 전화예절이다) 당황하여 흠흠 목을 가다듬고 있었다. - 루이 "에드?" 난 귀에 착 붙이고 있었던 수화기를 떼어내어 한번 살폈다. 이놈의 전화기가 잘못된건가. 왜 아침부터 에드 목소리가 들린대냐? 응? 전화가 혼선인가? 이상하다? - 루이! 내가 말이없자 에드인듯한 녀석은 수화기 넘어에서 소리를 질러댔다. 알았어. 알았다고. 받으면 되잖아. "왠일이야?" 말을 하면서도 이거 진짜 에든가? 에드맞나? 에? 정말 이상한데? 란 생각을 끊임없이 떠올리며 의심의 기색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전화를 건 상대는 정말 에드가 맞는건지 목소리가 들으면 들을수록 몇번 들어본적이 없는 에드의 목소리였다. 어젯밤에 내 저주가 먹혀들어서 진짜 침대에서 굴러떨어져서 니가 저주를 퍼부어서 그렇잖아! 하고 땡깡부리려고 전화한건 설마 아니겠지. - 오늘뭐해? "글쎄.. 왜?" 아니, 이자식 이거 진짜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나? 보복하려고 날 불러내서 패려는거 아니야? - 영화 보러갈래? "아니" 억. 말이 막 나왔다. 에드의 어려운 제의에 난 거침없이 대답을 했고 잠시간 에드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근데 이거 실수다. 뭐랄까 본능적 거부반응의 자동실행이랄까, 삐딱선 타버린 녀석의 툭하면 '아니' 라는 말을 내뱉는 버릇이랄까, 어떤거든 다 재수없고, 죽여버리고 싶고, 다 때려부셔 버리겠어라는 악의적 성격이 고스라니 들어나는 나쁜행동이랄까, 여하간 고의가 아니다. 진심이 아니라고! - 그래. 그럼 좋은하루보내. 나의 툭 내뱉은 대답에 잠시 말을 멈추고 가만히 있던 에드는 자신의 제의를 거절한것에 충격을 받은것인지 별다른 말없이 천천히 일상적인 마무리를 하곤 전화를 끊었다. 이봐! 이봐! 진심이 아니래두!! 속으로 버둥거리며 에드를 불러보려 했으나 이미 전화기에선 뚜우-뚜우- 맥없는 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뚝- 끊긴 전화를 가만히 들고 있던 나는 혹시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얼결에 전화를 들고 있었던건 아닌지 의심을 해보았다. 설마, 아무리 성격이 요상하다지만 그렇게 미치진 않았을껄? 뚜-뚜-뚜-뚜- 여전히 머리를 띵하게 울리게하는 소리를 내며 울어대는 전화기를 '탕-' 내려놓은 나는 전화를 빤히 노려봤다. 우끼는 놈. 줏대도 없는 놈. 근성이라곤 요만치도 없는 놈. 썅! 어떻게 딱 한번 말 꺼내보고 거절당했다고 냉큼 전화를 끊어버리냐? 뭐가 세계최고의 명파일럿이라는거야! 탁. 전화기 옆에 놓인 트로피를 거꾸로 세우고 사이드 테이블 옆으로 답싹 붙어 앉아 버튼을 꾹꾹 눌러댔다. 뚜르릉- 뚜르릉- 신호가 울리고 곧이어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나처럼 '누구야' 라는 엽기적인 인사가 들려오진 않았다. 에드는 약간 재수없는 놈이긴 하지만 나처럼 또라이가 아니니까. - 네 "야, 넌 어떻게 딱 한번 말해보고 아니라고 대답한다고 전화를 뚝 끊어버리냐? 어?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호박이라도 썰어야 하는거 아냐? 왜 말이없어?" 뭐야. 내가 거절했다고 홀랑 다른놈에게 전화걸어서 약속잡아버린건 아니겠지. 거기까지 생각하자 얼굴이 확 붉어졌다. 아악. 내가 무슨짓을한거야!!! 정말 미치겠네. 나의 버럭거림에 에드는 할말을 잃은건지 침묵을 고수하고 있었다. 썅, 전화는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는거거든 제발 말좀 할래? 성질 같아선 한번 더 소리치고 싶지만 나는 참았다. 안그래도 쪽팔리는데 더 소리지르면 진짜 왕 쪽팔릴거 아닌가. 젠장. - 영화 싫어하는거 아니였어? "내가?" - 그래. 너. "아닌데" - 영화 보러갈래 라고 물었을때 아니라고 딱잘라 대답했잖아 그러니까 그건 나의 삐딱선 탄 나쁜 성질머리로 인한 버릇같은 말대답일 뿐이였다고! 라고 말하기엔 스스로 성격 나쁨을 인정하는것 같아 말하기 싫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눈을 디글디글 굴렸다. 남자 두놈이 전화통 붙잡고 서로 니미락 내미락 하는 꼴이라니 맘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 보러 가기 싫다는거야?" - 아니, 보러가. 언제 만날까? "지금 당장나와" 벌컥 내가 승질을 부리자 에드는 아니라고 부정했다. 거기에 탄력받은 나는 무진장 고압적으로 나오라는 말을 남기고 딸칵 전화를 끊어버렸다. 허튼소리 더 못하도록. 괜시리 이긴듯한 기분에 야후! 하고 소리를 지르며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어제는 어제일뿐 오늘과 상관없어. 어제 졌다고 오늘 우중충할 필요는 없어. 음, 그러고 보니 이거 나름대로 데이트로군!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김치국물 후루룩 마시면서 이상하게 자꾸만 방방방 기분이 좋아진 나는 평소에 없던 웃음을 짓고 있었다. "윽-" 나는 종종 괴물로 변신하곤 한다. 열을 마구낼때, 성질을 있는대로 피워댈때, 그리고 트랙에서 죽어보자는 심정으로 마구잡이로 달려댈때 내가 생각해도 나는 머리없는 괴물처럼 단순해 지는것 같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동족인 요괴가 나오는 영화를 혐오한다. 깊이 아주 깊이 혐오한다. "크르르르르" 으으윽. 진액인지 핏물인지 모를것을 입에서 주르륵- 흘리는 요상망측한 괴물이 커다란 스크린을 퉁퉁퉁- 뛰어다니는게 보이자 절로 표정이 구겨졌다. 귀신, 요괴, 그리고 말도 안되는 괴물들의 향연. 난 마구마구 얼굴을 일그렸고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그렇게 심하게 얼굴을 구겨대는 내옆에 앉아있는 에드는 정면을 볼때는 무표정하다가도 마구 인상을 쓰는 내얼굴을 볼때는 '큭큭큭' 음산한 웃음소리를 내곤했다. 씨발. 어떤새끼가 이딴 영화를 만든거야. "웃지마" 망망한 천장을 보며 나직히 말하자 에드는 아예 대놓고 나를 비웃고 있었다. 윽, 저 입에서 줄줄 흐르는거 좀 닦아줬음 좋겠다. 물론 내게 한없이 긴팔이 있어서 저 징그러운것에게 다가가지 않을수 있다면 말이다. "루이 사하가 몬스터를 싫어한다는 굉장한 사실을 발견하고 너무 놀라워서 웃는거야"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나는 인상쓰고 에드는 그런 나를 비웃다가 영화는 끝이났다. 내용도 없었다. 그놈의 망할 영화는. 한순간도 그곳에 더 있고 싶지 않았던 나는 영화가 끝나기 무섭게 얼른 밖으로 튀어나왔지만 답답했던 공기때문에 아픈줄 알았던 머리가 여전히 지끈거려서 손으로 머리를 꾹꾹 눌러댔다. "왜그래?" 영화관 안에서 줄곧 나를 비웃던 에드는 인상을 잔뜩 쓴체 머리를 주물럭 대는 나를 보며 왜그러냐고 물었지만 대답해줄 힘도 없어서 입에서 나오는대로 대답해줬다. 이놈의 두통, 틈만나면 찾아와서 이제는 약을 먹어도 계속 아프다. "머리가 아파" 오랜만에 만난 요괴들 때문에 내머리는 심하게 충격을 받은건지 엄청나게 반항하며 찌르르 찌르르 아픔을 호소했고 온 머리가 얼얼할 정도로 아파와 인상을 더욱 심하게 썼다. 난 정말 요괴들이 싫다. 그리고 귀신도 싫다. 언제나 죽음이 도사리는 레이스를 펼치는 F1 파일럿이 이야기 속에나 나오는 귀신이나 한갓 요괴를 두려워하다니 싶겠지만 난 정말 그것들이 싫다. 방안에 가만히 혼자 앉아있다가 눈앞에 혹 귀신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해서 갑자기 소름이 오싹 돋은적이 빈번할 정도로 난 그것들에게 민감하게 반응한다. 현대 테크놀러지의 집결체인, 최신과학의 산물인 머신을 타는 녀석이 귀신을 무서워한다고 비웃어도 무서운건 무서운거다. 그리고 그런 비위상하는 기분후에는 꼭 이 지긋지긋한 두통이 엄습해 왔다. "감기?" 머리아픈건 두통 아닐까? 어째서 감기라고 생각하냐? 썅. 두통때문에 성격이 더욱 더러워진 나는 더 말하는걸 그만뒀다. 그런데 에드는 의외로 멍청했던지 머리 아프다는 말을 감기로 둔갑시키며 내 이마에 자신의 서늘한 손을 올려놓고는 불법 무면허 의사 주제에 얼렁뚱땅 진단을 내려버린다. "열있다. 병원에 가야겠어" "싫어"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난 어더더더 절대로 안돼라고 강경하게 나갔고 에드는 죽어라 싫어하는 내모습에 또 무슨 굉장한 사실을 발견한건지 끈덕지게 물고 늘어질 태세다. 그래, 나 요괴도 싫어하고. 병원은 더 싫어한다. 병원까지 가는것도 귀찮고, 그 몽땅 흰물을 뒤집어쓴 병원 건물도 싫어하고, 코를 찌르는 끔찍한 소독약 냄새도 싫어하고, 차가운 진찰 기구들도 싫어한다. 그중에도 단연 싫은것은 주사다. 제기랄. "감기기운 조금있을때 잡아야지 그냥두면 더 아파져" "됐어" 두번째 거절에서 좀 더 생뚱맞게 대답을 했다. 크아아악! 겨우 두통으로 병원에 가기는 싫어! "그러지 말고 병원가자" "됐다니까" 의외로 엄청 질긴 에드에게 나는 최후의 인내심까지 발휘했으나 모든 대회의 절반을 쓸어갈 정도로 강한 집념을 지닌 에드는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 더 아파지면 일정에 차질 생기잖아?" "괜찮아" "괜찮긴 얼굴 하얗다" 젠장, 젠장, 젠장. 내가 이래서 이새끼를 싫어하나보다. 인상을 잔뜩 쓰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나 병원 싫어해" 지겹게 가자, 됐다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나의 단 한마디에 에드는 탕탕탕 결말을 내려버렸다. 어딘가 즐거워 보이기까지 하다. 니미, 내가 지금 뭐라고 씨부린거야. "잘됐네. 내주치의가 이근처에 있어. 가자" "야!" 소리를 질러봤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되었고, 난 에드가 오늘 데리고온 그의 애마 앞으로 끌려가야 했다. 싱글싱글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간 에드의 얼굴을 이대로 쥐어박아버리면 내일 신문에 또 뭐라고 뭐라고 기자씨들이 지랄거리겠지. 머리는 더욱 아파왔고 포기한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부릉거리는 맥라렌 소리에 피식 웃어버렸다. 경쟁회사의 차를 여유만만하게 끌고 다니다니 이녀석도 썩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건 아닌것 같다. "가벼운 감기니 주사한대 맞고 약만 드시면 문제가 없을것 같군요" 의사는 사무적으로 말하며 멀뚱허니 책상위를 보고 있는 내뒤에 선 에드를 힐끔 거렸다. 자신의 환자가 데려온 녀석이 포뮬러 원계의 난봉꾼이니 도대체 무슨조화인가 싶겠지만, 저기요 저도 여기 별로 오고싶어서 온게 아니거든요. 그만 좀 힐끔거려요 네!!! 썅, 눈깔을 확 파버릴까 부다. "주사 안맞으면 안되나요?" "풋" 죽어도 밖에서 기다리라고 성질을 부렸지만 집념과 끈기의 결집체인듯한 에드는 어거지로 진찰실로 들어온 내뒤에 따라 들어와 있었다. 의사는 경악, 놀라움, 황당해 했지만 에드는 단 한마디의 언질도 하지 않았고 나는 머리가 아파서 왔다고 했다. 그리고 가장 하고싶고 가장 결과가 궁금한 질문을 했을때 녀석은 또다시 나를 비웃었다. 젠장할 왜 따라와서 사람 귀찮게 지랄이냐고!!! "안됩니다" "왜요?" 절박하게 묻는 내게 의사는 딱잘라 안된다고 했고 왜 안되냐고 다그치는 내게 의사는 눈으로 힐끔 에드를 가리켰다. 휙- 뒤돌아 보니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체 '뭔일있나' 란 표정으로 주위를 흥얼흥얼 살피고 있는 에드가 보였다. 어쭈 연예계로 나갈참인가 보지? 어디서 연기냐, 연기가! 내가 주사 안맞고 싶다고 하는 말에 에드는 미묘하고도 고난이적으로 고개를 아주 살짝 가로로 저었다는걸 그림자를 통해서 이미 확인했다. 더 말해봤자 먹힐것 같지도 않은 벽창호 의사 앞에서 난 포기! 깃발을 들고 밖으로 나왔고 무척이나 즐거워 보이는 에드는 내옆에 나란히 앉았다. "따라 들어가 줄까?" 주사를 맞기위해 들어가려는 내게 에드는 물었다. 그 목소리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씨발. 아픈것만 아니면 넌 정말 오늘 나한테 죽지 않을만큼 맞았을거다. 아, 젠장. 골 울린다. 이를 으득 갈며 '됐네' 라고 말해준뒤 주사실로 들어갔지만 주사를 안맞을수 있다면 뭔들 못할까하는 마음이 굴뚝 같았다. 스페인은 멋진 나라다. 특히 바르샤의 팬인 나로썬 스페인의 정취가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각자 연습으로 병원에 간 이후로 만나지 못했던 에드도 무척 반가웠다. 특별한 감성을 지닌 나는 나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반가움을 표현하기 위해 에드의 등뒤쪽에서 낮은 걸음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테이블에 동료들과 주욱 둘러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루두루 나누고 있는 에드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감히 나를 곤란하게 만들다니 각오는 하고 있겠지. 그토록 싫어하는 병원에 들렸던것, 더불어 주사를 맞았던것, 그전엔 끔찍한 괴물들이 난무하는 영화를 봤던것 그리고 그 모든것을 계획하고 자행한 에드에 대해 이를 아드득 갈았다. 다시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었어. 에드 아야톤 프로스트씨. 에드의 코앞에 앉아 있던 폴은 노련미 있는 파일럿답게 탁월한 연기 실력을 보여주며 느긋한 폼새를 유지하고 있었다. 뚝. 냉각수를 보관하기 위해 가져온 여분의 얼음을 한움큼 쥔 내손끝에서 물방울 하나가 뚝- 떨어졌다. 그 작은 소리에 에드의 대각선 방향에 앉아있던 그의 팀메이트인 로이든이 뭔가 이상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난 에드의 등뒤에 도달해버린 상태였다. 너도 당해봐. 푸핫. 걸음소리를 완전히 죽이고 다가간 덕분에 에드는 내 움직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고 로이든의 눈은 점점 기이하게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때를 늦추지 않고 에드의 옷을 죽 잡아당겨 가져온 얼음을 냅다 등안으로 와르르 밀어넣었다. "윽!" 갑자기 차가운 얼음이 몸속을 데굴데굴 굴러다니자 엄청난 이물감에 놀랐는지 에드는 낮게 신음했다. 그의 앞에 앉았던 폴은 그와는 다른의미에서 테이블을 탕탕치며 배를 잡고 신음하고 있었고, 로이든은 자신의 카리스마 와방인 팀메이트가 눈앞에서 당하는걸 보고 놀라서 눈을 휘둥그래 떴다. 감히 나를 놀리다니. 네가 매를 번거라고. 영화를 보러갔던 날 부릉거리는 맥라렌부터 시작해서 주사실에 따라가줄까라고 말하는것까지 잊을수 없는 하루를 보내게 해준 에드에 대한 나의 보답은 쿨- 했다. "루이!" "안녕-" 아직도 시린얼음을 등판에 넣고 있는 에드는 자신의 등 바로 뒤에 선 나를 보고 소리를 쳤고, 그를 향해 나는 오른손을 슬쩍 올리며 인사를 했다. 얼음 시원하지? 그나저나 큰일이다. 냉각수 보관용 얼음을 한움큼이나 훔쳐왔는데 얼한테 걸리면 그냥 황천가는 길 예약한거나 다름없는데 어쩐다냐. 뭐, 안들키면 되는거지. "너 이게 무슨... " "어라? 머리 잘랐어?" "어? 어" 화를 내려고 폼을 잡는 에드를 향해 난 과장되게 놀라는척 하며 질문했다. 머리 자른지 오래됐음서 뭘 질문하는데 놀라고 그런다냐. 신문 통해서 다 봤어. 댁은 인기인이라 감기로 기침 몇번하는거까지 신문에 다 나오는거 모르나? 나도 눈있어서 신문 보거든. 사람이 너무 착해버릇해도 못쓰는거다. 그렇게 어물쩡 머리 이야기를 하던 나는 얼의 따끔한 부름에 혼자 양심 저려하며 피트로 돌아왔다. 나의 복수는 계속될테니 기대해도 좋아. 에드. 어제의 유치한 복수 후에도 여전히 마음이 확 뚫린듯 통쾌하지 못했기에 나는 새로운 복수를 꿈꾸며 매섭게 코너링 된 꺾여진 복도끝에 붙은 사무실 문옆에 붙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중이다. 이놈 걸려라, 걸려. 내게 주사의 치욕을 맛보게 하다니 에드 평생 후회하게 해주겠어. 의외로 쪼잔한것에 무지하게 목숨거는 취향이였던 난 꿋꿋하게 에드가 올때까지 담벼락을 확- 돌아서서 이 복도를 지나갈 에드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어제 사하가 너한테 왜그런거야?" 이건 로이든 목소리다. 걸걸한 아저씨. 에드네 팀 세컨드 드라이버. 저 개쉑 때문에 번번히 에드를 간발의 차로 놓치곤 한다. FIA는 저 빌어먹을 로이든에게 매 경기마다 패널티를 줘야한다! "글쎄" 어제의 시원했던 얼음이 생각났는지 아니면 얼음의 긴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는건지 에드는 자신의 등판을 스슥 훑으며 모르겠다는듯 대답을 했다. 모른다고, 너 오늘 맨땅에 헤딩하는 고통을 맛보게 해주마. 10, 9, 8 , 7... 문뒤에 열성적으로 붙어선체로 카운트를 셌다. 6, 5, 4, 3, 복도의 꺽여진 코너를 돌아서는 소리가 들렸다. 2, 1, 땡! "퍽-!" 땡과 동시에 문을 벌컥열자 황망의 표정의 로이든이 먼저 보였다. 로이든은 바닥에 쿡- 박히듯 널부러진 에드를 보고 있었다. 아, 역시 내 선택은 올바른것이였어. 복도를 돌아나와서 왼쪽에 있는 방에 있었던것은 에드의 버릇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걸음을 걸을때 항상 왼편에 서는 버릇이 있었다. 음컁컁컁. "에드?" 약간 웃는 낯이 되어버린것을 숨기지 못한체 에드를 불렀다. 사무실 문은 휑하게 열려 있었고 삐죽이 열린 문 안쪽이 텅텅 빈걸 확인한 로이든은 질린다는 표정이 되어있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톡 까놓고 얘기해서 로이든은 내가 에드를 노리고 그방안에 있었다는걸 눈치 챈것이다. 그리고 본인인 에드 역시 내가 이름을 부르자 '너냐' 라는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르게, 누가 날 난처하게 만들라고 했냐고. "괜찮아?" 괜찮을리가 없다. 돈많은 FIA가 벽을 대리석으로 쳐발라둔 이유로 바닥이 얼마나 땅땅하고 매끈한지 까딱잘못하면 대가리에 구멍나기 딱 좋다. 그런 바닥에 사정없이 내리꽂혔으니 내게 앙심을 품을 만큼 아플것이다. 하지만 그 아픔이 내가 맞은 주사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한것이기에 난 또다른 계획을 머리속으로 구상하며 조금 과장된 몸짓으로 에드를 일으켜 세웠다. "아프겠다" 나의 과장된 몸짓에 호응하듯 에드 역시 과장된 몸짓으로 나에게 팔을 둘렀고 우리는 흡사 뒤엉킨 꼴이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얽혀있었다. 반질거리는 내 얼굴을 한대 갈겨주고 싶어하는 빛이 역력한 에드를 향해 나는 어깨를 '으쓱' 들썩여 보였고 속으로 하나 더 남았어라고 혼자서 말했다. "아프긴 괜찮아" 꼴에 남자라고 죽어도 괜찮다는 에드가 얄미워서 난 그에게 떨어져 나오며 통통하게 물이 오른 에드의 둔부를 팡팡 두들겨 주었다. 나의 엉덩이 두들김에 에드는 내 허리를 쓰다듬는것으로 보복을 가했지만 에드가 남자라 죽어도 괜찮다고 하듯 나역시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웃어주었다. 괜찮다니 아쉽네. 내일은 정말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지도록 해줄게. 기대해. 나의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후후훗. "사하! 어디가는거야?!" 미캐닉 대빵 얼이 나를 불렀다. 대답을 해주어야 했지만 대답대신 상체를 틀어 손을 두번 휘적 저어준뒤 바쁘게 뛰었다. 경기시작 12분전. 분명히 지금쯤 에드는 트랙을 달리기 직전에하는 행동인 화장실에서 혼자만의 시간갖기를 하고 있을것이다. 화장실에서 무슨짓을 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께 '부디 오늘도 1등하게 해주세요' 하고 틀어박혀서 열렬히 기도를 하고 있을거란 사람도 있었고, 식전 행사로 마스베이션을 한다더라고 하는사람도 있었고, 어쩌면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도 있었다. [쾅쾅쾅] 열여라, 참깨! 우리팀 피트에서 에드네팀 피트 앞에 있는 샤워실겸 화장실 앞에 도달하는데 12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12초만에 다시 돌아가서 피트에서 콕핀에 발 올려 놓기까지 20초도 채 걸리지 않을테니 넉넉하게 잡아 경기시작 3분전에만 돌아가도 안전하다. 아주 피가 마르도록 괴롭혀 주겠어. 거칠게 두드리는 문소리 때문에 밖을 잠시 내다봤던 에드네 팀원들은 경기가 코앞인 선수가 자기네 피트앞에 달려와 샤워실 문을 두들겨대자 아예 모두 일손을놓고 복도까지 튀어나와 멍하게 나를 쳐다봤다. 뭘봐, 새꺄. 그네들의 뜨거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더욱 열렬히 샤워실 문을 두들겨 댔다. 혹시 이녀석 경기 직전에 샤워하는거 아냐? 볼일 보는거 일수도 있지만 샤워하는 거일수도 있겠다. 그나저나 씼고 있는 중이면 나올수가 없잖아. 아, 젠장. 꼬이네. 쾅쾅쾅 주먹을 그려쥐고 마구 문을 두들겨 댔지만 에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를 지켜보던 이들은 프로스트팀의 감독에게 욕을 얻어먹고 다시 자신들의 자리로 끌려돌아간지 오래다. [쾅쾅쾅] 꺽여진 벽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쟁팀의 미캐닉들이 열심히 마무리 작업하는 소리를 들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좀 있으면 트랙을 돌 내가 남의 팀 마무리 작업하는 소리를 듣게 되다니 참 별일이다. 이자식 정말 끈질기잖아. 포기하고 돌아갈까 하다 앞으로 경기시작 7분 아주 조금 여유가 있어서 한번 문을 더 두드리려고 했다. [벌컥-] 헉! 문을 두드리기 위해 손을 위로 쳐들었던 나는 벌컥 열린문에 당황했고 나의 올려진 손을 본 에드는 무덤덤한 얼굴로 그손을 가볍게 낚아챘다. 억! 그리곤 아무것도 읽을수 없는 표정을 한체 나를 무자비하게 끌어당기더니 문을 다시 쾅- 닫아버렸다. 제기랄 문 열리면 곧장 튈요량이였다. 그런데 이렇게 끌려들어와버리다니. 이제 경기시작 6분전이라고! "우왁" 성난 맹수처럼 나를 끌어당긴 에드는 나를 벽으로 거칠게 밀쳤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고로 무척 당황한 나는 허무한 버둥거림을 몇번쯤 쳤는데 당연한일이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내 왼손을 오른손으로, 내 오른손을 왼손으로 완전히 결박해버린 에드는 아주 느긋한 태세로 나를 내려다 봤다. 젠장 5분 남았어! "나 괴롭히면 좋아?" 상당히 느긋하면서도 무서운 목소리로 에드가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지만 마음과 달리 재빠르게 잔머리를 굴려 고개를 가로로 도리도리 내저었다. 하지만 독심술이라도 배운건지, 나의 진심을 보기라도 한건지 에드는 '거짓말' 이란 표정으로 슬쩍 웃으며 아프게 내 손목을 움켜잡아왔다. 씨발, 너 힘좋은거 자랑하냐! 이거놔! 아아아악. 경기시작 4분 30초 전이다. 피가 마른다. 우라질. "윽-" 묵직한 움직임으로 하복부쪽을 공략하듯 부딪혀오는 에드의 몸짓에 난 하얗게 질렸다. 흘러가는 시간이, 옷을 입고 있음에도 생생히 전해지는 음란한 질척임이 생경하고 당황스러워 아주 하얗게 질려가는것 같았다. 머리가 텅 빈다는 말이 이런거로군. 아니, 완전히 비지는 않았다. 머릿속에 마치 카운트 다운하듯 시간이 아주 빨리 뚝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제기랄. "아직 시간은 많아" 이제 겨우 4분밖에 안남았는데 4시간 뒤에나 경기가 있는것 처럼 말한 에드는 잔인하게 웃고 있었다. 많기는 뭐가 많다는거야 이새꺄! 내가 왜 이자식을 골려먹겠다고 했는지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즈음 내 얼굴 바로앞에 에드의 얼굴이 다가와 있었고, 눈깜짝 할 사이 말캉한 입술이 말랑하게 부벼졌다가 떨어졌다. 피식. 에드는 조바심으로 얼어버린 나를 놀리듯 웃는 낯으로 입술을 부딪혔다가 떼어냈고 목덜미를 물었다가 놓아주었다. 미친. 이 변태새꺄! 너는 경기직전에 이러고 싶냐!!! 잠깐, 경기직전이 아니면 이런짓 해도되냐? 아 씨발, 그건 나도 잘모르겠지만 여하간 그만했으면 좋겠다. 지나가는 시간에 안타까움과 막연한 떨림으로 몸을 비트는 나를 에드는 작정하고 더듬기 시작했다. "웃, 뭐하는거야!" 허벅지 안쪽으로 미끄러지듯 스르르 스며들어온 에드의 손이 거칠게 내 허벅다리의 근육을 자극했다. 민감한 곳이자 무착 민망한 곳이기도한 부분의 매우 가까운곳에서 자극을 받자 생물학적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 일어났고 그 모습에 나는 펄쩍 뛰었지만 에드는 능청스레 시원한 웃음만 웃었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만 놔주면 안될까? 벌써 예상했던 경기시작 3분이 째깍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난 경기에 나가고 싶다고!!!! 미친새처럼 퍼득거리는 나를 에드는 가볍게 제압했고 만지고 싶은 부분을 마음껏 만지작 만지작 주물럭 주물럭 마치 제몸뚱이 처럼 탐색해댔다. 목덜미의 여린살을, 손목의 둥근 뼈마디 위를, 불안한 빛이 되어있을 눈을 덮는 얇은 눈꺼풀을, 쿵쾅되는 심장을 덮고 있는 가슴을, 긴장으로 꽉막힌 폐의 헐떡임이 그대로 전해지는 복부를, 바르르 떨리고 있는 어깨를 훑듯이 손으로 더듬은 에드는 조심스럽게 다시 입술을 맞부딪쳐왔다. "에드-" 완전히 입이 막혀버리기 전에 쥐어짜듯 에드를 불렀다. 나의 부름에 에드는 입을 부딪힌 상태에서 대답했다. "응" 은은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머리가 아프게 징- 울렸다. 부드럽게 움찔거리는 입술의 놀림에 눈을 감아버렸다. 놀리러 왔는데 장난감처럼 놀잇감이 되어버렸다. 고개를 도릿질쳤지만 진득하게 들러붙은 에드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아랫입술을 지긋이 물어오며 반항하지 말것을 종용할 뿐이다. 츄웁, 츄웁. 소름돋는 소리를 내며 물끼어린 살부딪치는 행위는 한동안 계속됐다. 거칠게 몰아쳤다 부드럽게 떠밀려가는 일이 몇번쯤 반복되고 내 입안의 붉은 살들이 완전히 감각을 잃었을때쯤 에드가 떨어져나갔다. 시계를 한번 돌아본 에드는 나긋하게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괴로워?" 난 대답대신 말로 표현할수 없는 악으로 가득찬 눈빛으로 째려봐주었다. 내 얼굴을 본 에드는 갈때까지 가보자는 폼새로 내뺨에 자신의 뺨을 포갠뒤 내귓가에 대고 속사포처럼 많은 말을 늘어놓았다. "난 이렇게 괴롭혀지는걸 좋아하는데, 혹시 또 괴롭힐 의향 있으면 내가 한것처럼 해줘. 아직 1분 남았으니까 뛰어가면 딱 맞겠네. 잘가. 트랙에서 보자" 제할말을 마친 에드는 뺨에다 뺨으로 키스를 하듯 살짝 부딪치고, 살을 부빈후 등을 돌려 가버렸다. 넓은 등에대고 어떤말이든 소리치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급박해서 그만두고 뒤돌아 뛰었다. 피트에 도착하자 경기 1분전에 돌아온 나때문에 피가 다 증발해버린것 같은 얼이 헬밋을 건내줬고 난 헬밋을 어거지로 쓰며 머신에 날으듯 올라탔다. 심장이 울렁거리는건 경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면서. [쿠오오오오오오오-ㅇ--- 고오오오오 ---------오-ㅇ] 뒤에서 바싹 붙어 따라오는 두대의 머신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나는 에드고, 다른 하나는 로이든이다. 오랜만에 선두에 서서 질주를 하고 있는 내가 그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것인지 쌍으로 달겨들어 크르릉 거리고 있었다. 코너에서 바싹 붙어 돌고, 직선에서 미친듯이 내달려봤지만 끈적하게 들러붙은 두 머신은 떨어지지 않았다. 찐득이 같은것들. <사하, 그대로 계속나가> 코너 바깥쪽에서는 에드가, 코너 안쪽에서는 로이든이 거대한 굉음을 내며 뒤를 바싹 쫓고있었다. 젠장, 까딱 잘못하다간 뒷쪽을 물려버릴것 같다. 마지막 발악을 하듯 혼신을 다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내심 마음이 불안했다. 왠지 몰아붙여져서 코너에 몰린 느낌, 사냥을 당하기 직전의 질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은 그런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대로 내지르라고 했지만 지르는것도 정도껏이지 머신이 덜덜 흔들려 완전히 다 분해될 정도로 전속력을 내고 있어서 골이다 흔들릴 지경이다. [위이이이이이-----------------잉] 몇미터 지점을 통과했다고 파일럿이 피트에 알려줬을때 이미 머신은 말한 지점에서 100미터쯤 떨어져있는곳을 달리고 있을정도로 어마무시한 속도를 자랑하는 포뮬러 원이다. 선두에 서있다가 눈깜짝할 사이에 추월당하는것도 비일비재하다. 얼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내지르고 있었다. 올라가지 않는 속도를 더 올려보겠다고 물위에서 우아한척 하지만 실상 물 안쪽에서는 열나게 물길질 하는 백조처럼 머신위쪽으로 보이는 몸은 편안하게 앉아있지만 보이지 않는 아래에서는 미친듯이 풋워크를 해댔다. 하지만 뭐가 잘못된건지 아니면 정말 에드는 천재인건지 그것도 아니면 간악한 로이든의 목숨을 건 코너 바싹붙기에 또 속은건지 내가 살짝 안쪽으로 차체를 붙이자 기다렸다는듯 에드가 바깥쪽에서 커다랗게 호를 그리며 추월해 버렸다. 이런 젠장. 화끈하게 난무하는 욕설에 피트는 쫄아버린건지 어찌하라는 명령이 없었고 그들이 뭐라고 한다고한들 지금은 어쩔수 있는 상태도 아니였다. 마지막 바퀴의 마지막 코너였다. 쭉 뻗은 직선로를 힘있는 엔진소리와 함께 달려가는 에드의 뒷꼭지를 보며 또한번의 쓴패배를 삼켜야 했다. <사하, 돌아와> 망연하게 트랙을 부릉거리며 도는 쓸데없는짓이 얼의 신경을 건드린건지 그의 목소리는 꽤 신경질 적이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답답한 사람은 나였다. 프로스트의 피트는 축제 분위기였고, 우리팀 피트는 말은 없지만 '만년 2위' 라는 딱지가 또한번 거대하게 낙인찍힌것이 답답한지 공기마저 찾아오지 않는 곳처럼 삭막해 보였다. [그르르르릉-] 부릉거리는 머신의 소리가 완전히 머지자 사람이 뛰어오는 투닥임 소리가 들렸다. 선명하고 또렷이 들렸지만 온몸에 힘이 쭉 빠진 이유로 헷밋만 얼에게 넘겨주고 머신에 앉은 고상태 고대로 앞만 빤히 보고 있었다. 얼은 이맛살이 구겨진 표정에 함께 얼굴을 일그려줬지만 별달리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번이 몇번째 2위인지 헤아리기도 두렵다. 툭. 와글와글 거리는 사람들을 개미떼처럼 끌고 온 사람은 다름아닌 에드였다. 그는 웃고 있었고, 그 미소는 굉장히 순수했다. 자신의 라이벌이자 동료인 내게 손을 내미는 그 모습은 올바른 스포츠 정신이 제대로 새겨진 훌륭한 선수의 모습이였다. 정당하고 올바른 그손을 뿌리칠 힘이 내겐 없었다. 스윽, 내밀어진 에드의 손을 잡자 그는 나를 당겨서 머신밖으로 끌어냈고 주위에서는 수백개의 프래쉬가 번뜩였다. 탁탁. 끌여내려진 나는 다리에 힘이 반쯤 풀려있었던 터라 에드가 끄는대로, 움직이려는대로 행동했다. 마치 그의 인형같았다. 하지만 나의 깊은 자괴감을 에드는 모르는 것인지 밝게 웃고있었고 그얼굴에 난 밉다고 말할수 없었다. 그의 잘못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내가 그보다 못난것이 잘못이지. 사람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우리는 동료애를 과시하듯 얼싸안았고 그모습을 수백개의 카메라는 좀더 가까운곳에서 찍기위해 치열하게 신경전을 벌였다. 펑- 샴페인이 터트려지고 사람들은 뿜어져 나오는 샴페인을 맞으면서도 다들 하나같이 웃었다. 내표정이 어떠했는지는 알수없지만 나를 보고있는 에드의 표정이 나쁘지 않은걸로봐서 그다지 불손했던것 같지는 않았다. 3위를 한 로이든은 드물게 내게 악수를 청했고 그와 악수했다. 얼은 그들과 겉으로 동화되어가는 내모습에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지만 나는 나사빠진 로봇처럼 얼떨떨했다. 와드드득. 습관처럼 샤워를 하고나와 테이블에 굴러다니는 사탕을 집어먹었다. 우리팀원들은 순위가 결정되고 난 직후의 우울함을 털어버리고 좋은게 좋은것이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듯 2위도 나쁘지 않다며 서로를 다독이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얼 또한 그 분위기가 흠뻑 취해 미소를 짓고있었다. 나는 그분위기에 취할듯하면서 취하지 못해서 어정쩡한 기분으로 사탕을 씹어먹고 있었다. "참 이상하단 말이야" 뭐가? 사탕을 와드득 씹어먹는 내게 경기 결과에는 조금도 관심없는 컴퓨터 공학박사이자 기계공학 전문가인 우리팀의 머신 디자이너 겸 내게 시비걸기를 주된 업무로 삼고있는 데이빗이 트집을 부리려는듯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또 뭐가 불만인데. 실력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성격하나로만 치면 나만큼 개차반인 데이빗의 말에 모두들 일순 조용해졌다. "이녀석은 이렇게 아무거나 막 주워먹는데도 왜 살이 안찌는거야?" 이런 개또라이 같으니라고. 데이빗은 투실투실 살이 붙어 임산부처럼 불려져 있는 자신의 둥둥한 배를 치며 거만스럽게 말했다. 공학, 컴퓨터, 기계 라는것은 운동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 있기에 이렇게 박사요 하는 사람중에 데이빗처럼 몸이 비대한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와 달리 군더더기 없는 몸을 갖고 있어야 하는 파일럿은 늘씬하다. 아마도 데이빗은 자신보다 많이 먹으면서 좀체 살이 붙지않는 나의 체질이 상당히 불만스러운 모양이였다. "몰랐어?" "뭘?" 대화할 가치가 없어서 씹어버리는 나와 달리 이럴때만 맘이 너그러워지는 얼이 데이빗의 푸짐한 살점을 '쿡' 찌르며 말을 붙였다. 얄짤없이 씹히는가 싶었던 데이빗 얼이 자신의 말을 받아쳐주자 얼씨구나 하며 응대했고 시시콜콜한데 괜히 마음씨 넓은 얼은 허허 웃으며 대답해줬다. 하여간 악덕한 늙은이다. "저녀석 매일 10키로씩 뛰잖아" "뭐? 피트니스 클럽에서 한번도 못봤는데?!" 어이구야. 그몸으로 피트니스 클럽에도 가슈? 와드드득. 난 속으로 빈정대며 굴러다니는 사탕 하나를 입으로 더 구겨넣었고 내 그런모습에 데이빗은 더욱 인상을 썼다. 하루에 사탕 한봉지씩 입으로 털어넣어도 내가 댁처럼 되는 일은 없을거라오. 난 의기양양했고, 데이빗은 무언의 조롱에 기분이 상했으며 얼은 의미심장했다. "데이빗" 얼의 다정한 부름에 데이빗은 둥둥하게 붙은살을 흔들며 얼을 쳐다봤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인상이 구겨졌다. "사하는 머신하고 상관없는 일이라면 기계한텐 근처에도 안가는 놈이란거 몰랐어?" 그래. 악덕 스크루지 스승같은 얼. 두고보자고. 와드드득. 데이빗의 의뭉스런 눈빛에 얼은 더욱 눈을 반딱이며 미소를 지었고 나는 모른척 외면했다. 저놈의 둥둥이 때문에 나의 약점이 세상에 빛을 보는구만. 와드득, 와드득. 이빨이 부셔져라 사탕을 씹어먹는 나의 모습에 미캐닉들도 매우매우 궁금하다는 눈빛이 되었다. "머신하고 상관없는 기계 근처에 가면 머리가 울려서 못살잖아. 저녀석은." 얼은 비웃듯 나의 비밀을 까발렸고 모두들 에? 하는 멍청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래, 그래. 댁말이 많수. 나는 머신하고 상관없는 거라서 모든이의 친구라는 핸드폰도 혐오하고, 남들이 체력훈련을 위해 열심히 러닝머신 위를 달릴때에도 깅깅 거리는 기계 근처에 가면 해골이 흔들려서 등돌려 외면하고, 엘리베이터의 위잉- 거림도 부담스러워 올라갈때 아니고선 웬만한 높이에선 계단을 이용할정도고, 바퀴 달린것에 미치지 않고서야 할수없는 파일럿이라는걸 증명하듯 모든 파일럿들이 삐까뻔쩍한 스포츠카들을 몰고다닐때도 굳이 기계를 가까이둘 필요가 없다고 차도 한대없고, 냉장고의 뿌- 소리에도 치를 떠는 성미다. 왜? 불만있어!? 그래서 내가 남들보다 못하는게 뭔데! "근데 어떻게 파일럿이 된거야?" "그러니까 머신하고 상관있는거라면 괜찮대도" 그래, 그래 씹어라 씹어. 하긴 실제로 그렇기도 그렇다. 그냥 컴퓨터를 하려고 하면 웽웽대는 컴퓨터 본체의 소음때문에 견딜수 없지만 (심지어 노트북의 그 액정의 밋밋함에 밥맛이 떨어져 등을 돌린다) 머신을 타기전 작전을 위해 시뮬레이션을 보는거라면 컴퓨터 앞에 8시간을 꼬박 앉아있어도 말짱하다. 심리적인 요인같은데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괜찮아 질거라고 얼이 은근히 병원갈것을 권유도 했지만 기계로 치열하게 달리는 직업이면서 평소에까지 기계와 친할필요는 없다싶어 체질이려니 하고 방치하고 있다. "거참 희안한 성미네" "그렇지, 아주 성격드러운거 체질로 까지 완전히 보여준달까" "너 티비도 안봐?" 첨단장비에 둘러싸여져서 달리는 파일럿이 기계하고 별로 안친하다는것에 대해 데이빗을 포함한 이하의 사람들까지 모두 흥미롭다는 얼굴이였다. 한순간에 사람 괴물 만들다니. 젠장, 빌어먹을 늙은이. 냉각기 보호를 위해 가져온 얼음 내가 다 분실했는데 평생 안가르쳐 줄거다. 칫. "뭔상관이야" "아니, 웃기잖아. 근데 너 그럼 10키로씩 뛰는거 그냥 길에서 뛰는거야?" "뭔상관이냐고"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는 데이빗과 한참동안 입씨름을 해야했다. 지겨운 놈이 아닐수 없다. 으이구, 지겨운 놈! 뚜벅뚜벅. 텁텁한 맛이 나는 터벅터벅한 걸음이 벌써 세바퀴째 반복되고 있었다. 우승을 놓치고 아쉬워하다 웃는 얼굴의 에드를 보고 그래 어쩌겠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뒤 팀원들과 잠시 토닥이고 숙소로 다시 돌아왔는데 언제나 찾아오는 지독한 두통이 오늘도 잊지 않고 방문해 주셨다. 아픈머리 다독이는데는 약이 최고지만 약을 너무 먹어대 버릇해서인지 이제는 약도 통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밤거리를 혼자 걷고있다. 호텔의 산책로도 있었지만 굳이 도로쪽 길을 선택한 이유는 쌔앵- 하고 거칠게 바람한번 일으키고 가버리는 차들이 시끄럽긴 했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산책하는 내뒤를 졸졸 따라오는 사람들의 눈길보다는 덜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그르르르르-릉] 걷고있는 내옆에 차 하나가 속도를 줄이고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웃기는 놈이다. 힐끔 쳐다보니 모터 스포츠의 제황으로 굴림했던 포르쉐가 내놓은 카레라 GT. 힘에서는 무식하달 정도로 파워있기로 유명한 람보르기니와 맞붙어도 손색이 없다고 평가 받는 포르쉐라. 저런걸 끌고 다닐정도면 차라리 F1 파일럿이나 할것이지 왠 괴물같은 차를 도로에다 끌고 나오는지 참 실없는 녀석이다. 사실 카레라가 어디가 어떻게 봐서 도로에서 끌고다니는 슈퍼카란건지, 저건 앞에서보나, 뒤에서보나, 매쳐서 보나 트랙용 차량이다. 한마디로 무식한 차란 말이다. 이해가 안된다면, 자동차의 새로운 왕국이라고 불릴수 있는 미국에서도 포르쉐 카레라 GT 정도의 차는 트럭에 실고 나가서, 잠시 대로를 노닐듯 차를 몰아준뒤 다시 트럭에 실고 집으로 돌아갈 정도로 대단히 무식한 차다. 타고다니기 아까울정도인 차란 말이다. [빠앙-] 어쩔씨구리? 너 지금 나 불렀냐? 멋진 하드톱이 씌어진 카레라가 나를 부르듯 크락션을 울렸다. 머리 아파죽겠는데 별게 다 꼬이네. 어라? 왠 실없는 놈인가 했더니 차체의 하드톱이 벗겨지며 어느새 지붕을 감추고 완전한 스포츠카 형상을 갖춘 괴물차 속에는 에드가 앉아있었다. "에드?" 전에는 벤츠엔진 쓰는 맥라렌이더니 이번엔 트랙에서 쫓겨나서 도로에서 황제로 군림하는 포르쉐냐? 니네집 차고에는 혹시 경쟁팀의 차가 종류별로 다 있는거 아닌지 모르겠다. 참 못말릴 놈이라는 뜻으로 고개를 짤랑짤랑 흔들자 그걸 알아들었는지 에드가 씨익 웃는다. 그러니까 멀쩡하게 보여도 실상 속도에 미친놈들은 속으로는 바퀴 달린것이라면 뭐에든 열광하기 마련이지. [툭툭] 차를 완전히 정지한 에드는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친다. "두통이지? 바람이나 쐴겸 타" 안봐도 비디오다. 둥둥한 데이빗이 이곳저곳에 가서 떠들어 댔겠지. 사하 녀석은 말이지 기계 근처에 못가서 차도 한대없대. 그 둥둥한 몸 이끌고 다니며 둥둥한 목소리로 만방에 소문 내줬겠지. 암, 누구신데. 그나저나 이거 오리지날 카레라GT 라면 정지 상태에서 100키로 속도 내는데 3.9초 밖에 안걸린 다는데 바람쐬다 날려가는거 아닌지 모르겠다. 사양할 필요없겠지. 웃쌰. 문도 열지않고 머신에 오르듯 웃챠 뛰어서 차에 오르자 에드가 웅우우우우웅- 차를 울려댄다. "한번 신나게 질러봐" 난 거만한 폼새로 명령을 내렸고 에드는 기다렸다는듯 내달리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오---------------------------------------옹] 거친 금속의 쇳소리를 트랙이 아닌 곳에서, 내가 조정하는게 아닌 상태에서 속도를 즐기며 듣게될줄은 꿈에도 몰랐건만 세상 참 오래살고 볼일이다. 허허로이 웃으며 머리칼을 어지럽히는 엄청난 속도에 흠뻑 취했다. 머리를 아프게 물고있던 두통이 날려가 버린것 같다. "으음. 프로스트씨?" "네" 번쩍이는 라이트가 나와 에드를 정면에서 아릿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와 함께 경찰 아저씨의 난감한 목소리도 들렸다. 또,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푸타타타타 푸타타타타] 울어대고 있었다. 더불어서 보조장치로 헬리콥터용 라이트가 까만밤 공기을 가르듯, 신내림 받는 사람들에게나 비출법한 긴- 빛을 우왕자왕 내리비추고 있었다. 헬리콥터의 소음은 무척 시끄러우편이지만 F1 경기를 트랙안에서 보내는 파일럿에게는 일상적인 소음이다. 오히려 에드를 난처한 얼굴로 부른 경찰아저씨에게 방해가 되는것인지 그는 무전으로 헬리콥터를 쫓아버렸다. 내지르라고 했지만 그렇게 무식하게 속도를 낼줄은 몰랐다. 일반도로를 300키로로 달리면는짓 따위를 할 정도로 경우가 없는 인간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는데 믿었던 도끼에 발등찍힌다고 말끔하게 보였던 에드는 여기가 도로인지 트랙인지 분간을 못한체 경찰이 출동하기 전까지 정말 끝장나게 내질렀다. 지르기의 진수였어. "여기는 일반도로 입니다" "네" 버르장머리라곤 요만큼도 없는 느긋한 모습으로 에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분위기 봐선 한두번해본 솜씨가 아닌듯 싶다. 거만도 저런 거만이 없는지라, 고개 꼿꼿이 들고 하실 말있으면 읊어보란 표정이다. 덧붙여서 할말 끝났으면 이제 그만가게 비키라는 표정도 약간있다. 싸가지와 예의범절을 아슬하게 넘나드는 모습, 그게 딱 지금의 에드를 표현한 말일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설교하고있는 경찰이 더 주눅든 모습이다. "이번엔 그냥 보내드리지만 또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네" 에드는 '것봐, 네가 뭘 어쩌겠어' 란 미소를 한쪽에 베어물고 무뚝뚝하게 경찰을 마주봤고 경찰 아저씨는 잠시 뜸을 드렸다가 입을 열었다. 한손으로는 팬을 다른 한손으로는 커다란 종이를 내밀면서 화장실이 다급한 멍멍이처럼 아주 곤란한 얼굴이였다. "싸인 좀 부탁드립니다" 에드는 당연하다는듯 종이를 받아서 싸인을 멋드러지게 해주었고 경찰 아저씨는 황송한듯 받아드셨다. 그리곤 번쩍거리는 라이트를 빤히 보고있는 나를 힐끔이시다가 눈이 마주치시자 어색하게 웃으셨다. 에드는 아까 얼음장같이 굴었던 행동을 싹 버려버리고 경찰 아저씨 손에 들려있던 종이를 내게 건내주었다. 내꺼도? 좀 어벙하게 눈을 꿈뻑이자 에드는 어서 싸인하라고 재촉했다. "내꺼까지 필요할까?" 네것이 있는데 내꺼까지 할필요가 라는 나의 말따윈 관심도 없는지 에드는 어서 싸인을 하라고 했고 경찰아저씨는 또다시 어색하게 웃으시기만 했다. 아, 뭐 싸인한장 하는게 큰일은 아니지만 에드 아야톤 프로스트의 싸인 옆에 내싸인 나란히 박힌다는것이 애매모호했다. 하라니까 하긴하겠는데 받침을 할만한 평평한 곳이 없어 종이가 흐느적거려 싸인하기가 쉽지 않을것 같았다. 에드야 기술좋게 핸들에 올려놓고 싸인을 했다지만 나는 그마저도 멀어서 종이의 구겨짐을 막을수가 없었다. "에드, 등좀 빌려줘" 툭툭, 넓직한 에드의 등을치며 빌려달라고 하자 그는 순순히 등을 내밀었다. 스윽. 스윽. 휘갈기듯 종이 위에 이름을 새겨넣으며 종이를 짚고 있는 손으로는 선명하게 느껴지는 에드의 등근육을 은근히 더듬었다. 근육이 등에 옷을통해 느껴질만큼 있을수 있는지 오늘 처음 알았다. 옷이 얇은걸까?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날짜까지 꼼꼼히 적은뒤 종이를 내밀었다. "안전운전 하십시요" 종이를 받아든 경찰 아저씨는 반듯한 인사를 하고 가셨고, 에드는 또다시 엔진을 우우우웅- 우우웅- 가열시켰다. 못말리겠군. "루이, 네 머신이름 무슨뜻이야?" "가리온?" "응" 일대의 경찰을 한바탕 들썩이게 만든 장본인인 에드는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갔던길을 되짚어 왔다. 나무가 우거진곳 근처에 차를 세운 에드는 지나가듯 질문을 던졌고 그 아무것도 아닌 질문에 내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하늘은 지나치게 까맸고, 그와 반대로 별은 너무 반짝거렸다. 그리고 지나치게 밝은 달도 반갑지 않았다. 가리온. "갈기가 검은 백마를 한글말로 가리온이라고 해" 한글. 국어. 그래, 먼타국. 나의 조국. 그러나 난 그나라의 사람일뿐 국민이 아니다. "특이하네. 그럼 퀘옌이랑 안투도 한국이름이야?" 내 예비머신들의 이름을 줄줄 꿰고있는건지 에드는 당연히 그런거냐는 표정으로 질문했고 난 잠시 의아함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너 내가 붙인 그 닭살스런 이름 어떻게 다 알고 있는거야? 굉장히 불쾌하면서도 굉장히 기분이 좋아진다는게 이런걸테지. 아니라는 나의 대답에 에드는 굉장히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퀘옌은 달이고, 안투는 해야. 한국어 아니고 칠레 원주민어야" "칠레 원주민?" "응" 에드는 뭔가 더 물어보고 싶어했지만 내가 고개를 돌려버리자 입을 다물었다. 대답하기 싫다. 그나라 국민 아닌 녀석이 순한글로 머신에 이름붙인것도, 생전 가본적 없는 칠레의 만나본적 없는 원주민들의 말로 서브머신들의 이름을 붙여줄수 있었던 이유를 아직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짙은 침묵이 이어지고 있었다. 에드는 답답한듯 나를 힐끔였지만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나는 그의 상황따윈 고려하지 않았다. "루이" "응" "유리같은 사람은 뭐라고 불러?" 뭐라는거야 이녀석. 너 지금 뭐랬니란 표정으로 돌아보자 에드는 정말 궁금하다는 얼굴로 나를 보고있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그건 왜?" 약간 딱딱해져버린 목소리는 사무적이라고 느껴질만큼 뚝뚝 부러지고 있었다. 그런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에드는 진지하고 진중한 얼굴을 유지한체 심장이 간질해지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냈다. "네가 유리같은 사람이잖아" 무슨말이 그따위야. 내가 왜 유리같은 사람인데? 너 바보냐? 시속 300키로로 미친듯이 네뒤를 질주하던 녀석이 누구라고 생각해? 네앞에 있는 내가 매일 날이면 날마다 어떻게서든 널 이겨보려고 덤비는 놈이란걸 잊은거냐? 기가 막혀서 피식 웃어버리자 에드는 답답한듯 핸들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은척 하지만 너, 사소한 일에도 아프잖아. 스쳐지나가듯 행동해도 마음속에 담고있잖아" 그래. 오늘도 웃고있었지만 져버렸다고 스스로를 책망하고 힐난했다. 나의 본심을 꿰뚫어 본 에드에게 고마움과 당혹감을 동시에 느끼며 난 웃으며 이맛살을 찡그렸다. 말해준적 없는 사실을 읽어내는 사람은 환영받지 못한다. 특히 나처럼 성격 나쁜녀석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한듯 에드의 표정은 좀전보다 편안해 보였다. 거기에 또 심통이 나서 난 인상을 구겼다. 사람 당황하게 해놓고 지는 편안하다 말이지. "루이?" 나는 웃었다. 입꼬리를 올리고, 눈꼬리를 접으며, 얼굴을 활짝 웃어 보였다. 괴롭힌다고 했다. 나는 에드에게 손을 뻗었다. 의아하게 흔들리는 눈을 덮는 얇은 눈커풀을 더듬으며, 손목위에 도드라진 둥근뼈를 돌려쥐며, 파르르 굳어있는 입술을 문지르며, 꿀꺽 마른침을 아프게 삼키는 목덜미를 훑어내리며, 와들와들 떨고있는 심장을 감추고있는 가슴을 매만지며, 가뿐숨으로 부풀어 올랐다 심하게 내려앉는 복부를 움켜쥐며, 단단한 근육으로 감싸여진 어깨를 끌어안으며 그렇게 여기저기를 손끝으로 애무하며 괴롭혔다. 남의 본심을 허락없이 읽었으니 이정도 괴롭힘쯤은 각오하고 있었겠지? 나는 진득하게 웃으며 대놓고 에드의 몸을 주물거렸고 내행동을 그제서야 파악한 에드는 달뜬 한숨을 내뱉었다. 말하려고 열리는 입술을 고개를 슬쩍 내밀어 부딪혔다. 쪽- 소리를 냈다가 떨어지는 입술의 말랑거림이 생경하다. 이상하네? 뭔가 소름돋는 끔찍함이 있을줄 알았는데 낮에 했던 그 말랑거림은 여전히 말캉거리며 단맛을 뿜을뿐 그외에는 느낄수가 없었다. 갸웃대는 내 목덜미에 손을 뻗은 에드는 조그맣게 웃고 있었다. "난 목덜미란 말이 왜그렇게 야하게 들리는지 모르겠어" 야하게 드린다는 목덜미를 훑으며 덮쳐오듯 내몸위로 에드가 밀려왔다. "그래?" 심드렁한 내 되물음에 에드는 이러면 어쩔테냐는 눈빛으로 다시 말했다. "허벅다리란 말도 꽤 좋아해" 흐응. 야하게 들리는 목덜미와 좋아한다는 허벅다리를 감싸안으며 에드는 완전히 내위에 올라탔다. 스르륵. 시트가 뒤로 넘어부드럽게 넘어갔다. 흠. 이거뭐지? 받아쳐야 하는건가. 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난 넙적다리가 더 야하게 들려서 좋던데" 장난을치듯 농담을하듯 에드의 넙적다리를 움켜쥐자 에드는 웃었다. 지붕의 하드톱 개폐시간이 채 30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수제 스포츠카는 명성대로 빠르게 밤공기를 차단하며 스르릉- 닫히며 밀실을 만들었다. 오늘밤은 야하게 들려서 꽤 마음에 들어하는 넙적다리를 마음껏 만져볼 예정이다. 끄응. 생각없이 몸을 뒤척이던 나는 다리를 이불에서 빼내려다 끔찍한 고통을 느꼈다. 으욱. 몸을 한번 비틀때마다 생생히 전해져 오는 고통에 눈물이 쏙 빠질만큼 아팠다. 함부로 움직이는것은 곧 끔찍한 통증과 직격된다는걸 깨닫고 나니 숨쉬는것 외에는 할수가 없어져 목덜미까지 덮여진 얇은 이불을 걷어내는것 조차 그만둬 버렸다. 숨쉬기, 숨쉬기, 숨쉬기. 숨고르기를 몇번쯤 천천히 한후에 상체에 힘을주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을 단 1미리도 일으켜세우지 못한체 여기저기 뻐끈하게 뭉친 근육들의 비명소리만 들어야했다. 뼈속까지 근육이 뭉쳤는지 온몸이 삐걱삐걱 고장난 고철덩이처럼 무거웠다. 이런 염병할.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내가 그 고통의 풍랑을 겪고 있는 동안에도 옆에서 곤히 잠을자고 있는 에드는 여전히 세상모르게 잠을자고 있었다. 끄윽. 고통에 찬 신음을 삼키며 뻐근하게 울려오는 팔에 어거지로 힘을줘서 고양이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아 세우는데 성공했다. 헤엑헤엑. 움직이는것 하나가 이렇게 힘들어지는 날이 올줄 몰랐다. 쌔근쌔근. 나의 크고 거친 호흡에도 불구하고 죽은듯이 자고있는 에드를 보자 이건 너무나 불공평하고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그래서 내몸같지 않는 몸을 또다시 우악스럽게 움직여 얌전하게 누워있는 그의 몸위로 '철푸덕' 올라타듯 덮쳐서 이녀석을 어떻게 할까하고 빤히 들여다 봤다. 잘생기면다냐, 재수없게. 감겨진 눈이 편안해보였다. 편해보여서 좋긴하다라는 마음과 함께 발동되는 심술에 난 허억. 숨을 잘못 들이킬 만큼 역한 고통을 집어삼키면서도 다리를 들어 무릎으로 있는힘껏 에드의 복부를 찍어버렸다. 일어나, 이새꺄! 퍽. 가차없이 내려찍어진 내 무릎은 단단한 에드의 복부를 무식하게 강타했고 그와 동시에 에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우악" 번쩍 눈을뜬 에드는 순간 [빙글] 아래에 깔렸던 몸을 옆으로 반동을 줘 깔끔하게 전세를 역전시켰다. 안그래도 사지가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움직일수없을 정도의 고통으로 찌르릉 거리는 몸인데, 바람같은 속도 휙- 자세를 바꿔버리자 몸이 갈갈이 찢겨지는것 같았다. 정말 울수있었다면 울어버릴만큼 아프다. "아, 이런. 루이, 괜찮아?" 씨발놈아. 너 같은면 괜찮겠냐? "죽어!" 몸아픈거 생각치 않고 역동적으로 다리를 들어올려 퍽. 에드의 옆구리를 한방 차주었다. 힘빠진 다리지만 위압감을 느낄만한 힘인데도 불구하고 에드는 처연한 모습으로 매를 맞는 사람처럼 그 다리를 고스라니 받았다. 얼씨구, 병주고 약주냐? "씻을래?" "못움직여" 뒤적. 처음보다 한결나아진 속도로 몸을 뒤척여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침대에 엎드렸다. 아파죽겠다고 대놓고 짜증을 부리는 나의 발차기를 한방 먹은 에드는 재빨리 옷을 구겨입더니 물을 내밀며 내 눈치를 살폈다. 아, 골이야. 울렁울렁 머리가 아프게 울리는걸 느끼며 시원한 물을 삼켰다. 못움직인다는 내말을 개무시하는건지 에드는 물을 내어주고는 욕실로 달려가더니 물을 받고있었다. 지금와서 착한척해봐야 말짱 꽝이야. 으득, 어젯밤만 생각하면 아직도 핏대가 서는것 같다. "루이-" 빈정거리는건지, 냉정한건지, 다정한건지 잘 모를 목소리로 부르는 에드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 몸이 아프면 짜증스럽다. 더군다나 지금은 아파서 짜증나는것중 단연코 최고라고 할만큼 생짜증이 발동하는 순간이였다. 감히 나를 깔아버리다니, 찢여죽여도 마땅찾을 놈이 아닌가. 아득, 입안의 부드러운 속살들을 징걸징걸 빨아들이며 어젯밤 왜 남자에게 깔려야 했는지 리플레이 해보려했지만 끓어오르는 화때문에 떠오르던 장면들에 불길이 확 일어 사라져버렸다. "짐승" 부드럽게 손을 밀어넣는 에드에게 떨어져란 말보다 짐승같은 이란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어젯밤에 그렇게 해놓고도 지금 또 들러붙다니 너는 몸이 강철로 만들어진 놈이냐? 내기색을 살피는 에드의 표정은 별로 특별나지 않았다. 그저 다정하게 몸이 달라붙어있을뿐 퀄리파잉 하기전 팀원들과 작전을 짜는 얼굴과 별다를게 없었다. "씻어야지" 뿌듯하게 나를 하얀천감으로 둘둘 말아싸며 에드가 말했다. 어쩔시구리. 이젠 보모노릇에도 취미들렸냐? "내려놔" 슥슥 두어번 손을 놀려 내몸을 이불로 돌돌말아버린 후 가볍게 안아올리는 에드에게 상당히 불쾌한 어조를 말했다. 내가 짐짝이냐, 네 어깨에 매달려가게? 사실 지금이 몸상태로는 꿈쩍할 기력도 없었지만 나는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하지만 요근래 겪어본 에드는 나의 고집을 가뿐히 무시할수 있는 뻔뻔함과 아무것도 아니란 얼굴로 지하고 싶은대로 다 하는 싸가지 없는 녀석이였다. [콰르르르르] 미지근하기 보다는 조금 시원한듯한 물이 욕조에 쏟아지고 있었다. 이불에 둘둘 말린체로 난 그 욕조속에 내려졌다. "인상 좀 풀어" 친구에게 언제나처럼 아침 먹었어?란 인사를 하듯, 에드는 내 찡그린 얼굴을 펴주며 서늘하게 말했다. 기분 나쁘다. 몰려오는 짜증에 더욱 인상을 찡그리자 못말리겠다는듯 에드는 웃으면서 눈쌀을 찌푸렸다. 손에 힘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주먹을 들어서 이 잘난 면상에 어퍼컷을 한대 먹여버릴까, 말까 고민을 하며 난 주먹을 폈다, 쥐었다를 반복했다. "야" 그런 고민에 빠진 내 입술위로 부드럽게 에드의 입술이 겹쳐졌다. 당연히 짜증스런 부름이 툭 튀어나왔고 에드는 나를 무시했다. 자작하게 받혀진 물이 찰방거리고 있었다. 옷을 입은체였지만 에드는 물따윈 관심없다는듯 혀를 굴리는 쪽에 더 신경을 썼다. 그 말캉하고 뜨거운 덩어리를 받아들인 내 입안은 오돌도돌 화들이 옹기종기 솟아오르는 중임은 물론이였다. 확 물어버릴까. "어떻게 하면 웃어?" 한참을 내입안에서 굴러대던 혀가 질문했다. 네가 키스 안하면. 속으로 대답하고 겉으로 무덤하게 바라보자 에드는 곤란하다는듯 한숨을 쉬었다. "루이" 윙- 욕실의 구조상 소리가 벽에 부딪히며 팅팅팅 목소리를 울렸다. 음, 그래. 강제적이지 않았다. 키스하고 팔다리는 엉키고 손은 더듬고 머리가 혼미해질쯤 위에 올라탔던 사람이 옷을 하나씩 벗었고, 내옷도 벗겨지고 맨몸으로 엉킨체 하던일을 계속 이어갔다. 좁아터진 몇억짜리 차안에서 한바탕하고 다급하게 몸을 일으켜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몇번쯤 더했다. 뭐라 말할수 없는 이상실감은 어제 너무 즐겨버린 자신에 대한 질책같은거다. 좋았다고, 네가 싫은게 아니래도. 그런데 난 성난 고양이 처럼 성질을 부렸고, 화난 망아지 처럼 발버둥쳤으며, 말썽쟁이 강아지처럼 뽀득뽀득 이를갈며 왈왈거렸고, 에드를 찼고, 패려고 했으며, 심통을 부리고 있었다. 이건 믿을수없어. 말도 안될일이야. 난 남자한테 깔릴만한 놈이아니라고! 라는 발작같은 몸부림이였다. 고민하는 빛이 역력한 표정이 된 에드를 보며 씨익 웃어보였다. 수컷이란 자고로 사정할때 '사랑한다' 거나 '좋아한다' 라는 말을 즐겨한다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말을 되풀이한 에드를 기억해내자 웃음이 터져버렸다. 아, 이럼 안되는데. 더 화를 내야한다고. "나 좋아해?" 이 무슨 망발같은 개소리래. 내가 드디어 미쳤나. 진짜야? 라는 얼굴로 내가 묻자 에드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해" 아아, 그러셔. 난 선심쓴다는듯 에드의 목에 손을 둘렀고 우리는 자작하게 받혀진 물속에서 못다한 키스를 했다. 밑에 깔려있는 하얀 천도, 에드가 입고있는 거친 청바지도 피부를 쓸어서 아팠지만 꿋꿋히 키스했다. 그래서 말을 못했다. 나도 너 좋아해. 라고. [뚜르릉- 뚜르릉-] 한참 작전회의 중이였다. F1 이라는게 원래 주행하는 시간보다 어떻게 주행하느냐에 대해 토론하고 머리짜내는 시간이 많이 드는 분야다 보니 툭하면 회의중이고 미캐닉 두명만 모여앉아도 이야기 하는 내용은 어느새 작전을 어찌짤것이냐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그런 중요하고 긴박한 순간 전화가 대릉 울렸다. "누구야" 주위의 내리꽂히는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그 비싸다는 해외 로밍 서비스를 해놓아도 늘 가방 제일 안쪽 구석에다 처박아뒀던 내가 전화를 받아들자 얼의 눈이 평소의 두배정도로 크게 뜨여졌다. 무섭다고요, 영감님. 전화를 받기직전 불안, 초조, 당황, 설레임 등등 별로 즐기지 않는 감정들이 몰려왔지만 뻔뻔함으로 무장 된듯한 태연작약한 목소리에 감사했다. - 루이 상대방을 확인한 즉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계속 안에서 받아도 큰 상관은 없지만 우리는 지금 신경전 중이다. "말해" - 영화보러 가자 영화가 무에그리 대수라서 신경전 중이냐고? 댁이 모르니까 그딴말을 하는거다. 나를 다정하고 보드랍게 부른 녀석이 보고자 하는 영화는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정의로운 영웅이 나오는 SF 액션 로망이라고 하지만 실제 알고보면 몬스터 분장을 한 괴물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회괴망측한 영화인것이다. 몰랐다면 그러자꾸나하고 따라나섰겠지만 웃기지 마시라. 이미 그 영화의 리뷰를 읽고난 후다. 죽어도 못가지. "싫어. 그거 괴물나와. 절대 싫어" 전화기 붙들고 벽에 기대서서 악을쓰듯 대답하자 에드는 휴- 한숨을 내쉬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했다. - 나도 괴물나오는 영화 너한테 강요하고 싶지않아. 그런데 그 영화 주인공이 내친구래도. 안보면 일년내내 시달려야해. "벌써 열번도 넘게 들었어. 그 구구절절한 사연은" 나는 완강하게 거부했고, 에드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그러기를 며칠째 우리는 알게모르게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었고 묘한 신경전을 계속해서 벌이고 있었다. 알고보면 인간은 다 고만고만 하다지만 에드와 내가 하는짓이 진정 고만고만한 것들의 진수였다. 결단코 그런영화 볼수없다는 내게 에드는 자신의 피치못할 상황을 세뇌시키려 들었고 나는 그걸 떨쳐내겠다고 교묘하게 전화를 피했다. 그리고 보복으로 회의시간에 딱 맞추어 전화가 왔다. 이런, 징한놈 같으니라고. "나중에 내가 전화할게. 회의중이야"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으면서도 전원을 끄지 않았다. 전화를 해볼테면 또 해봐라는 뜻이였지만 그저 자신의 애타는 사정을 피력하고자 전화를 했을뿐 나처럼 '너 어디한번 당해봐' 하는 마음은 없는 에드가 다시 전화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에드가 이렇게 점잖은척 한다고 내가 복수 당해놓고 가만히 있을 놈이 절대 아니다. 난 액정에 비친 시계를 보고 머리속으로 언제쯤 전화하면 에드네 팀이 열나게 회의중이겠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시간을 체크하고 있었다. 나는 원래 이런 놈이다. 당하곤 못산다. "사하?" "안녕" 체력훈련 삼아 달리기를 몇시간쯤 한뒤 가볍게 먹을거리를 챙겨들고 피트니스 클럽으로 올라왔다. 왕왕거리는 기계 소리에 벌써부터 머리가 핑글 돌아 뒷걸음질 치고 싶은 마음이 이따시 만큼이였지만 와드득 사탕을 하나 씹어먹으며, 가까이 갈수록 귀를 멍하게 울려대는 소리들이 난무하는 곳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들어서서 첫번째로 만난사람은 폴이였다. 노련하고 기술좋은 이분은 벌써 10년 가까이 파일럿 생활을 한 F1의 터줏대감이셨는데 나를 만나자 화들짝 놀라시는 폼새가 영 아름답지만은 않다. "네가 여기 왠일이야?" "이런저런 구경하러" 와드득. 입안에 있던 사탕을 처단하고 들고온 샌드위치를 가볍게 베어물었다. 운동하러 온게아니라 유랑하러 온거냐, 라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폴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여줬고 폴은 끄응. 머리가 어질렁하신지 못말리겠다는 뜻으로 이마에 손을 짚으며 고개를 짤래짤래 흔들었다. 이상한 나라의 폴이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물었을때 저멀리서 열심히 운동중인 에드가 보였다. 보기만해도 팔다리가 저려오는 역기들을 번쩍번쩍 들었다 놨다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운동선수의 모습이다. 웨이트 좀 하라던 얼의 말이 떠올랐지만 F1은 체력이 필요한거지 근력이 필요한게 아니였기에 난 오늘도 번뜩거리는 기계들을 보며 인상만 찌푸릴뿐 그근처에 가서 뭘해볼 마음은 요만큼도 없었다. 흉기를 들고 운동을 하는면 좋은가? 라고 투덜대는 내게 폴은 '달리기 하는 네가 더 무섭다'라고 대꾸해주고는 끼르륵- 기계를 당겼다. "몇개째야?" 기계와 끙끙 씨름을 하는 폴을 내비두고 에드의 옆으로가 납죽 질문을 하자 열심히 역기를 들었다 놨다하던 에드가 흉물스런 기계를 바닥에 내려두더니 빤히 나를 쳐다본다. 뭐냐? 사람 처음보냐? 뒤통수를 한대 맞은듯한 얼굴이 된 에드를 보면서 샌드위치를 계속해서 먹어나갔다. 오득,오득,오득. 입안에서 깨물려지고 있는 오도독한 야채들이 참 맛있었다. "여긴 왠일이야?" 에드가 멍하게 있는 틈을타 나와 에드사이에 데릭이 나타나서 대뜸 질문을 했다. 헤에. 만나는 놈마다 이 질문이네. 폴에게 질문받고 할말이 없어 대충 얼버무렸던것 처럼 이번에도 난 어깨만 으쓱 해보일뿐 별다른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다 멈추었을때 문득 에드는 기계 더미들 속에서 뭘하고 있으려나 싶어서 그걸 보러 온거였다. 아까 낮에 회의중에 전화한걸 빌미삼아 보복성으로 나역시 시간 맞추어 전화를 해줬는데 나의 한산하기 그지없는 평이한 전화를 긴박한 순간에 받았으니 감독에게 왕창깨지진 않았는가해서 결과 확인을 위해서 들렀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테지만 그보단 단지 얼굴이 보고싶어서 올라온거였다. "둘, 둘이 사귀냐?" 오묘한 분위기 속에 에드와 눈을 마주하고 있자, 데릭이 어흑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그런데 그질문에 나와 에드가 더 놀랐다. 장난반 농담반으로 툭 던진 말일테지만 그 리얼한 질문에 난 눈앞이 아연해지는것을 느꼈다. 하지만 막연히 아연해지고 있는 나와달리 에드는 내기색을 살피며 데릭에게 부정도 긍정도 하지않은체 덤덤하게 있었다. 둘이 사귀냐고? 머리를 대글대글 굴리는 내게 데릭은 아니라고 생각한건지 아니면 아예 확신을 봐버린건지 좀 이상한 말을 던졌다. "뭘 그렇게 정색을해. 난 너희를 다 이해한다니까" 어딘가 동정과 연민이 담긴듯한 거만한 말에 난 인상을 썼다. 지금 저자식이 내앞에서 잘난척 하고 있는거지? 이해는 뭐고 정색할건 또 뭔가. 상당히 복잡한 기분이 들어버린 나는 에드의 옆으로가 녀석을 끌어오는것으로 데릭을 무시해 버렸다. 가자, 저런놈이랑 같이 한시라도 더있음 바보 바이러스가 옮아온다고. 에드가 손에서 덤벨을 내려둔 상태였기에 끌고오는데에 힘이 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막한 생각들이 둥둥 떠다녔다. 둘이 사귀냐? 그보다 더 황당한건 너희를 다 이해한다는 그 거만한 태도. "영화보러 가려고?" 아, 이런 끈질긴놈을 봤나. 꼴똘히 고민하는 내게 에드는 가볍게 씼고나와서 대뜸한다는 말이 저런거자 순간 열이 포르륵 올랐다. 넌 내가 고민하는거 안보여? 그러고 보니 이래저래 말없이 우리는 은연중에 사귀는걸로 아주 확정을 봐버린 후였다. 만나면 키스하고, 엉키고, 끌어안고 당연한듯 전화도 열심히다. 그러니 이제와서 우리사귀냐? 라고 물을 필요는 없는것이다. 우린 사귀고 있다. 좋아도 한다. 더불어서 닭살스럽지만 사랑도 한다. "몬스터는 취급안한대도" 꼴똘히 고민을 하느라 머리의 80퍼센트를 쓰고 있었지만 가볍게 받아쳐주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대답하는것 보다 남자와 사귀고 있다는걸 아무렇지도 않은듯구는 에드의 태연한 얼굴이 더 신경쓰였다. 우리 게이냐? 라고 난 물어볼수가 없었다. 남자랑 사귀는데 게이지 그럼 레즈겠냐고. 끄덕끄덕 어줍잖게 스스로를 질책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영화 꼭 봐야해" 진짜 몬스터는 상대를 못한다라는 내 짜증스런 얼굴에 에드 역시 그영화 주인공이 어지간히도 괴롭히는지 불만스럽게 말한다. "도대체 왜 몬스터는 안되는건데?" 피가 뚝뚝 흘러넘치는 전쟁영화도, 칼이 난무하는 사무라이 영화도 모두 오케이면서 도대체 왜 그 유치한 몬스터들은 안되냐고 에드는 불퉁거리듯 물었다. 긴다리를 쓱 꼬며 앉는 폼새가 오늘 기어코 그영화를 보이고 말겠다는 의지로 가득차 있는 듯 했다. 왜냐고? 그질문에 대한 대답이 떠오르는 순간, 난 좀전까지 골똘히 생각하던 문제의 답도 깨달아버렸다. "취향이야" 그래, 취향이다. 나는 나이트 음악을 좋아한다. 단조롭고 유치하며 애들이나 듣는 저질이라고 폄하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실제로 나는 고상하고 우아하게 소위말하는 교양 콘서트라는 바이올린, 피아노 등등이 떼로몰려서 연주하는 클래식을 듣는다는 사람앞에서 주눅이 들곤했다. 누가 뭐라고 한것도 아닌데 스스로 괜히 자신이 듣는 음악이 삼류라며 수준차이를 느끼곤 했었다. 그런데 그거 취향차이다. 내 취향은 테크노고 그쪽들 취향은 클래식이다. 음악의 낮고 높음의 질이란 없다. 듣는사람의 기분에 좋고 나쁨으로 구분되는것이지 그런 되지도 않는 음악이라는 말을 밤에 어울려 노는 불량한 아해들의 백뮤직이라고해서 괜시리 별것 아닌걸 좋아한다고 쪼그라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마음 저 깊은곳에 숨겨져 있는 생각 중 남자가 남자를 사귀는게 죄라고 열등하다고 생각했나보다. 그래서 혼자서 고민했던것이다. 순간이였지만 참 할짓 없는 행동이였군. 난 너희를 다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쪽이 나를 이해하건 말건 난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179센티인 나보다 한뼘쯤 큰, 끌어 안으면 단단한 근육이 다이렉트로 전해져 오는 몸을 가진 남자를 좋아하는건 순전히 내 취향이다. 네가 뭔대 이해를 하고 말고한단 말인가. 웃긴다. 내가 마음에 들면 사귀는거다. 난 에드가 남자인것 까지도 좋다. 이건 취향의 문제다. "그럼, 난 영화를 볼테니. 넌 나를 봐줘"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어조로 나직하게 말하는 에드를 보며 난 인상을 찡그렸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현실적인 문제가 밀려오는것이다. 취향이래도 먹히질 않는 상대가 있구만. 제길. 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고 에드는 '영화보러 가자' 라고 온몸으로 오오라를 뿜어대고 있었다. "그래" 끄윽. 속으로 고통에 찬 신음을 삼키며 승낙을 해버렸다. 나보다 더 악질적으로 끈질긴 이남자가 내 취향이란게 문제였다. "제기랄" 당연한거지만 난 잊고 있었다. 영화는 화면만으로 굴러가는게 아니였다. 눈을 다른곳에 집중하고 있으니 귀의 기능이 더욱 확장된 이유로 엄청난 돈과 기술이 투입된 입체 써라운드 삼차원 음향이 내귀를 왕왕 울리는것은 보통때의 열배였다. 이것 역시 당연한거지만 내가 끔찍히 여기는 몬스터들의 크륵거리는 소리에 움찔거릴때마다 에드는 즐겁게 웃어주었다. 매우매우 즐겁게 말이다. 빌어먹을. 내 취향은 왜이리 극악인거야? 스스로를 탓할 뿐이다. 놀러와. 처음 에드의 초대를 받았을때 한참을 멍해있었다. 대회 직전까지 계속되는 작전회의에 찌들리고 시달리고 있는 내게 적군이 놀러를 오라고 하니 기가 막히기도 했고, 집으로 오라는 말에 황당하기도 했다. 니네집은 여기가 아니잖아?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봐도 에드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은 프랑스에 있지 않았다. 확실한 정보인데 모르는 사이 이사를 갔나? 눈을 깜박거리는 내게 에드는 아니라는듯 내턱을 한번 쓸었다. "모나코에 집이 있어" 에? 그거 금시초문인데. 모나코, 프랑스 끝자락에 있는 굉장히 작은 동네지만 그곳에 사는 주민은 주민이라고 할수없는 억소리 나게 잘사는 갑부가 대다수다. 이유는 세금을 무척 조금만 내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돈 많은놈들 더 돈많이 벌고 싶어서 그런건지 나가는 세금에 피눈물이 나서인지 모르겠지만 세금을 적게 낸다는것은 부자에게 꽤나 좋은 조건인 모양이였다. 그래서 돈많은 부자들이 바리바리 이곳으로 짐을 싸들고 오고, 더불어서 돈을 잘버는 스포츠 선수들도 꽤 오곤했다. 그러나 언론이 그냥 언론인것이 아닌지라 유명인사가 거주지를 모나코로 바꾸기가 무섭게 씹어댄다. 한 예로 얼마전 신인전에서 좋은 성적을 낸 F1 선수가 거액의 연봉계약에 싸인한 직후 모나코를 거주지를 옮겨서 언론에게 무시무시하게 씹혔다. "니네집 앞마당에서 경기하는거야?" 농담삼아 물었더니 에드가 고개를 끄덕인다. 가끔 에드랑 얘기를 하다보면 짜증이 확 밀려올때가 있다. 재수없기 짝이없는 언론 조차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녀석의 능력과 환경과 처사가 내 열등감을 치명적이리만큼 심하게 자극했다. 그러니까 천재씨는 모나코로 거주지를 옮겨도 언론에선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나보군. 아, 그러셨어. 그런거야. 속이 확 뒤틀려버렸지만 에드에게 화낼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허허로이 웃고는 가겠노라고 대답했다. "연애해?" 주행기록에 대한 상세이야기를 마치기가 무섭게 짐을 싸대자 얼이 능글맞은 얼굴로 물어왔다. 아, 악덕영감 아직 안가셨군. 늙은이 주제에 정말 감하나는 끝내준다니까. 난 대답대신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고 내 행복한 모습이 마뜩치가 않는지 얼은 인상을 찌푸렸다. 시뮬레이션용 컴퓨터, 휴대전화, 지갑, 어디보자 경기코스 설명서 또 사탕. 준비끝! 내물건들을 가방에 우르르 넣고 나가려는데 얼이 여전히 즐겁지 않은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할말있어?" "데이트하러 가?" 데이트라면 데이트겠지. 고개를 주억거리자 얼은 못말리겠군 하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내일 퀄리파잉 하는 날인거는 기억해?" "그럼" 와드득. 사탕 하나를 끄집어내 입안으로 털어넣음과 동시에 깨부셨다. 달콤새큼한 톡톡튀는 맛처럼 얼굴에 번지는 미소가 온순하지 못했다. 팅팅볼 처럼 팅하고 쳐내면 저 머나먼 곳으로 슈웅 날라갈듯 조금 악랄했을듯 싶었다. 버릇없음의 절정인 그 모습에 얼은 손을 내치며 나가보라고 했고 '땡큐' 라고 건성으로 말하고 에드의 집으로 향했다. "...... 어서와" 문을 두드리고 누군가 달려나오고 벌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런데 한동안 뜸을 들인 후에야 말을했다. 기분이 묘해진 나는 현관에 달린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돌아봤다. 아, 그렇군. 평소에는 안경없이 다닌다. 그러나 컴퓨터를 할때면 시력보호를 위해 무테 안경을 간혹 착용하곤 한다. 오늘 다른날과 달리 유난히 눈이 아파와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그다지 길지 않았던 회의시간 동안 끼고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에 안경이 익숙해버렸는지 빼고 오는걸 잊었다. "왜벗어?" 에드도 지난 대회를 복습하는건지 다가올 대회를 예습하는건지 알수없지만 노트북을 상대로 연습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였다. 켜놓았던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닫으며 자리에 앉았다 일어선 에드는 내가 안경을 벗으려고 얼굴에 손을대자 반사적으로 질문을 했다. 안경 벗으면 안되냐? 누가 들으면 내가 스트립쇼라도 하는줄 알겠다. 뭘그리 놀라? "잘 어울리는것 같은데" "싸가지없게-?" 에드의 말에 덧붙이듯 내가 말하자 그는 난감한듯 보일듯, 안보일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바로 맞췄네. 눈꼬리가 길고 눈동자는 심하게 까맣고 머리칼도 그못지 않게 까만데다 동양인치곤 유별스럽게 올이 가느다란 편인 나는 좀 버릇없게 생겼다. 실제로 버릇도 없는 편이고 예의도 깡그리 무시하는 주의지만 안경을 쓰면 모범적이고 학습적인 태도로 보이는게 아니라 어딘지 악랄한 악당처럼 싸가지 없어보인다. 어지간히도 놀랐나 보네. "물줄까?" "응" 에드가 잘 어울린다고 말해도 난 더 안경을 쓰고있을 맘이 없었고, 그런일에 까지 일일이 물고 늘어지는 성미는 아닌 에드도 더 말해봐야 신경전만 벌이게 된다고 생각했는지 얼른 화제를 돌린다. 내일이 대횐데 적군이랑 나란히 앉아서 호호하하 놀게 생겼으니 컴퓨터는 너도 끄는게 낫겠지 싶어서 물을 가지러간 에드를 대신해 컴퓨터를 끌 생각으로 테이블 앞에 앉았다. 어차피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은 패스워드가 반드시 있어야만 들어갈수 있으니 뭔갈 해볼래도 할수 없는 입장이라 죄책감 없이 앉았는데 나는 유전자가 악당이 유전자인지 나쁜놈의 후손인건지 컴퓨터에 손을대자 은근히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담긴 에드의 주행기록이 보고싶었다. 장난이지. 토각토각. 키보드를 두들기는 내손위에 웃음이 번져있었다. 마음먹고 해킹하는게 아니라 이건 순전히 농담반 장난반의 행동이였는데 조금 돌려 생각해보니 엄청난 오만함과 자신감일수도 있을듯 싶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키보드를 토닥인 나는 엔터키를 침과 동시에 몸을 움츠리며 삐뽀삐뽀 경계신호를 보낼 노트북을 불안한 얼굴로 건너봤다. 내가 입력한 패스워드는 다름아닌 내이름이였기 때문이다. [루이스 사하 이젯] 그리고 [엔터] 그런데 뻘건불이 번쩍여야할 노트북 액정 모니터가 Connecting- 이라는 메세지를 깜박이며 인코딩 되고 있는게 보였다. 거짓말. 장난하냐? 말이되? 어이가 없어져 버린 난 얼이 빠져서 잇사이로 혀를 헤- 내밀고 멍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주행기록은 파일럿의 단점, 보완해야할 약점이 가득한 모습을 삼차원 그래픽으로 보여준다. 그걸 도난당하면 그 파일럿 인생은 끝장이다. 그렇기에 함부로 열수도, 접근할수도 없는것인데 패스워드가 너무 엽기였다. "루이-?" 자신의 컴퓨터를 넋이 나간 표정으로 보고있는 나를 본 에드는 조금 떨떠름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난 그 떨떠름함에 대한 응답으로 컴퓨터를 돌려 에드의 정면에 잘 보일수 있도록 해주었다. 연결과 동시에 주루륵 나타난 수많은 메뉴판이 보이는 화면의 모습에 에드의 얼굴이 현저히 굳어갔다. [탁] 테이블 위에 물잔을 내리고 컴퓨터를 강제적으로 닫아버린 에드의 얼굴에는 당황함이 가득했다. 평소에 볼수없던 수많은 숨겨져 있던 당황함, 놀람, 쑥쓰러움, 그리고 드물게 보이는 확 붉어진 얼굴이 묘하게 기분 좋았다. "사랑해, 에드" 입밖으로 소리를 내어 '사랑한다' 라고 처음으로 말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닫혀진 노트북을 보며 난 그렇게 말했고 얼굴이 붉게 물들었던 에드는 귀까지 붉히며 믿을수 없지만 수줍어 하고 있었다. 나한테 자신의 비밀번호가 내 이름이란게 알려진것이 (혹은 들킨것이) 부끄러운것인지 평소와 달리 에드는 한참동안 고개를 한쪽으로 돌린체 말이 없었고 그 침묵이 무척 좋았다. 너무 섭하게 생각하지마. 내 컴퓨터 비밀번호는 [에그 에드 아야톤] 이야. 앞의 에그는 내가 에드를 꼬인혀로 부를때 칭하는 이름이다. [쉬-이이이이-ㄱ] 공기를 가르는 굉음.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쇳소리에 척추 끝에 소름이 쭈르륵- 내려흘렀지만 멈출수 없었다. 달리는것은 우리의 숙명이였고 거울을 통해 비춰지는 서로의 모습을 훔쳐보며 즐거워하는것도 짜릿한 순간이지만, 보여지는 감정과 읽혀지는 표정을 모두 가린체 짧은 시간이나마 적이 되어야 한다는것은 힘든일이다. <얼-> 나의 부름에 얼은 한숨만을 삼켰다. 퀄리파잉이 안정적이라도 본선에서 번번히 로이든과 에드의 합공에 떠밀릴때면 입안이 타들어가고 가슴이 거멓게 멍들수 밖에 없는 패배가 몰려오곤 한다. 졌다. 단 두글자로 이루어진 말한마디가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아쉽고, 안타깝고, 가슴 아릿한 기분이란. "받아" 지고나서 느적하게 트랙을 배회하곤했던 내가 곧장 피트로 돌아오자 얼은 떨떠름한 표정이였다. 지고나면 찾아오는 짜증을 머신에게 풀던걸 없앴더니 훨씬 빨리 도착했다. 나는 헬밋을 벗어 얼에게 내밀었고 모두들 머쓱한 표정으로 나를 둘러보고 있었다. 머신에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볼트의 조임이 조금 뻑뻑했었고 그래서 평소보다 훨씬 더 얌전하게 머신을 다루어야 했었지만 그걸 빨리 발견하지 못한 내 책임도 있었다. F1 이란 매우 거칠어 보이지만 볼트 한번 더 조이고 말고에도 승패를 좌우하는 섬세한 스포츠임에 틀림없었다. "어디가" "영웅을 경배하러 간다, 떪냐?" 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구기듯 슥 밀어넣고 달렸다. 이쪽피트에서 저쪽피트까지 눈깜박할 사이 도착해 팀원들의 축하를 받고 있는 에드의 머리를 사정봐주지 않고 즐겁게 후들겨 팼다. 로이든은 오늘도 드물게 나에게 악수를 청했고 그모습은 커다란 화면을 통해 만인에게 비추어 졌다. 전번보다 내 표정은 한결 나았고 샴페인이 터질때 조금 들뜬 기분이였던것도 같다. 각계의 언론들은 삐딱하기만 하던 사하가 '훌륭한 스포츠맨 쉽' 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라고 칭찬했고 그걸 본 내표정이 알수없는 기분에 빠져 들었다. 악당과 라이벌은 습자지 한장차이 였던것 같다. 가는곳 마다 축제가 열린다. 뜨거운 소리를 내며 달리는 머신들을 타야하는 사람들의 긴장감 보다 그네들이 즐기는것은 즐거운 축제다. 응당 그 축제를 경기가 끝나면 즐겨야 했지만 늘 패배자로써, 이류로써, 한없는 열등감으로 만취해 있어야 했던 나는 즐거워하지 못했었다. 복도끝의 후미진 곳에서 나를 이겨버린 남자를 끌어안고 입술을 부딪히고 있을 내모습 따윌 상상해 본적이 없었다. "...음... "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흥분감에 진홍빛을 넘어 완전히 선연한 붉은빛이 되어버린 입술을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 달달하고 달콤한 매끈하고 말랑한 한입 머금으면 말캉하고 두입 머금으면 미끄덩해지는 입술의 변화무쌍함을 즐기며 벽에 등을대고 에드를 끌어당기듯 녀석의 목에 두른 내팔을 조금 힘을 주었다. 지고난 후의 울적함은 없고 엔돌핀 마구 터지는 머리속의 황홀한 기분만이 남아 있는 내모습은 너무 낯설었다. [투벅투벅] 빈복도의 사람이 오는 소리는 무척 시끄러운 편인지라 우리는 설핏 웃으며 서로에게서 손을 떼어냈고, 약간 거리를 주듯 떨어졌다. 고개를 내밀고 오는 사람을 확인했더니 방금전의 행복한 기분을 와장창 깨어줄 무서운분이 다가오는게 보였다. 프로스트 팀의 주주이자, 동시에 기술위원이라는 미명하에 이런저런 지시를 곧잘 내리시는 F1 계에 살아있는 신화인 에드의 아버지였다. 내가 당신 아들이랑 방금전까지 엉켜서 키스한걸 알면 아주 뒤집어 지시겠지. 입맛을 다시듯 입을 쩝- 하고 맞물었다가 놓았다. 어떤 스포츠에서든 이성적이고 냉철한 경기를 운용하는 선수에겐 교수님이라는 칭호가 곧잘 내려지곤 한다. 에드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중 하나였고, 에드 역시 그 못지않는 냉정한 이성의 소유자였다. 세상에 무서운 종족중 똑똑하고 냉정한 놈이라는게 있는데 에드를 잘 알지 못했다면 녀석은 두말할 필요없이 저 종족일거라고 생각했다. 똑똑하고 냉정한 놈. 그런데 누구나 보이는 것 이면에 다른것을 숨겨두듯 에드 역시 그저 사람이였다. 화도 낼수있고, 투정도 부릴수있고, 술먹고 쓰러지기도 하고 그런 고마운 평범한 인간이였다. 그리고 나또한 일상에서 부딪힐수 있는 그저그런 인간이였다. "에드" 복도 저 끝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음미하며 난 평범한 인간 남자가 부리는 객기를 끄집어 내었다. "응?" 어린이에게 하는 질문 중 세상에서 가장 유치한 질문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면 다큰 어른에게 하는 질문 중 세상에서 가장 유치한 질문은 '니네 엄마가 좋아, 내가 좋아' 일것이다. 엄마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어쩌면 에드에게는 녀석의 어머니 보다 그의 인생의 지표와 다름없는 아버지가 더 중할수도 있지만 난 확인해 보고 싶었다기 보다는 심술을 내는 아이처럼 장난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그러면서도 꽤 진지한 목소리가 나간것은 내심 진심이 궁금한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여하간 난 물었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질문을. "니네 아빠가 좋아, 내가 좋아?" 에드는 이미 내게 좋아한다고 했으니 녀석이 나를 좋아하는것은 확인된 사실이다. 그리고 중차대차한 컴퓨터 패스워드에 내 풀네임을 넣어둔걸 보면 그말은 진실일 터이고, 이제는 비교가 하고픈게 내 본심인 모양이였다. 점점 가까워져 오고있는 자신의 아버지를 넘어보며 에드는 좀 난감한 기색이 되어 있었다. 알아, 나도 내가 이렇게 유치한 질문을 할지 몰랐다고. 제발 그 곤란하다는 표정 좀 어떻게해줘. "네가 좋아" "정말?" "그래, 아버지 보다 네가 더 좋아" 예쓰! 속으로 혼자서만 이였으나 난 순간적으로 환호를 한것 같다. 빙글빙글. 얼굴에 미소가 마구마구 번졌고 그걸 숨길 여력이 없었다. 다가오는 프로스트씨를 보며 벽에서 몸을 일으킨 나는 에드에게 손을 흔들며 '갈게' 라고 말했다. 그리고 돌아서서 승리자의 얼굴로 자신만만해진 표정으로 악마같이 나긋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복도를 빠져나왔다. 댁의 아드님이 제가 더 좋다네요. 자식은 키워봤자 말짱 헛것이라는 말을 몸소 확인하고나니 옛어르신 말씀 중에 그른것 하나없다는게 구구절절 와 닿았다. 쪽- 그렇게 말해주길 나는 바라고 있었던것일지도 모르겠다. 실상 진실이 아니래도 말이라도 그렇게 해줬으면 하고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있는 내 다리를 옆으로 쭈욱 밀치듯 치운후 좁디 좁은 공간에 파고들듯 마주앉는 에드에게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입술을 부딪히는 나를 보니 정말 기분이 좋은 모양이였다. 내마음 정확히 읽고서 그렇게 말해준것인지도 모를 에드는 내 그런 행동이 싫지는 않은것인지 피하지는 않았으나 무척 놀란모양이다. 니네 부자가 원래 친하지 않는것이였대도 상관없어. 마냥 좋아진 난 눈꼬리를 휘며 웃었고 에드는 그런 나를 꼭 끌어안았다. 사실 끌어안기에는 서로 너무 컸지만 전혀 게의치 않는것은 둘다 콩깍지가 단단히 씌인 까닭도 있을것이다. "루이-" 나무라듯 부르는 에드의 목소리에 난 목을 울리며 웃었다. "덮쳐줄까?" 진지한 태세로 물어보는 내게 에드는 입은 웃으며 눈살은 찌푸렸고 그러기만 해봐라는듯 팔로 옆구리를 쓱 둘러왔다. 나랑 놀아줄 기력도 없을 정도로 완전히 탈진을 해온 에드를 보며 난 열성적으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호박색 특이한 눈에 잘 다듬어진 눈썹하며 기다란 속눈썹이 참 보기에 좋은 에드는 살결의 감도도 무지하게 좋았다. 난 턱을 쓸며 밖에서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을만큼 진을 빼어먹히고 온 에드의 허벅지에 군침을 삼켰다. 먹을까, 말까, 먹을까, 말까. 챔피언이라는게 좋긴 좋다지만 나처럼 사회성 결여로 사람들이랑 앞면만 트는 녀석과 달리 에드처럼 만인과 친구인 경우엔 이겼다 하면 끌려가서 지갑을 강탈 당하고, 술집을 거덜낼 만큼 술먹기를 강요 당하고, 가끔은 또 이겼냐 이자식아라며 즐겁게 구타를 당하기고 한다. 오늘은 특히나 그 정도가 심했는지 내가 가게를 나설때 부터 휘청이던 에드는 돌아와서 나랑 딱 한번 입술 부비곤 곧장 내게 풀썩 쓰러지더니 죽지못해서 사는것 같다며 웅얼였다. 그러니까 내가 먹어도 된대도. 보기좋게 자리를 잡고 있는 허벅지의 근육들을 오밀조밀 살펴보며 역시 먹고야 말겠어라고 마음을 다잡은 나는 허리를 구부려 에드의 허벅다리 살을 한입 머금었다. 꿈틀. 기진맥진 하다고 쓰러져버린 주제에 느끼기는 오지게도 빨리 느낀 에드의 감각기관에 경의를 표하며 감도 좋은 피부에 입술을 맞댄체로 '풋' 하고 웃었다. 못먹어볼 진귀한 음식을 받은 아이처럼 감탄을 하며 먹어줄게, 먹어줄게를 속으로 연발하는 나를 폭풍이 몰아칠법한 바람을 일으키며 전세를 뒤집듯 헤까닥 위치를 바꾼 에드가 '하지마' 하는 얼굴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한번만 먹자니까. 먹을거 뺏긴 아이처럼 아쉬워하는 내 엉덩이를 툭 친 에드는 타박을 주듯 입술을 비죽이더니 나를 꽉 끌어안고 잘것을 종용했다. 밤이 너무 외로웠다. 힘없다는거 순 그짓부렁이였어. 치사한놈. 한번 먹힌다고 죽냐? 그렇게 속으로 웅얼이면서도 에드의 품속을 파고드는것은 침대가 좁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바다. 땡그랑, 자판기에 동전 밀어넣듯이 잠자고 있는 에드의 입안에 사탕 하나를 밀어넣었다. 먹어. 자신의 식생활을 강요하는 내 행동에 에드는 항의하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찌푸린 얼굴이 예뻐서란 이유로 사탕하나를 더 밀어넣었다. 먹어. 띠그륵. 띠그륵. 입안에서 괴상한 소리를 내며 굴러다닌 동그란 사탕을 와드득 부셔먹자 그모습이 재미난지 에드가 목을 울리며 웃었다. 웃지마. "루이" 즐거움과 불만, 기쁨과 장난이 반복되고 있을 무렵 에드가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 내왼손 꼭 붙들며 부르는데 왠지 분위기가 멜랑꼬리한것이 기분 붕뜨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와드득. 사탕하나 또다시 깨물어 먹고 곤란, 난처, 어색한 얼굴로 나를 살피는 에드를 보며 '어서말해' 라는듯 눈길을 주었고 에드는 주머니에서 조그만 상자를 꺼내더니 만지작 거리기에 여념이 없다. "다이아몬드 좋아해?" 상자가 튀어나왔을때 부터 이녀석이 무슨짓을 꾸몄나하는 의심이 되었는데 대뜸 다이아몬드 이야기를 꺼내서 씹어대고 있던 사탕이 켁하고 목에 걸렸다. 좋으면서 싫기다하고, 기쁘면서 기분 나쁘기도 하고, 즐거운면서도 화나기도한 두루두루 짬뽕이 되어버린 감정의 축제에 난 잘 모르겠다는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에드는 그얼굴 보면서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탁] 단순하고 깔끔한 디자인의 반지에 오리지날 다이아가 박혀있는 척보기에도 한두푼으론 살수없는 고가의 물건이 눈앞에 내밀어졌다. 반지보고 복잡참담한 기분이 된 내 왼손을 당기더니 네번째 손가락에 슬금슬금 반지를 끼운 에드는 베시시 눈꼬리를 예쁘게 접으며 웃었다. 이거 왠지 족쇄건거 같은게 기분 묘한게 안좋은거 같다. 마치 '내꺼다' 라고 꼬릿표 달아놓은것 같은 기분.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닌지 에드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말문을 열었다. 오늘 아주 할거 다해보자는 심산인 모양이다. "있잖아" "있긴 뭐가 있는데" 네가 지금 나를 여자취급한거냐? 아니면 나를 물건취급한거냐? 괜히 삐딱선 탄 내눈에는 기분좋아야 할 일이 개목걸이로 둔갑되어 나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삐딱선 탄 대답에 에드는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나의 고집을 이길수 있는 유일무이한 인간이란건 애저녁에 알고 있었지만 볼때마다 신기하다. "반지" "반지 이거 하고다니라고?" 지레 짐작으로 툴툴거리려는 내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좀 추잡스러웠다. 이거 지금 너 돈 많다고 과시하는거지? "아니, 반지는 뇌물이고, 다른거 하고 싶은게 있어" "다른거?" 다른거 뭐? 보통 내꺼다라고 도장 쾅 찍을때 반지로 족쇄 채우지 않나? 틀렸나? 고개를 갸웃하려는 내게 에드는 틈을 놓치지 않고 다정하게 말을 붙였다. 경기장에서 매정하게 나를 재치고 달려가는 에드의 뒷모습과 이렇게 앞에서 곰살스럽고도 진중하게 구는 에드의 앞모습이 한인간에게서 나오는것이라는게 너무 신기했다. "해줄거지?" 해줄거야도 아니고 해줄거지란다. 나도 상당히 오만과 자신감으로 가득하지만 이녀석도 만만치 않다 이거다. "그게 뭔데?" "하겠다고 하면 알려줄게" 이런거 부당하다. 지는 뻔연히 뭐할지 계획 세워놓고 나한텐 무조건 따라오라 이거냐? 죽고프냐? 간이 배밖에 나왔구나? "뭔지 알려주면 결정할게" 반지는 딱 좋아하는 모양에 딱 좋아하는 재질에 딱 좋아하는 시간에 내밀어진 최상의 것이였다. 다만 삐죽삐죽 모가 난 내 성질머리가 더러운 이유로 에드의 순수하기 그지없는 마음을 갓길 주행하는 파렴치범들과 동일선상에 놓고보는게 문제였다. 20억 다이아 반지 받고 모든걸 꿀떡 용서해주는게 요즘 세태라지만 나는 그리 호락호락 넘어가 주고 싶지 않았다. 나만큼이나 굉장히 엽기적인 에드의 머리통 속에서 튀어나온 '하고 싶은것' 은 뇌물의 강도로 봐서 꽤나 난감한 일인게 틀림 없을것이다. "루이 사하-" 섭섭하냐? 앞대가리에 있는 내이름 두개를 불퉁하게 부르며 에드는 그러지 말고 어서 오케이해라고 한다. "뭔데?" 뭔데란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너 무슨사고 치려고 그래' 쯤이 되겠다. 얼이 들으면 아주 기막힐 이야기다. 지가 사고치는 놈인 주제에 누구에게 사고치냐고 추궁이냐 할테지만 모르는 그건 말씀이다.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진정 덜하진 않을 에드 아야톤이라고 이연사 강하게 주장할수 있다. 자신의 뇌물이 먹히질 않자 침대에 비스듬하게 누워서 있던 에드는 내 몸위로 척하니 다리 하나를 올리며 장난질을 걸어오고 있었다. 힘으로 누르겠다 이거냐? 덤비면 결코 가만있지 않는 나는 당연히 전투모드에 돌입했고 악마의 후예로 심하게 의심되는 에드는 내위에 척 올라타더니 남의 성감대를 꾹- 누르며 씨익- 웃어보인다. 제기랄. "할거지?" "뭐냐고. 흣." 딱딱하게 말하던 목소리가 휙- 하고 구부러졌다. 씨발, 어딜 잡아당기는거야! 목덜미를 파고드는 에드의 얼굴을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어 막자 녀석은 대놓고 희롱하듯 내 물건을 사정봐주지 않고 확 당겼다. 이거 폭행이다. 죽여버릴거야. 윽. 속으로 이를 바드득 갈면서 너 오늘죽었어라고 했지만 아픈듯, 아프지않게 좋아하는 부위를 교묘히 문지르는 에드의 손길에 몸이 자지러 들었다. 젠장. 이거 반칙이야. "비켜" 아드득. 이를 갈며 가르릉 거리는 내 모습에 에드는 아예 이참에 아침부터 놀아볼까란 기색으로 눈을 반들반들 반짝이며 살갗을 입으로 머금으며 혀를 굴렸다. 간지러. 하지마! 목덜미를 핥으려 했지만 철벽방어에 막히자 아래로 내려간 에드는 가슴근육을 이로 긁더니 어느새 배꼽 주위를 물고놀고 있었다. 내몸이 고무공이냐 왜 무냐? 네가 강아지냐? 어? 떨어져. 아흣하고 신음이 절로 터질상황이지만 네번째 손가락에 이물감을 주며 자리하고 있는 반지를 보자 묘하게 호승심이 생겨 쉽사리 입에서 소리가 터져나오지 않았다. "자꾸 버팅기면 납치해가는수 밖에 없는데" 언젠가 마주했던 은은하게 머리를 징- 울리는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방안에 퍼져나갔다. 착 달라붙어 있던 몸을 스르륵- 일으키는 에드의 모습이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리 만큼 진중하고 진지해서 무섭고 두려웠다. 너는 좋아하는 녀석을 상대로 반지 주면서 납치한다고 협박하냐? 서운함과 억울함 지기싫은 마음이 한데 똘똘 뭉쳐져 괜한 오기를 발동시켰지만 더 버팅기다간 진짜 납치당하겠다 싶어서 이쯤에서 접어야겠다라고 생각해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 할테니까. 말을해봐. 뭔데?" 아 그래 내가 졌다 하자고! 라고 투정을 부리는듯 큰소리로 투덜이는 내뺨을 집어삼킬듯 '쪽-' 소리가 나게 빨아들였다. "가자" 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지만 에드는 옷을 잽싸게 주어입을뿐 대답이 없었다. 혼자 신났구나. 재빨리 옷을 챙겨입은 에드는 내손을 척 끌어당기듯 밖으로 튀어나왔고 갑자기 내리쬐는 태양빛에 노출된 눈이 심하게 아렸지만 그런걸 토로할 틈도 없이 집어댕겨져 차에 실렸다. 좋아하는 강도만큼이나 위험할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것이 나의 기우이길 빈다. "나 갈래" 투명한 통유리로 심플하게 지어진 건물 앞에 선 나는 곧장 몸을 돌려 가겠다고 발버둥쳤다. 에드는 나의 그런 반응을 완전히 예상하고 있었던듯 손쉽게 도망치려는 나를 붙들어맸다. 이런 옘병할. 난 세상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괴물을 만난듯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에드는 한번만 이란 눈으로 간절히 애원을 했다. 자왈 신체발부는 수지부모후니 불감훼상이 효지시야요 라는 가르침이 있다. 우리의 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다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말이다. 이건 신체를 다치는 정도가 아니잖나! "난 살벗길 생각 요만치도 없어" 아득. 온몸이 농락당하는 일이 있었더라도 참았어야 했다라고 반성하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으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같은 문신 새기고 싶어. 잘 지워지지도 않고 잃어버릴 일도 없으니까." 문신. 타투. 다른말 뭐 또있나? 그래 잘 지워지지도 않고, 물로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다. 잃어버릴 일도 없지, 물로 안 씻어지니까 그렇다고 다른걸로는 뭐 지워지나? 문신 지우려면 레이저로 몇차례나 시술해야 하고 그렇게 해도 지워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걸 새기자고 하는건 싫다. 그런데 앞에 토를 달기를 같은 문신 새기고 싶단다. 정말 사람 빼도박도 못하게 옭아매서 부탁 아닌 부탁을 하는 에드의 행동에 이게 도대체 납치와 뭐 다를게 있냐는 생각이 든다. 아픈거 질색이고, 주사 바늘처럼 생긴거 혐오하는거 뻔히 알면서 모른척 숨기고 데려와 나는 너랑 평생 지워지지 않을 문신을 새기고 천년만년 서로 사랑한다는 걸 되새기고 싶었어라고 말하다니. 혈압은 오르는데 딱 잘라 싫다고 말할수 없는 궁지로 몰아넣는 에드가 미웠다. 이걸 팰수도 없고, 기냥 확 물어 뜯어버려?! "루이" 부르지마 씨발놈아. 확 치켜뜬 눈이 억울해, 절대싫어라고 울부짖고 있었을게 틀림없는데도 에드는 들어가기로 확정을 본것인지 슬쩍슬쩍 건물쪽으로 나를 당겼다. 짜증날 정도로 감동받고 휘둘리는 내모습에 정신을 차리고 물리쳐야해 라고 아무리 다그쳐 본다한들 이미 마음이 홀라당 발라당 넘어간 후라서 어쩔도리가 없었다. 하늘거리는 바람에 머리칼 휘날리며 끝장나게 잘생긴 얼굴로 부탁하는데 너라면 거절할수 있냐? 거기다 저놈은 내 취향이래두! "엇, 에드 왠일이야?" 가게 내부로 들어가자 밖에서 보던것 이상으로 훨씬 더 깔끔한 정리된 모습에 울적했던 기분이 조금 풀렸다. 그리고 완전개방인듯한 모습이면서도 지켜져야 할 비밀은 완전엄수하듯 철저히 가릴곳은 가려둔 인테리어도 마음에 들었다. 구불구불 몇번쯤 복도를 돌아서 천으로 가려진 곳을 '스르륵-' 걷고 들어가자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이 모호한 사람이 에드를 반갑게 맞았다. 늘씬하고 체격좋고 성격 털털해 뵈는게 나쁜사람 같아 보이진 않는다. "전에 말했던거 하려고" 전에 도대체 둘이서 뭘 말했는데? 에드의 대답에 문신사쯤으로 보이는 사람이 눈에 띌 정도로 표정을 뻗뻗하게 굳혔다. 같은 문신 새기고 싶다고, 그게 사랑하는 표식이라고 이미 문신사씨에게는 에드가 설명을 해둔 모양이였다. 아니고선 저렇게 표정이 변화무쌍할리가 없다. "아, 그래? 음, 반가워요. 쟝 크릭이예요. 근데 루이 사하씨랑 굉장히 닮았네요" 하하하 하고 멋적게 웃어보인 쟝은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굉장한 말을 했다. 에드는 난처한듯 보이지 않을 만큼만 인상을 슬쩍 찌푸렸고 난 좀전까지 암울했던 기분을 훌훌 털어버리고 특유의 싸가지 없음을 유감없이 발휘할 셈이였다. "루이스 사하 이젯입니다" 손을 맞잡으며 이름을 말해주자 쟝은 또다시 변화무쌍하게 표정을 바꿔나갔다. 입을 쩍 벌리며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는 쟝을 보며 은근히 즐거워지기 까지한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였고 에드는 음음음 하고 목만 가라앉혔다. 감기냐? 왜 음음거려? 인사는 굉장히 통쾌한 기분이 드는것이였지만 다음이 문제였다. 여긴 문신을 새기는 곳이였고, 앞에 이 사람은 문신을 새겨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가장 우울한 사실은 나는 문신을 하러 온 고객이란것이다. "아프진 않겠죠?" "네, 그럼요. 별로 아프지 않아요" 쟝은 서글서글하게 대답했고 난 꼬투리를 잡듯 인상을 찌푸렸다. "별로 아프지 않다는건 조금은 아프단 뜻이에요?" "예?" 남자가 왜그리 아픈거에 신경을 쓰냐는듯 위생 장갑을 찌며 쟝은 당황하듯 되물었고 난 비틀릴대로 비틀린 심상을 쟝에게 모두 내어보이며 너 아프게 하면 죽여버린다고 빙 둘러서 협박했다. 아프면 아프다, 아니 아프면 전혀 아니 아프다고 할것이지 별로 아프지 않은건 다 무에란 말인가? 우리 솔직하게 말하자고. "아파요, 조금이긴 하겠지만" 쟝은 졌다는듯 예, 아픕니다하고 승복했고 이상한데서 승리자의 기쁨을 누리며 미소를 지었다. "왼쪽손 좀 내밀어 보시겠어요?" 왼쪽손? 아픈게 싫은게 아니라 주사 바늘 꽂히는 두려움이 싫은 나로썬 상당히 불편한 심기였다. 그래서 있는대로 툴툴거렸는데 고맙게도 쟝은 진짜 인간성이 좋은건지 비지니스 정신이 뛰어난건지 인상한편 구기지 않고 싹싹하게 말했다. 난 반지를 빼내고 손을 내밀었고 쟝은 반지가 여직 끼워져 있던 네번째 손가락 마디를 몇번쯤 눌러보더니 '조금 아플거에요' 라고 말하며 섬뜩한 기계들을 들기 시작했다. 짙은 검음색의 두줄짜리 가시문신이 손가락에 박힌듯 아로 새겨져 있었다. 삐죽삐죽 솟아오른 가시덤불의 거친 모양새가 마음을 찌르듯 힘차고 박동감 있었다. 달랑 두줄에 손가락 하나를 두르고 있을 뿐이였는데 용꼬리 처럼 강인해 보이는 문신에 쟝에게 툴툴거렸던것을 모두 반성하고 프로페셔널이다란 감탄을 하며 손가락을 빤히 들여다 봤다. 반지처럼 네번째 손가락을 두르고 있는 검은 문신. 절대로 나를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사나워보이는 그기새가 마음에 들었다. "안아팠지?" 반지로 문신을 숨기듯 에드는 내손에 다시 반지를 끼워주며 웃는 얼굴로 물었다. 내가 쟝과 토닥거리는 사이 에드 역시 누군가에게서 똑같은 무늬의 문신을 같은 자리에 새기고 온게 보였다. 절대 잊혀지지도 잃어버리지도 지워지지도 않을 문신같은 사랑의 기억이 될것 같다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브레이크를 밟는 시점부터 떼는 시점까지의 거리, 브레이킹 포인트에 관해서 여지껏 누구에게도 뒤쳐진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독일, 뉘른베르크 유럽전 마지막 날인 오늘 나보다 잘한다, 잘한다 생각은 했지만 정말 기똥차게 잘해버리는 에드의 완벽한 아웃 인 아웃에서의 브레이킹 포인트에 입을 다물어 버렸다. 속도를 내는것 보다 엔진의 운동을 최대화 했을때 브레이크를 잡았다 놓는 브레이킹 포인트를 제어하는 능력이야 말로 F1 파일럿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중의 기본이며 가장 훌륭한 무기다. [크르르르릉-] 이만하면 정말 물릴정도로 졌다고 생각했는데 신물이 넘어올 정도로 대단히 많이 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또 졌다는 사실에 심장이 뻥 뚫린 감정을 느끼며 머신에서 내렸다. 얼은 등을 툭툭 두드렸고 사람들을 아무말도 없었다. 이번이 진짜 몇번째 진거지? 헤아려 보고픈 마음에 손가락을 빼어 숫자를 꼽으려다 이제는 완전히 손에 익어버린 반지에 팔을 떨궈버렸다. 에드가 진짜 천재인건지 내가 재능이 없는건지 오늘밤 심각하게 고민 좀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본기에 있어서 이론을 연마한후 실전에서 몇번쯤 해보면 곧잘 흡수했던 나의 이력은 에드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인걸까? 하고 생각해 봤지만 자만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꽤 하는편이라고 자부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닌거 같다. 난 별것 아니였고, 실상 나만큼 하는 녀석들은 깔리고 널렸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반지를 빙빙 돌리며 발을 탁탁 구르고 있는데 멀리서 최근 세경기에서 모두 우승트로피를 움켜쥔 에드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오는게 보였다. 에드가 늘 1등만 하는건 아니니까 에드가 못하는때에 우승 많이하지 않나? 라고 물을수도 있겠지만 이상하게 에드의 기록이 좋지 않을때면 내성적도 함께 추락하는 기묘한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어서 나는 이제껏 딱 두번 우승해본 이후로 늘 에드의 꽁무늬에 이름을 달아놓고 있었다. 꾸물꾸물한 표정으로 테이블 앞에 우중충하게 있는 내옆으로 에드가 다가와 앉았다. 다른녀석들도 둘러앉았고 경기기간 일주인간 금주를 해왔던 이들은 개걸스럽게 술을 들이켰다. 주물주물- 안그래도 기분이 침울한데 그런 나의 심정따윈 모르는건지 나를 더 울적하게 만들기위해 작정을 한건지 에드는 대놓고 내 허벅지 위를 손으로 쓸고있었다. 어디가서 변태아저씨 바이러스라도 옮아온거야? 찌릿한 시선으로 손떼라고 무언의 압력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에드는 여전히 손을 허벅지에 둔체로 주물럭 주물럭거렸고 내 화가 극에 달했을때 녀석은 장난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삼각입었네" 에드의 말이 신호탄이라도 되는냥 그의 말이 끝나자 모든이들은 '우하하하하' 하고 뒤집어지며 웃었고 난 인상을 썼다. 지금 나 갖고 네가 노는거냐? 시선이 온통 나와 에드에게 쏠려있는 걸 알면서도 난 에드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내 그런 행동에 에드는'엇' 하고 잠시 놀랄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둘래에 앉아있던 동료들이 '우오오오오오오' 하고 오우거 소리를 내며 포효했다. 무식한것들. 어라? 주물주물 물컹이듯 엉덩이를 쥐었다가 허벅지를 쓸듯 만졌는데 바지 아래에 있어야할 브리프의 감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요즘 새로나온 선안생기는 속옷이라도 장만했나? 했지만 그래도 대놓고 만지는데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 이상함에 내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 지자 에드는 계속 만지려면 만져봐라는듯 술만 들이켰다. "너 - 혹시, 안입었어?" 항상 거의 꼭꼭 매번 볼때마다 파워트렁크를 입고 있었던 에드다. 그런데 아무리 만져서 전해져 오지 않는 촉감에 난 물었고 에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꼬리를 휘고 웃었다. 젠장. 안입었는데 대놓고 만지는데 가만두냐? 이거 변태잖아! 난 헉, 하며 뒤로 물러서듯 주춤했고 주위의 사람들은 자지러지듯 한번 더 웃어댔다. '크하하하하' 하고 웃는 폼이 영 괴물같아서 보기 흉했다. 당황해서 그냥 술이나 마시려던 내가 손을 뻗자 데릭은 눈을 반뜩이며 나를 쳐다봤다. 에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부담스럽거든. 그 재수없는 반짝거리는 눈 좀 치워줄래? 넌 이쁘지도 않잖아. 무시하고 술을 벌컥이려는데 데릭이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애인 생겼어?" "켁-!" 긴장하고 있지 않다가 정곡을 찔리면 움칠하게 마련이다. 장난삼아 덤볐는데 상대가 강하게 나와서 제압해 버리면 당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무시하려다가 딥임팩트로 라이징을 한대 두들겨 맞으면 움칠을 넘어 쿨럭이고 켁켁거리는 법이다. 난 코로 술을 들이키는 바람에 옆에 있는 에드를 붙잡고 놀란 폐를 진정시키려고 쿨럭거리기 바빴고 데릭은 자신이 제대로 찍은걸 알자 환호했다. 이런 시팔놈이. "어? 그러고 보니 에드도 애인 생겼냐? 왠 반지야?" 에드의 손에 반지는 없었다. 참고로 말하지만 내 연봉이 생각보다 쎄긴하지만 난 아직 3년차 신출내기 파일럿이고 돈많은 부자아빠도 없다. 더군다나 나가는 대회의 절반을 쓸어버릴만큼 대단한 녀석도 아닌지라 돈이 별로 없다. 짧게 말해서 가난하다 이말이다. 하여 아직 에드에게 반지를 주지 못했고 그의 손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지 않았다. 다만 어두운 곳이라 손가락에 뭔가 둘러져 있자 데릭은 반지로 단정지었고 그바람에 좀 잠잠해 졌던 폐의 놀람은 다시 발작적으로 쿨럭거렸고 덕분에 가슴이 터질듯 따가웠다. "대답안해?" 얼 앞에서는 뻔뻔스레 애인생겼냐 길래 그렇다라고 잘도 대답했는데 아무래도 얼이랑 동료는 차원이 다른가보다. 말을 못하고 어렵사리 눈치만 피하고 있는 내게 데릭은 끈덕지게 물었고 난 주먹을 움켜쥐며 대답했다. "애인생겼다. 왜" "진짜? 네가? 우와, 누군지 모르지만 우라지게 불쌍하다" 뭐시야? 이새끼가 오늘 나랑 싸우고 싶어서 안달이났나? 휙- 데릭을 째려보자 데릭은 손사래를 살랑살랑치며 그렇잖아라는듯 말을 이어갔다. 도대체 나랑 사귀는데 왜 우라지게 불쌍한건데? 그리고 에드한테는 왜 안들러붙고 나만 괴롭히냐. 내가 너한테 뭐랬냐?! "그렇잖아. 너처럼 오발라게 까탈스러운 녀석이랑 사귀는 여자라니 엄청 불쌍해" 안불쌍해 해도 되겠다. 데릭. 내애인 남자거든. 흥. 코웃음을 치며 난 술을 펐고 데릭은 아 진짜 불쌍한데 나중에 차면 나한테 넘겨라며 화를 돋구었다. 도대체 오발라게 까탈스러운 녀석에게 차인 여자를 만나려는 너의 그 생각은 뭐냐? 라고 물었더니 네가 눈하나는 높잖아라며 베실거린다. 정말 괜찮은 파일럿만 아니였다면 뒷골목에 끌고가서 죽이 되도록 패주고 싶다. 아, 그건 안돼. 요즘 너무 못해서 얼에게 미안해 죽겠는데 인사사고 까지 일으키면 날 해고할지도 모른다고. 괜히 데릭에게 정곡찔리고 화가난 나는 에드를 노려봤고 그의 덤덤한 표정에 속이 뒤틀려 뾰족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내가 빤히 보는대도 불구하고 에드는 삼각팬티 입고온 내 허벅지를 연신 주물거렸고 난 그 행동에 열이 뻗쳐서 왜이래 라고 으르렁 거렸으나 에드는 진짜 삼각인지 확인작업중이야라며 능글스럽게 말하고 술을 펐다. 당하곤 못하는 나는 대놓고 그의 허벅지 안쪽을 움켜잡았고 테이블 아래에서 서로의 허벅지 주물거리는 우리를 다른사람들은 꽤 묘한시선으로 구경했다. "진짜 안입었어?" 추궁을 하듯 다그쳐 묻는 내게 에드는 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좀더 확실한 대답을 듣겠다는듯 빤히 노려보는 내게 에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안입었어. 경기 마치고 곧장 왔거든. 경기때는 트렁크 안입어" 노팬티 차림으로 대회에 출정한단 말이지? 이거 제대로 변탠데. 나는 애인이 변태라는것을 파악하고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입었음 오늘 너 거꾸로 메달아 버릴거야" 갸르릉- 장난을 치듯, 협박을 하듯 나직하게 읊어주고 그대로 에드의 몸위로 몸을 날렸다. 풀썩하고 엎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장 위치를 바꾸기 위해 에드가 버둥거렸고 난 그런 에드의 바지 버클에 손을 올리며 벗겨버려야지! 란 속셈으로 더듬어댔다. 우리의 난투극이 꽤 사람들의 마음에 들었는지 그들은 '오오오오오' 라며 무척 즐거워했고 애인 있는 놈들끼리 뒤집고 엎어지고 해대니 데릭은 이상한지 꿍얼이는 얼굴이 되어있었다. 거꾸로 메달아 버린다는 나의 협박에 마지막 발악을 하듯 버둥이는건지 술에 거의 만취상태인 에드는 쉽사리 바지를 내어주지 않았다. 아무리 다같은 남자끼리라도 공공장소에서 바지 벗겨지는 일따윈 반가운것도, 즐거운것도 아니다. 그래도 오늘 대놓고 나를 성희롱한 죄값은 치루게 해야지 않겠어? 더불어서 나를 이긴것도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안에 아무것도 안입은것 이 확인된 에드의 바지를 벗기기 위해 난 눈을 반뜩이며 득달같이 덤벼들었다. 너도 좀 당해봐. 아무리 생각해도 난 틀림없는 나쁜놈 이였다. 느리게 진입해서 빠르게 빠져 나간다는 슬로우 인 패스트 아웃은 밥먹기의 기본이라 할수 있는 숟가락 들기만큼이나 당연시 되는 기술이다. 테크닉 자체는 너무나 익숙한 것이지만 코너에 접근할때 느리고 부드럽게 바람에 나부끼듯 자연스럽게 들어선뒤, 코너를 탈출할때 폭발하듯 가속을 붙여서 펑-! 하고 튀어나가는것은 숟가락을 들지못하면 밥을 못먹듯, 기본기 중의 기본이지만 이게 되지않으면 테크닉에 관해 논할수 없는것중 하나다. <사하, 좀더붙어> 피트의 작전은 대단히 객관적이며 관찰자적 입장에 있게 마련이다. 달리는건 파일럿이지만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내가 이게 옳으니 이대로하면 될일도 안되는것이 F1이다. 이미 서로가 서로의 기계에 대한 약점과 단점을 알게모르게 공유해버린 현재 포물러 원의 특징상, 드라이버의 능력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그만큼 피트의 작전도 중요하다. 직접 달리는 쪽보다 멀리서 한발 떨어져 지켜보는 이가 좀더 정확한것은 피할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앞이 엉켜서 흐릿해> 그러나 누가뭐래도 직접 핸들잡고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절묘하게 밟으며 달리는 쪽은 파일럿이다. 내가 못한다고 손 털어버리면 피트에서도 어쩔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손 놓아버리려는 나를 끈질기게 설득하는것도 피트의 일임에 틀림없다. 결론적으로 피트가 아무리 그릉거려도 절대못한다고 하면 또 어쩔수 없는거지만 피트의 작전을 무시할수 있는 파일럿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좀더붙어> 얼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마음씨 좋은 옆집 영감님 목소리 같았달까? 어딘지 너 나랑 한번 해보자는거냐? 라는 기색을 띄기도 했다. 원체 이바닥에서 오래도록 굴러먹으신 분이니 나같은 고집쟁이야 한두번이 아니겠지만 그 여유만만한 느긋함이 조금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뒤에선 로이든이 코너에 거의 딱 달라붙듯 붙어서 마치 당구공을 치기위한 큣대의 나갔다, 들어갔다 조준하는 행태의 모습으로 내 뒷꼭지쪽으로 달겨들었다, 물러났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상당히 위험했지만 눈깜박할 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의 차를 두고 달리고 있었지만 로이든이 나를 잡아먹을 확률은 매우 적다. <기어 6단으로 당기고 당장 붙어!> 내코앞에 달리고 있는 에드를 향해 바싹 붙으라고 얼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불같이 화를 내는대도 불구하고 난 따라가기 주행을 하듯 올릴듯, 올리지 못한체 뒤를 아슬아슬하게 뒤에 붙어 달렸고 얼은 더 붙어대라고 난리였다. 머신끼리 충돌하면 1미리 혹은 그보다 더 약간인 바람결에 나부끼듯 스치기만해도 공기의 외부압력 때문에 가벼운 머신이 붕- 하고 날아가버리게 된다. 당연히 뒤집어지거나, 매쳐지거나, 아니면 아예 박살이 나버리게 되는 머신에 타고 있으면 소위 말해서 황천길로 직행이다. 그것도 초고속으로. 그런 아슬아슬한 순간에 손으로 밀면 밀릴정도로 가벼운 머신에 탄체로 불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에드의 뒷꼭지를 물듯이 따라붙으란건 너무 위험한 작전이였다. <날더러 죽으란거야!> 나는 꽥 소리쳤고 얼은 입을 다물었다. 길고 휑한 지리하고 답답한 침묵 속에서 난 뼛줄기를 타고 소름이 주루룩 흐르는걸 느꼈다. [키리리리리----- 리리리--ㄱ] 영화를 보면 전륜구동이 틀림없을 일반자동차를 타고 차체를 돌리기위해 거칠게 핸들을 뒤흔드는 어깨의 거침없는 움직임을 생생히 목격하는 경우가 있다. 미안한 말이지만 진짜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어깨를 거의 움직이지 않고, 상체의 흔들림도 거의 없이 손만 까닥까닥해서 운전을 한다. 그들이 긴박한 상황에 처해있어서 그런거라고 우긴다면 할말없지만 급격한 코너링을 할때에도 F1의 파일럿들은 움직임 만으로는 지금 뭔짓을 상대가 하려는건지 알수가 없다. 그런데 그 엄청난 불문율을 깨고 나는 거칠게 어깨를 뒤틀어 험악한 호를 그리며 트랙 밖으로 머신을 돌려세워 경기를 자진기권하듯 멈춰섰다. 머신은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고 주위는 요동쳤다. 니키 라우다 화염속을 뚫고 달릴 정도로 강건했던 F1의 전설적인 드라이버인 라우다는 연료탱크에 불이 붙었음에도 경기를 끝내고 나서야 병원으로 향했다. 역대 월드 챔피언을 3번이나 했고, 그랑프리에서 25번이나 우승을 한 그는 화염속을 달린후 2-3도의 화상을 입고, 며칠을 병원에서 죽은듯이 지낸후에도 다시 트랙으로 돌아올 정도로 질주에 대한 깊은 애착을 갖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이 불세출의 영웅도 두려움이란것이 마음 한켠에 있었던 건지 어느날 대단치 않은 F1 드라이버라면 간혹 겪는 사고 한번에 '이러다 죽을 것 같다' 란 생각에 트랙에서의 달리기를 그만두어 버렸다. 화염속에서 달린후에도 트랙을 다시 찾았던 라우다가 한번의 사고로 트랙을 돌아섰을 정도로 무서웠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내게 옮아온걸까? 날더러 죽으란거냐고 내가 내지른 소리를 되새기며 몸이 오그라드는걸 느꼈다. 월드 챔피언을 3번 한것도 아니고, 그랑프리에서 25번 우승한것도 아니고, 고작 3년 이바닥에 발을 드밀었을 뿐인 애송이 파일럿이 죽음을 걱정하고 있다는건 이미 달릴 이유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소위 말하는 헝그리정신이 부족해졌다는 표현이 딱 맞는 모습이겠지. 나는 왜 달리려고 트랙에 뛰어들었던가? 머신을 트랙밖으로 끌어낸 나는 곧장 내려 피트로 돌아갔다. 피트 내부는 술렁이고 있었고 얼은 말없이 내가 하는짓을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었다. 6월 캐나다 몬트리올의 날씨는 적당히 따뜻하다. 그러나 내리쬐는 태양의 뜨거움을 고스라니 집어삼키는 트랙의 검은 레코드 라인의 번쩍임은 대일듯 아팠고, 여전히 쌩쌩거리며 질주하는 머신들의 휘양찬란함은 가슴을 애리듯 쓰리게 화창했다. 화창함을 넘어서 머리가 뜨뜻해질 정도로 맑은 날씨에 난 소풍가듯 짐을 쌌고 그모습 지켜보던 얼은 가슴 깊숙히 숨겨뒀던 질문을 끄집어냈다. "이제 살 마음이 들었어?" 나에게 진심으로 살마음이 든거냐고 묻는것일리 없었다. 그는 나를 비꼬고 있었다. 왜 이제야 그런질문을 해주는건지 원망인지 한탄인지 둘다일지 모를 눈으로 얼을 바라봤다. 정신없이 에드랑 사랑을 하느라 내가 뭔지도 잊고 있었다. 정체성에 대해서 만큼 확고하다고 생각했는데 심각한 착각이였나 보다. 칠렐레, 팔렐레 내가 놀아날때 따끔하게 그렇게 물어봤으면 얼마나 좋냐고 아쉬워 하며 입꼬리를 비틀어 웃어보였다. 가방에 입을것 먹을것 필요한것을 구겨넣은 나는 그것을 들춰맸다. "보름후에 안오면 짤라" 악을쓰듯 자신감있게 말한 후 피트를 나와 경기장 밖으로 향했다. 얼은 여유만만한 자세로 팔짱을 낀체 도망치는 나를 내버려뒀다. 살을 푸륵거리며 데이빗은 어쩔줄 몰라했다. 다른 미캐닉들 역시 데이빗한 비슷한 처지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경기장을 나가려는 나를 대회 관계자가 붙잡으려 했지만 험하게 노려봐 주는것으로 그를 물리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손가락에 걸린 은은하게 자신의 자리라고 턱하니 마음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누군가의 존재가 심장을 아프게 했다. 뜨거운 공기가 폐에 가득 밀려와 혈관을 따라 흐르는 혈액을 뜨겁게 데워 몸을 태워나갔다. 아프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게 마련이다. 어머니란 이름은 모성의 힘으로 그 어떤 인간보다 강하다고 하지만 그 많은 강한 어머니 중 제자식을 버리는 사람도 있고 때론 자식을 놓고 흥정을 하는 이도 있다.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겉으로 눈물 흘리는 모성애 보다 자신들의 마음으로 피를 토하는 부성애에 관해 더욱 대단함을 주장하곤 했다. 하지만 훈육을 핑계삼아 어린 자식들을 몽둥이로 따끔하게 찜질을 해주기도 하고 일을 핑계로 집밖으로 내돌기도 한다. 또르르르륵.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 꼬마아이가 보였다. 조악한 장난감은 테이블 여기저기를 제멋대로 굴러다니다 내 근처에서 멈춰섰다. 식당에 앉아 적당한 음식을 주문한체 시선을 고정시킨것은 다름아닌 텔레비젼이였다. 나는 어찌할수 없는 파일럿 인것인지 아니면 에드라면 사족을 못쓰는 불쌍한 중생인지 사랑하는 애인이 트로피를 안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흐믓하고도 아픔 마음으로 건너다 보며 착찹한 심경을 곱씹었다. 나의 어머니 가브리엘라. 그녀는 이름만큼 강했다. 가브리엘라. 갈색머리 밝은 푸른눈을 가진 부모님이 따뜻하게 감싸주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난 그녀는 부모와는 다른 온전한 한국인이였다. 그녀의 목에 걸려있었던 은목걸이에 생모의 이름과 자신의 생일이 찍힌 행복하지 못한 출생의 증표였다. 가브리엘라는 자신의 고국에 단한번 가본적이 없었지만 자신의 뿌리에 대해 잊지않았다. 미움, 증오, 버림 받았다는 절망감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어느사이 보고픔, 그리움, 아쉬움으로 채워질 무렵 가브리엘라는 장성했고 수중에 비행기 삯이 모이기 무섭게 곧장 가브리엘라는 자신의 나라인 한국으로 향했다. 어머니를 찾는 가브리엘라 앞에 시원하고 따뜻한 손을 내밀었던 남자가 있었다. 가브리엘라가 어머니에게 애틋함과 불신감을 동시에 느낄때 남자는 옆에서 열심히 가브리엘라를 독려해줬고, 그의 차가운 따뜻함에 그녀는 한눈에 반해버렸다. 그것은 미련한 사랑의 시작이였다. 한국이란것 자체에 깊은 연민과 사랑을 느끼는 가브리엘라에게 그곳은 한편으로는 불신과 버림이라는 이름이 낙인찍힌 곳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벽은 가브리엘라의 사랑하는 그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네아이를 갖고싶어" 지나치게 강인했던 가브리엘라는 남자에게 자신의 사랑을 토로했고 당연하게 남자는 거부했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 강했고 그는 뿌리칠수 없었다. 사랑이 안된다면, 평생 옆에 있어줄수 없대도 아이는 줄수 있겠지. 자신의 사랑을 채우기 위해 가브리엘라는 그에게 아이를 요구했고 그는 발작적으로 거부했지만 가브리엘라는 강했다. 이런 경우 강했다기 보다는 범죄자의 심성으로 가득했다는게 옳겠지만 그만큼 그녀의 사랑은 깊었다. 자신의 반쪽을 물려받을 아이가 치명적인 상처를 받더라도 어찌할수 없었을 만큼 그를 사랑했다. 그런것도 사랑인가? 하고 되묻고 싶겠지만 가끔 지나치게 용감하고 강인한 사람에게 그런것도 사랑이기도 한모양이였다. "아이를 위해서 일년에 한번씩만 만나줘" 그것은 아이를 위한 제안이 아니였다. 나의 어머니 가브리엘라 자신을 위한 제의였다. 마치 아이를 놓고 계약서를 작성하듯 태어나는 아기가 18살이 될때까지 일년에 단한번 만나기로 계약을한 그들은 실제 흥정물인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긴 장기계약을 헌신적으로 실행했다. 그리고 그렇게 길고 길줄 알았던 영원히 끝날것 같지 않았던 아이의 18번째 마지막 만남이후 꼬박 일년이 지난후에 가브리엘라는 19살을 맞은 아이에게 진실을 토해냈다. "미안해" 거의 스무해를 꼬박이 속아온 아이에게 가브리엘라 처음 꺼내온 말은 그것이였다.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원치않는 환경에서 자라야 했던 아이. 루이스 사하 이젯. 이제와서야 그것이 원치않을법한 환경이란걸 알뿐이지 그때 당시 나는 참 말잘듣는 고분고분한 아이였다. 강인한 어머니도 있었고, 1년에 달랑 한번 만나지만 진실로 믿음직스러운 아버지도 있었다. 그리고 미련한 사랑으로 머저리같은 행동을 하여 덜렁 아이를 놓은 강했던 가브리엘라 곁에 그녀보다 더 미련한 사랑을 실천했던 이젯이 있었다. "나는 그녀를, 가브리엘라를 사랑해" 나의 사랑하는 양부는 내게 가족의 울타리를 지어줬다. 그리고 그 댓가로 머저리 모자의 1년에 한번 오는 행복한 가장과의 만남때 마다 자리를 비켜줘야할 영광을 차지했으며 돌아오질 않을 미스터 리의 자리를 늘에야 안정적으로 차지했다. 그들의 서로 마주볼수 없었던 미련한 사랑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난 언어학자였던 이젯을 상대로 이루 말로 다 표현할수 없는 욕을 퍼부었지만 그는 나는 너도 이해하고, 그녀도 이해하고 둘다 사랑한다고 했다. 내 아버지는 미스터리였다. 떨어뜨려써도 미스터 리였고, 붙여써도 미스터리였다. 멀쩡히 아내가 있고, 사랑스런 자식들이 있음에도 1년에 한번 반드시 나를 만나러 와주었던 그 미스터리 같던 미스터 리. 믿음직한 아버지라고 생각했고, 늘 외국에서 고생하신다고 '아버지께 부끄러운 자식이 되선 안된다' 라는 가브리엘라의 말을 찰떡 같이 믿었던 나는 유난히도 모가 비죽비죽 했던 심성을 그때는 참 대단한 인내심으로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슬그머니 사람을 비꼬고 싶을때에도, 은근히 누군가 내려깔고 싶을때에도 '믿음직한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도 완전히 착하지는 못했던 것인지 일년에 한두번쯤은 으슥한 골목길에서 기다렸다가 나를 못살게 굴었던 녀석을 흡씬 패주곤 했었던것 같다. "루이" 자신의 아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가브리엘라는, 그녀를 지독하게 미련스러운 방법으로 사랑하는 이젯에게 감싸져있었다. 미스터 리를 빌어먹게도 쏙 빼닮은 내 외모는 나에게 저주였고, 동시에 축복이였다. 닮지 않았다면 가브리엘라가 나를 버렸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나의 아들이라고, 나의 아이라고 그녀가 애닮으게 불렀지만 난 그런말 따위 싹 무시하고 짐을 챙겼다. 마치 오늘처럼. 화창한날 소풍을 가는 아이처럼. "저도 1년에 한번이면 충분하겠죠?" 완벽하게 속아넘어갔다라는 말을 부모를 상대로 하는것은 자식의 도리가 아니겠지만, 그때 나의 심정은 완벽하게 사기를 당한 불우한 중생의 기분이였다. 화를 내야할 상대인 가브리엘라에게는 '1년에 한번은 꼭 만나자' 라는 인사를 남기고, 오히려 감사의 대상이 되어야할 이젯에만 잔뜩 욕을 퍼붓곤 집을 나섰다. 그날도 지독스럽게 공기가 뜨거웠고 폐부를 까맣게 태울듯 공기가 몸속으로 마구 밀려들어 왔었다. 아버지라는 감투에 속아 한국어를 배웠고, 태권도를 배웠고, 공부를 했었고, 착한아이인척 했었고, 모든것에 감사하는 삶을 종용 받았다. 내가 뭣하나 잘못한게 있었다면 억울함이라도 덜할까 싶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그냥 막살았어도 좋지 않았을까? 틀안에서 어떻게든 잘 재단된 모습으로 예쁘게 보이려고 발버둥쳤던 그 불쌍한 푸득거림을 20년간 줄기차게 해왔다는것이 너무 억울했다. 태어난 이유가 겨우 흥정의 도구가 되기 위함이란 사실이 뱃가죽이 뚫린듯 허했다. 가브리엘라의 사랑은 나빴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 내가 온전히 그녀의 아들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가능하다면 나는 에드에게 '네아이를 갖고 싶다' 고 말할것이다. 아이를 나아 기르겠지. 그리고 반대편에선 칼자루를 빼들고 에드를 이겨보겠노라고 악을 쓰고 있을것이다. 이상한 자기모순에 퐁당 빠져버린 나는 자괴감에 테이블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또르르륵-. 아무것도 모르는 투명하게 맑은 눈망울을 가진 아이를 나는 요구할수 없음이 아쉬운것은 내가 가브리엘라 보다 악하기 때문이다. 가출을 한 19살 짜리 사내아이가 갈곳은 별로 없다. 그전까지 우물안 개구리로 살아왔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늘 착한척하며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 쳤었기에 머리론 알고있는데 몸으론 할수 없는것이 가득해서 어쩔줄을 몰라 망설이는 시간이 대부분이였다. [키르르르르---------------륵] 거리를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멈춰선것은 거대한 전광판이 설치된 가게 앞이였다. 장사를 하는 가겟집 앞에 멈춰서서 멀뚱거리는건 예의가 아닐런지 모르겠지만 커다란 티비에서는 유럽인의 3대 스포츠중 하나인 포뮬러 원의 결승전이 한참이였고 거리의 시민들은 하나같이 바보상자라고 불리는 티비앞에 멈춰서서 몸을 움찟거리며 경기에 열중했다. "몇살이지?" 수많은 시민 중 하나였던 늙그수래한 남자가 내게 물었고 왠 미친놈인가 싶어서 처음엔 무시했다. 척보기에도 급조해서 가출한 티가 역력한 내게 말을 건다는것 자체가 수상한 기색이 팍팍 풍기는 남자가 아닌가. 더군다나 이런 못난이 늙으수래 영감님은 사양이다. 어떤의미에서든. 오도카니 서서 티비만 뚫어져라 쳐다보자 그는 더 할말이 없는지 그외의 말은 하지 않았다. 모터 스포츠라는것이 죽으려고 발악하는 인간들의 누가 더 사이코인가를 겨루는 짓거리 쯤으로 여겼던 나는 비꼬듯 내게 말을건 영감님께 물었다. "저거하면 일찍 죽어?" 그래, 태어난 이유가 흥정의 도구라면 이제부턴 뭔짓거리든 내맘대로다. 이왕이면 화끈하고 자극적이고 일찍 죽을수 있는쪽이 흥미롭고 재미도 좋겠지. 삐딱선을 내리긋듯 타버린 나를 알아차린건지 영감님은 진중한 목소리로 웃으며 대답을 했다. "죽기가 그렇게 쉽지가 않아" 허이구. 웃기시네. 나는 영감님을 비웃었고 영감님은 그런 나를 비웃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영감님의 승리였다. 나는 죽음을 거부하듯, '지금 날더러 죽으란거야!' 라고 영감님께 소리질렀고 영감님은 그런 나를 비꼬았으니 제대로된 승리임에 틀림없었다. 좋겠수, 얼. 나한테 이겨서. "쉬워보이는데" 난 영감님의 의견을 비웃듯 티비 화면에 턱짓을 했고 그날은 드물게 사고가 많은 날이였다. 선수들은 베베 꼬인 코스의 난감함에 리타이어를 (실수) 반복했고 적나라하게 대놓고 비웃어 주기에 딱 좋은 광경이였다. 나의 비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는것인지 영감님은 본록부터 톡 깨놓고 말했다. "죽고싶은가봐?" "응" "저거 한번 해볼래?" 처음엔 이영감님 정말 미친놈 중에도 상미친놈이구만 싶었는데 그의 폼새가 장난이 아니였다. 나는 좋다고 호쾌하게 대답했고 그를 따라 처음간 곳은 카트 트랙이였다. 19살. 보통 명드라이버들이 늦어도 8살때 부터 카트를 타기 시작했다는것을 가만하면 정말 질리게 늦은 나이였다. 그런데 '죽을셈' 으로 뛰어든 나를 이길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예전부터 모사에 능했고 따라하는것에 어려움이 없었던 나는 쉽게 배웠고 얼이 원하는 성적보다 훨씬 더 대단한 성적을 내며 쑥쑥 성장했다. 그리고 카트를 잡은지 겨우 5년만에 F1 파일럿이 되었다. 어떤식으로 계산하든 최단시간내에 오른 금자탑이였고 그곳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니까 목숨따위 버려놓고 질주본능으로 달리자! 라고 모두들 말하지만 실제로 죽어보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모두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고, 아끼는 애마가 있었고, 소중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런데 내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믿음을 주었던 모든것이 너무 쉽게 거짓임을 알았고 그래서 믿음 따위 버린지 오래였다. 오직 죽을 각오로 달리고 또 달릴뿐 다른건 내게 없었다. 그런데 내게 소중한것이 생겼다. 결코 가까이 두어선 안될 그 소중한것. 그리고 괜한 피해의식으로 에드가 나를 이용한것인지도란 생각을 곱씹는다. 나는 그를 죽일수 없다. 함께 하고픈 에드를 두고 나또한 죽을수 없지만, 그보단 그를 죽일수 없다. 근접거리에서 추월을 위해 바싹 붙어 달리는 행동 따위 예전의 거침없던 것에 비하면 정말 살살, 얌전히, 조심조심이라고 표현될 만큼 나는 온순하게 달리고 있는것이였다. 사랑에 눈이 멀면 바보가 된다더라는 말은 실로 진실이였다. 나를 잊고, 온전히 정신을 앗아간 사람에만 집중한다. 죽을셈으로 뛰어들었지만 결국 내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F1에서 결코 맞잡아선 안될 사람을 나는 붙잡은 것이였다. 미련한 사랑의 시작. 내삶의 전부를 다시 움켜쥘 것인가, 죽은셈 치고 그것따윈 떨치고 나를 사로잡은 사람을 붙잡을 것인가. 마음은 그를 머리는 머신을 향했다. 이 모든것의 시발점인 나에게 태산같은 욕을 퍼부었다. 세상의 반이 여자고, 나머지는 남자인데 왜 하필 그녀석이지? 넌 머리를 폼으로 달고 다닌거였구나. 등신. 하는짓도 어떻게 그모양이냐. 아무리 모진인간이라 해도 사귀고 있는 인간을 죽음의 구렁텅이 바로 코앞까지 밀어붙일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내가 대단한 능력이 있어서 1등으로 시작해 1등으로 마무리 하는 인간도 아니다. 파일럿, 난다는것을 포기하기엔 죽을 각오로 시작한 내시간이 너무 애처로웠다. 또 한번 도구로 유용되고 말 금싸라기 같은 내 시간들이 너무 불쌍하고 애처로웠다. 나 자신을 위해 내가 하고싶은것을 마음껏 하고 살자고 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것을 방해하는것을 원하는 마음이 엉키고 엉켜서 풀수가 없었다. "네가 미워" 호텔방 앞에서 길잃은 아이처럼 쪼그려 앉아있던 내가 에드를 만나자 마다 대뜸 그렇게 말했다. 사람좋은 에드는 마음도 좋지 오늘도 웃는다. 또 화난거야? 다음에 잘하면되지 하고 다독이며 상처를 잔뜩 입고 노려보는 불쌍한 녀석을 일으키려고 한다. 다음에 잘해? 어떻게? 내가 너를 몰아붙일수 있다고 너는 생각하나봐? 너는 그럴수 있어? "네가 싫어" 로이든이 앞에 달리고 있었다면 난 미친듯이 달겨들어 어떻게든 안쪽 코스를 파고들어 추월했을것이다. 그런데 에드라서 그러질 못했다. 그가 잘 못할때 그럼 잘해봐라고 하지만 그가 못해봤자 그는 늘 5위안에 든다. 뭘 어떻게 더 잘하라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든 녀석이 싫다. 가끔네가 싫어죽겠어. "너랑 헤어질거야" 내 두번째 말에 할말을 잃었던 에드는 내 세번째 말에 입을 다물고 하얗게 질린 표정이 되었다. 자동처럼 반지를 빼어내 그에게 내밀었다. 나는 달려, 에드. 그래서 날아오를거야. 아주 멀리, 붙잡을수 없을만큼 먼곳으로 날아볼거야. 날때 누군가의 발목도 붙들어 끌어내려야 하고, 앞서가는 사람 부딪혀서 튕겨내기도 해야하는데 사랑하면서 그럴수는 없어. 그런짓은 못해. 그러니까 이제부터 너랑 그만사랑할거야. "루이, 이러지마" 반지를 빼어내 그에게 내밀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빨리 받아. 던져서 네마음을 아프게 하기전에. 왼쪽 네번째 손가락에 화인처럼 새겨진 문신이 나를 비웃고 있었지만 나는 위축되지 않았다. 이건, 아이를 가질수 없는 내가 에드를 잡아놓는 족쇄다. 그가 문신을 파내기 전까지 그는 나를 죽일수 없다. 나역시 죽이기 힘들겠지만 이 헤어짐으로 난 악당이 될거다. 영웅을 시기하고, 천재를 질투하며, 경배의 대상을 추궁하는 질나쁜 악당. "너는 모를거야, 너는 알수없어, 너는 평생 느끼지 못할거야. 너는 몰라. 진다는게 어떤건지. 진정으로 진다는게 뭔지 평생 모를거야. 그런마음을 넌 몰라. 내 그런 열등의식을 모를거야. 평생. 죽을때까지. 아니, 죽었다 깨어도 모를거야. 그러니 이제 그만 할래. 너랑 마주보기를 하면 할수록 나만 아파. 미워할수도 없게 만들면서 이기는거 더이상 견딜수 없어. 이걸로 끝이야" 반지를 바닥에 내려두고 일어섰다. 혼자서 질투하고, 혼자서 사랑하고, 혼자서 헤어진다. 나는 왜이리도 못났을까. <사하, 무리하지마> 부드럽게 물흐르듯 리듬을탄 머신의 심장을 윙윙 시끄럽게 울렸다. 언제나 처럼 앞에는 에드가, 뒤에는 로이든이 바싹 붙어서 달리고 있었다. 프로스트 사이에 끼여버렸지만 전투감에 불타오른 나는 에드의 뒷쪽에 바싹 붙었고 자칫잘못 그가 속도라도 조금 줄이면 그대로 둘다 하늘로 붕- 날아가버리는것은 안봐도 비디오일터이지만 피트의 떨어지라는 명령에도 난 바싹 들러붙었다. 정상으로 돌아왔다. 일상으로 복귀한 것이다. 달콤한 꿈속에서 허우적 거리던것을 그만두고 피트는 나를 말리고 나는 그럴수록 미친듯이 더욱 속도를 내는 예전으로 회귀한 것이다. [쿵-], [끼리리리리리----릭] 나는 기어코 사고를 내고 말았다. 내앞에서 몇번인가 휘청이던 에드에게서 슬쩍 물러났다가 순간적으로 속도를 내어 [쿵] 하고 그의 뒤를 물어버린 것이다. 에드의 사랑하는 프로스트 턴A는 그이름 만큼 멋진턴을 하며며 빙글 트랙을 반바퀴 어기적 돌았다. 부딪히는 순간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위해 급하게 머신을 멈춰세우는 에드를 보면서도 난 죄책감 없이 코너를 탈출했다. 마지막 랩 헤어핀에서 앞서가던 머신을 박아버리는 행동, 그것이야 말로 죽기를 각오한 그리고 죽이겠다고 앙심을 품은 악당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내가 에드의 뒤를 물어버리는 순간 관중들은 포효했다. 기쁨의 포효가 아닌 영웅을 단상에서 끄집어 내려버리는 나의 오만한 행동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포효였다. 그들에게있어 에드는 천재라는 것이 무엇인지 증명해 주는 영웅이자, 자신들이 가질수 없는 재능을 대리만족 시켜주는 대리인이기에 그를 끌어내린것은 악당이 이겨보고자 얕은 수를 쓴것은 온당치 못하기 때문일것이다. "쟤들 왜 저러는거야?" 1등으로 골인한 나를 보는 관중의 눈길은 반쯤은 '역시 넌 나랑 같은 악당이로구나, 잘했다' 라는 반가움을 표했고, 반쯤은 '이 비열한 놈아, 감히 박치기를 해서 이겨보려고 수작을 부려?' 라며 정의 이름으로 용서치 않겠다고 광분중이였다. 피트로 돌아온 내게 데이빗은 이런 환경에 아직 적응하지 못해서 투덜이듯 주절였다. 벌써 몇번쯤 이런 광경을 경험한 다른 미캐닉들은 익숙한듯 '또 그러네' 라고 쉬이 받아들였다. "얼, 나 잘하지 않았어?" 피트의 명령을 무시하고 그야말로 에드를 날름 잡아먹듯 사냥해버린 나를 보는 얼의 표정은 착찹함과 안도감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인생의 대선배로써 너 그러다 정말 죽는다라는 눈길이 착찹했다면, 죽지않고 살아와서 다행이다라는 눈길은 안도로 가득했다. 오늘은 계란 몇개를 맞으려나? 훗. 에드에게 반지를 돌려주고 돌아온 직후부터 난 미친갱이 마냥 정신없이 내달리고 있다. 그래서 얻은것은 1등 트로피 몇개와 남보다 높은 승점, 에드의 팬들이 던져대는 달걀세례, 각계각층의 스포츠쉽의 부재라는 들끓는 비난, 절대로 나를 죽일수 없다는 에드의 대단히 배려심 많은 훌륭한 트랙 매너를 확인 중이다. 바꿔말하자면 그에게 '죽어보자'고 위협해서 앞자리를 좀더 쉽게 확보함으로써 에드가 아직 나를 완전히 단념하지 않음을 확인중이다. "퍽-" 경기장을 빠져나와 차에 오르려고 할쯤 신호탄 인듯한 반질반질한 달걀하나가 내옆으로 날아와 박살났다. 그후로 세판은 너끈히 될 달걀들이 차와 나를 향해 마구 뿌려졌고 경찰병력이 느긋이 출동하기 전까지 그 달걀세례는 계속 되었다. 악당종족인듯 한 나의 승리를 축하하는 무리들틈에 올수없었던 고귀하신 에드의 골수팬들은 밖에서 달걀을 들고 축포를 날리고 온 나를 기다렸다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달걀을 날려댔다. 비열, 치졸, 파렴치, 약았다. 라는 말들이 요동치고 있었지만 내가 할수있는건 없었다. 군중의 힘은 강하다. 하나보다 여럿이 모인 군중의 힘은 정신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무척 강하다. 그들은 혼자서는 결코 할수 없을 일을 신호탄이 울림과 동시에 퍼붓곤 하는데 나와 일대일로 그들을 세워놓고 해보라고 하면 결코 못할일임에 틀림없는 짓을 군중속에 어울려 있을때는 잘도 해댔다. 길을가다 우연히 나를 만나면 '저런 치사한, 스포츠 정신이라곤 쥐뿔만큼도 없는 놈' 이라고 속으로 욕하며 경멸의 눈길을 흘리는 이는 있을지언정 대놓고 덤비며 달걀을 던져줄 사람은 없을것이다. 그러나 군중은 강했고 그들은 내게 달걀을 퍼부었다. "괜찮아?" "한두번도 아닌데 뭘" 난 손을 으쓱 들어보이며 차에 올랐고 비린내가 진동하는 옷을 벗어버리고 눈을 붙였다. 처음 에드에게 달겨들었을때 사람들은 '미친놈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라며 비웃었다. 그러나 내가 죽어보자고 안쪽코스를 향해 득달같이 덤비자 휘청휘청 흔들리는 에드를 보자 그들은 의아함을 느꼈을 것이다. 위협하면 같이 위협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피할까, 말까 혹시나 뒤따르는 내가 죽을까싶어 안전부절 못하는 에드의 모습이라니 그들은 마치 환영을 본듯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악당인 나는 악마같은 질나쁜 미소를 지었다. 비켜, 에드. 날 죽일셈이야? 에드는 정말 어이 없을 정도로 쉽게 자리를 내주었다. 더욱 빨리 달리려고 악을 쓰는 그를 무시한체 무조건 안쪽으로, 안쪽으로 파고들기만 하는 나의 황당무계한 전법이 먹혀든것이다. 그러니까 녀석은 나를 사랑한대도, 댁들은 모르겠지만. 반지를 돌려받았음에도 나의 간댕이 부은 호승심 앞에서 무기력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쉽게 비켜서 버리는 에드의 행동에 처음엔 그에 대한 실망감이 가득한 기사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한번, 두번 횟수가 불려질수록 마치 나는 물론, 다른이의 목숨따위 역시 안중에도 없다는듯 덤벼드는 내 행동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런언론을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나랑 같이죽을 마음이 든것인지 에드는 그때쯤 쉽사리 앞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오늘은 비키지 않는군. 그럼 그렇지라고 에드의 팬들은 배를 탕탕치며 느긋해 했지만 그러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에드는 나를 아직 좋아하고 있기에 난 그것을 믿고 오만하고 거만스럽게도 그의 사랑하는 머신을 뒤에서 박아버렸다. 빙글- 내눈앞에서 휘청이며 돌고있는 에드는 그와중에도 뒤에서 달리고 있을 나를 배려해 머신을 가까스로 컨트롤 하며 밖으로 끌어냈다. 프로스트 킬러 사하. 그후로 꽤 많은 프로스트의 머신이 내게 의해 빙글 도는 수모를 겪었고 그런 이유로 언론은 조근조근 나를 씹어주기 시작했다. 언론뿐 아니라 F1의 대선배들과 다른 종목의 운동선수들까지 서로에 대한 배려가 없는 무지막지한 질주에 대해 대놓고 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날 누군가 내게 달걀을 던졌고 한번 시작한 일이 일상이 되어 오늘에는 아주 연례행사 처럼 굳어졌다. 말 하자면 나는 전세계 F1 팬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것이다. 물론 공격심으로 똘똘 뭉친 나를 보며 열광하는 이도 있었지만 뒤돌아 서서 텁텁한 입맛을 느낄것이다. 분명 에드가 더 잘하는데 왜 그가 지는걸까? 라는 의문을 곱씹겠지. 성공할래, 사랑받을래? 내가 에드의 옆자리에 있기 위해선 난 반드시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 성공, 이긴다는것 내것에서 인정받기 위해 난 그를 끌어내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를 사랑하는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왜냐면 우리들의 일은 목숨을 내놓고 하는것이고 때론 승리를 위해 서로의 목숨을 조이는 짓도 서슴없이 해야하기 때문이다. 에드와 한껏 행복해 할때 난 그것을 알게모르게 당하고 있었다. 에드를 죽일수 없기에 바싹 붙을수 없었고, 그를 위협할수 없었고, 죽어라 달려들수 없었다. 그리고 그와 그만사랑하겠다라고 한직후 그에게 난 그때의 고통을 고스란히 돌려주듯 에드에게 상대가 모호한 칼을 들이밀며 비키지 않으면 죽어라고 협박을 했다. 결과는 기가막힐 정도로 성공적이라 웃음이 나올정도로 슬프다. 혹 내가 다칠까 안전하게 길을 내어주는 에드의 심장을 욱씬거리게 만드는 행동은 악당인 나 아니고선 누구도 고맙게 받아먹지 못할것이다. 나는 에드의 사랑을 이용하고 있는것이다. 사람들은 우리의 관계를 모른다. 에드의 왼쪽 네번째 손에 틀림없이 아직도 문신이 짙게 남아 있지만 그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답답하리 만큼 촘촘하게 내 왼팔에는 손가락 두번째 마디부터 팔꿈치 깊은곳까지 감싼 하얀붕대로 인해 어느누구도 내몸에 새겨진 문신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기를 마친뒤 숙소에 돌아와 혼자가 되었을때 붕대를 가는 시간이외에는 온종일 내왼팔은 하얀붕대로 감싸져있다. [촤르륵-] 신형 머신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피치못할 사정으로 마딱드려진 에드의 아버지 프로스트씨는 나를 한참동안 노려보셨다. 프로스트씨의 시선을 고스라니 받고 있던 나는 한대 때리시란 의미에서 그의 앞으로 다가갔고 내가 오길 기다린듯 얄짤없이 머리위로 시원한 물세례가 퍼부어졌다. 차갑다. 기자들은 나와 프로스트씨를 봤지만 모른체 외면했다. 하하. 이래서 천재란 좋은거다. "죽고싶으면 너나죽어. 남의 아들 명줄잡고 흔들지 말고" 에드는 없었다. 나와 부딪혔을때 부상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다. 알바 아니지만 자연스레 귀에 들어오는것을 튕겨낼수는 없는 일이다. 아버지는 여러가지가 있다고 본다. 한때나마 믿음직스러웠다고 생각했던 나의 친부처럼 모든것에 무관심한 이가 있다면, 내게 가정의 울타리를 1년 365일 한시도 빠지지 않고 세워주기 위해 온화하게 내곁을 지켜줬던 이젯같이 한없이 바보스런 사랑을 하는 아버지도 있고, 자신의 아들을 위협하면 달려와서 한대 패줄수 있는 화끈한 프로스트씨 같은 분도 있는듯 싶었다. "비키지 않으면 되는거 아닌가요?" 죽을까싶은 두려움에 에드가 나를 피하는거 아닌가요? 내질문을 바꿔하자면 저렇게 말할수 있겠다. 역정을 내며 자리에 앉는 프로스트씨 앞에 느긋하게 물을 털며 앉자 그는 이를 으득 가시더니 눈에 쌍심지를 켜시고 나를 노려보셨다. 호박색 눈, 짙은갈색 머리에 뿌려진듯 옅은갈색 머리칼이 얽혀있는게 에드는 자신의 아버지를 쏙 빼어닮은 모양이다. 아들이란 무릇 아버지를 닮게 마련이지만 어딘가 씁쓸해지는 현실이다. "스포츠 정신부터 다시 배우고 돌아오도록해" "아드님께 승부욕에 대해 당부를 하시는쪽이 빠를것 같습니다만" 나긋하게 대답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밤은 어둡고 두통은 찾아오고 앞에 앉으신 어르신과 똑닮은 누군가가 떠오른다. 나의 싸가지 없음, 버릇없음, 예의 당연히 없는 대답에 프로스트씨는 눈을 부릅떴지만 난 한량같이 미소를 지었다. 댁의 아들이 어르신 보다 저를 더 좋아했다고 말한적이 있더랬지요. 지금도 그런진 모르겠습니다만 그 엇비슷한 감정을 아직 잡고 있는 모양입니다. 고맙고도 심장 아픈일이지요. 붕대의 매듭은 팔꿈치 안쪽에서 시작되서, 반대쪽에서 마무리가 되어있다. 손마디 부분에서 잡아당겨도 결코 풀리지 않게 꽁꽁 매어 두었다. 그렇게 정성들여서 촘촘히 감았던 매듭을 팔을 빼내어 풀었다. 근처에는 누구도 없었다. 어르신께서 따끔한 가르침을줘서 더이상 악당이 이길수 없도록 해달라는 무언의 부탁들일테지만 이상황이 내겐 고맙다. 스르륵- 가까이서만 보일, 왼손의 각인. 아들손은 매일 보시는지요? "우린 헤어졌어요. 그러니 이제 저를 칼들고 덤비는 살육자로 인식하도록 아드님께 가르침을 주시죠"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웅얼거리듯 대답하는 나를 보는 프로스트씨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놀라워 죽겠지. 심장마비로 저러다 쓰러지는건 아닐까 걱정이 될정도 였지만 어르신이 보통 어르신이 아니기에 그렇게 될것 같진 않았다. 말은 소심하게 우물였지만 표정은 의기양양하게 지어보이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아들이 너를 사, 사랑해서" 더듬더듬 말을 잇지못하고 입을 다물어버리는 프로스트씨 왼쪽손에 눈이 걸렸다. 짙은 검은색의 물결치는 문신. 맙소사, 에드. 너는 내가 밖에 알려지는게 조금도 두렵지 않았단 말이야? 어르신과 나는 용감무쌍한 에드 아야톤의 행동에 함께 놀라며 한참동안 마주보고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에드를 밀어내고 얻은것이 하나 더 있다. 갑작스레 연락을 취해온 미스터 리. 나의 아버지와의 만남. "저랑 같이 있으면 신문에 오르내려요. 할말 빨리하고 가세요" 좋게 오르내린다면 이렇게 삐죽이 가시난 말을 해주지 않을것이다. 집착이라면 누구도 따라올자 없는 언론인들이 미스터 리와 내 관계를 안다면 물만난 고기가 될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국제적으로 '사생아 루이 사하'에 관해 씹어댈것이다. 씹히는거야 이제 일상이니 나는 문제없다. 그러나 그 사생아를 만들어낸 그들의 이야기는 군침이 돌만큼 대단한 스캔들이기에 앞에 앉은 미스터 리의 가정은 아마 파탄날 것이다. 그렇게 되길 바라진 않는다. 원치않는 사생아인것도 모자라 소중한 가정을 파괴시키는 괴물이 되고 싶지는 않다. 왜 나타난걸까? 이사람은. 나와 판박이 처럼 닮은 이남자는. 프론트에서 전화가 왔을때 에드의 팬들이 나를 위해 또 이상한 선물을 보낸걸까 했는데 손님이 와있다고 했다. 그리고 전화상대가 바뀌더니 오랫동안 연을 끊고 있었던 한국어를 들어야했다. 실로 오랜만에 들은 한국어에 난 기겁했다. 죽으려고 트랙에서 미친듯이 질주를 해대는 녀석이 겨우 외국어 하나를 듣고 기겁을 했다니 우습기도 하지만 그말을 하고 있는 남자의 정체에 기겁했다. 다만 만나고만 싶었던 것인지 미스터 리는 단 한마디도 않은체 나를 빤히 들여다 보기만 했다. 소름 돋는다. 나랑 똑같이 생긴 인간이 나를 들여다 본다는것은. "요즘- " 요즘 뭐? 힘겹게 말을 꺼낸 그는 한개의 단어만을 내비췄지만 만나자고했던 이유를 선명히 알수 있는 시작이였다. 흥정의 도구. 그것을 죄책감 없이 대했던 남자. 그래놓고도 제자식이라고 챙기는걸까? 나는 무려 20년 동안이나 재단되어 왔다. 그라는 한사람을 위해. 모든 자식은 부모에게 그들의 마음에 들도록 재단될것을 강요 받지만, 누군가의 모사품이 되기 위해 재단받지는 않는다. 그들은 사랑의 결실이고 아끼고픈 소중한 것이며 동시에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재단되지만 나는 그와 같아지기 위해 재단 당했다. 그래서 내가 돌려준것은 1년에 딱 한번 마치 미스터 리가 그랬던것 처럼 가브리엘라에게 365일 중 단 하루만을 헌사한다. "잘 지내니?" "보시다시피 잘지내요" 미스터 리의 얼굴에선 감정을 읽을수 없었다. 그는 정제된 표정으로 나에게 안부를 물었고 난 비웃으며 대답했다. 댁따위가 도대체 내게 그딴 질문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속마음 같아선 멱살을 잡고 흔들어 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아비였다. 술주정하고 괴롭히고 돈을 강탈해 가도 없는것보다 아비가 있는것이 더 좋다던 속좋은 착한 아이들의 말을 되내이며 난 이를 으득 갈았다. 세상에 머저리가 왜 그리도 많은지 부모가 있는것 만으로도 좋다는 그 순하디 순한말을 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네들에 비하면 나는 훨씬 낫지 않은가. 내가 이렇게 하는것은 배부른 투정이 아닌가. 흥정의 도구든, 만남을 위한 수단이였든 나는 20년간 멋모르고 사랑 받았다. 그것만으로 되지 않았나? 하고 위로하고플때도 있지만 그래도 고집스럽게 그들을 미워하는건 내가 악당이기 때문이라고 둘러대고 싶다. "약속이 있어요. 가봐야겠네요" 더 마주보고 있기가 싫어 일어서려는 나를 그가 불렀다. "사하야" 모래알로 만들어진 강, 사하[沙河]. 모래알 같은 내이름. 자식에게 그딴 이름을 붙여줄때 부터 알아 봤어야했다. 믿음직한 아비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난 그이름으로 불리우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모래더미. 다만 가끔 신기루가 떠올라 그의 존재를 가브리엘라에게 확인시켜주는 도구. 그런데 그거 아는지 모르겠다. 모래로 만든 강에도 생물이 숨쉬며 살고, 식물이 삐죽삐죽하게 나마 자라며,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생기가 넘칠수 있다는거. 미스터 리에게 나는 숨기고픈 존재일 것이다. 그리고 보고싶지 않은 존재일테지. 그래서 유명한 파일럿이 됐을때 으쓱함 보다는 악마적 즐거움이 앞선던 모양이다. 어디선가 보고 있겠지. 자신과 똑닮은 녀석의 종횡무진을. 미칠지경일테지, 20년만 노력봉사하면 다시 볼일 없을줄 알았는데 티비며 신문이며 오르내리니 오죽이나 속이 타들어 가시겠어. "너를 죽으라고 낳은게 아니다" 등뒤에서 퍼지는 그의 말을 모른체했다. 아마도 나를 찾아온 그는 그말이 나의 치기어린 질주를 막을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당신 생각은 틀렸다. 내게 달린다는 것은 이미 삶 그자체다. 죽으려고 시작했지만 진짜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달림으로써 난 숨쉬고 살아갈 수 있다. 그게 정의로운 방법이 아니래도 상관없다. 난 어떻게서든 이기고 싶었고 그래서 악당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붙잡고 싶었다면 이보다 좀더 일찍 왔어야 했다. 사막의 강에서 생물을 살게하고, 식물을 키우고, 비를 내리게하고, 바람을 나부끼게 하는 존재가 나타나기 전에 왔어야 했다. 이미 내게는 믿음직스러웠던 아버지 보다 더욱 소중한 존재가 있다. 소중한 존재는 달리고 있는 내가 모래알 강일지라도 얼마나 많은것들을 품을 수 있는지 가르쳐줬다. 비록 그것을 일깨워준 소중한 상대에게 죽기로 덤비지만, 내가 나 일수 있기위해 등을 돌릴수 밖에 없지만 난 여전히 그를 소중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 죽으려는게 아니다, 죽어도 상관없는것이지. 그게 파일럿이다. 그런맘이 없다면 그만둬야 한다. 달리지 않는 내가 사랑받을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때는 이미 나는 내가 아니다. 그런 상태에서 사랑을 받는다 한들 내가 행복할까? 이미 나란 존재가 사라졌는데 사랑을 받는다 한들 즐거울수 있을까? 그는 시기를 놓쳤기에 딜레마에 빠진 나를 건져낼수 없다. 나를 살리고자 몇년만에 찾아온 아버지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뒤돌아 봤다. 그리고 돌아서며 자신이 막으면 막을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그의 자만심에 비웃음을 던졌다. "뭘 그렇게 써?" 연습 라운딩을 마치고 사탕을 씹어대며 열심히 낙서를 하고있는 내머리 위로 얼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그리고 퍼뜩 정신을 차려 종이를 빤히 들여다 본 나는 스스로를 경멸했다. 정말 추하다. 루이 사하. 너 왜이러니. 정말 콱 트랙에서 돌다가 벽받고 뒈져버려! 종이에는 빼곡히 에드의 전화번호가 박혀있었다. 내가 새겨넣은 에드의 전화번호. 죽어! 죽어! 죽어! 자기 머리를 쥐어박는 나를 보며 얼은 얼굴을 찌푸렸다. "뭐길래 그러는거야?" "갖고싶은 번호야" 그래, 갖고싶은 번호지. 이 번호조차 부럽다. 넌 좋겠다, 쨔샤. 에드의 소유일수 있어서. 네소신 다하면서 그의 것일수 있어서. 아 생각할수록 속꼬이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데 얼이 슬그머니 종이조각을 챙기는게 보였다. 말린다고 아니할 영감님이 아니니 대충 무시하고 음료수 자판기를 향해 걸어갔다. "미친자식, 돌은녀석, 못난놈-!" 어라? 요새 주로 내가 듣는말을 누가 듣고있네? 피식. 난 미소를 비죽 웃으며 소리가 나는쪽을 바라봤다가 눈알이 튀어나올뻔 했다. 에드를 구타하고 있는 프로스트씨가 보였다. 그야말로 구타. 마구잡이로 패는모습. 한두살 먹은 어린애를 팬다면 아동폭행죄로 고소해 버리겠지만 멀쩡하게 다큰 어른인 아들을 사정없이 패는모습이라니. 음료수 먹으러 왔다가 목이 뻣뻣해져벼릴 광경을 목격해 버려서 인상을 구겨버렸다. 웅성웅성 전후사저을 다른사람들도 전혀 모르는것인지 그들은 도대체 왜 천재 에드 아야톤이 자신의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어르신에게 신나게 맞고 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미친자식, 돌은녀석, 못난놈. 도대체 저 세단어로 함축되어버린 길고긴 이야기는 뭘까? 무지막지하게 손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하는데도 에드는 그매를 아뭇소리 하지않고 선체로 맞고 있었다. 프로스트씨가 미쳤구나. 난 그렇게 생각하며 폭행죄로 어르신을 신고해야겠다며 전화기를 빼어들었다, 고만둬버렸다. 내가 무슨자격으로. "저러다 에드 죽는거 아냐?" 거물인 에드의 아버지를 차마 뜯어말리지 못하고 있는 녀석들은 슬금슬금 내눈치를 보며 속삭이고 있었다. 매일 에드를 죽이겠다고 덤벼대는 놈에게야 저런 상황따위는 아무일도 아닌거지라는 것쯤으로 들려 무척 기분이 나빴지만 특별히 해줄말도 없고 하니 모른척 못들은척 바보놀이나 할뿐이다. 모두의 걱정스런 시선속에도 꿋꿋이 모든매를 다맞은 에드는 퉁퉁 부은 눈으로 복도를 빠져나갔다. 이래저래 대단한 녀석이라고 목넘어로 웃으며 난 본래의 목적대로 음료수를 빼먹기 위해 동전을 뒤적였다. 이제 내게 남은건 너희뿐이야. 피트에 홀로남아 바득바득 가리온을 닦으며 뽀득소리가 날때까지 하얀천으로 머신을 문질렀다. 호호- 입으로 김을 불어대며 빡빡 문지르자 안그래도 윤이 번뜩이던 녀석이 더욱 반짝여서 기분이 좋아 '춥' 하고 입술을 잠시댔다가 떨어뜨렸다. 이쁜자식, 잘해라. 이놈. 헤헤헤. 아이, 젠장. 할짓도 참 더럽게 없지. 말 못하는 머신이랑 얘길하고 노냐. 머신이랑 한창 속닥거리고 있는데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얼이겠지 싶어서 관심밖으로 소리를 밀쳐내며 가리온 옆에 세워진 퀘옌을 문질러댔다. 지리할 정도의 집착. 편집증 환자처럼 빠득빠득 닦아대는 내모습이 머신 섀시에 비춰서 좀 울적했다. 이놈들이 나의 날개인것이다. "사하" 열나게 머신을 닦아대는 머리꼭지에 비수를 박듯 꽂혀오는 딱 부러지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얼굴 여기저기에 반창고를 잔뜩붙인 에드가 서있다. 입술에 피딱지가 앉아있고 보이진 않지만 몸 여기저기에 시퍼렇게 멍들었을게 틀림없다. 그러나 투명하게 맑은 호박색 눈도 깍아놓은듯한 오똑선 콧날도 강한선을긋는 턱선도 여전했다. 맞았다 해도 죽을정도는 아니였고, 자신의 아들을 얼굴이 뭉개질 정도로 팰 어르신은 아니였다. 무슨일인가 의아해하며 머신에 맞춰 쭈그리고 있던 몸을 쭉 펴서 일어나자 에드가 자신의 목덜미로 손을 가져갔다. [투둑] 에드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마치 선을 쭈욱- 긋듯, 인연을 끊으려는듯, 이제는 안녕이라는듯, 목에 걸려있던것을 뜯어냈다. 내밀어진 에드의 손에는 언젠가 그가 가져가겠다고 했던 링너트가 줄에 꿰인체 달려있었다. 받기싫어. 온몸으로 거부반응이 올라왔지만 손을 내밀어 받아들었다. 모든것이 죽은듯 긴 적막이 흘렀다. 받아든 손을 뻗은체로 가만히 에드를 들여다 봤다. 알고있다. 에드가 나를 괴롭히려고 이기는것 따윈 아닐것이라는것을. 그건 나역시 마찬가지다. 이기고 싶은것이지 그를 괴롭히는 마음이 주된것이은 아니다. 에드가 원해서 재능이 넘쳐흐르는것이 아니라는걸 알고있다. 다만 에드는 넘치는 재능에 감사하며 자신이 잘하는것에 최선을 다할뿐인것도 알고있다. 나와 사귄다고 해서 일부러 져줄수도 없는것이 에드의 입장이라는것 또한 잘 알고있다. 돌려주지마. 팔을 힘겹게 내리며 속으로 우물 거렸다. 만신창이가 될때까지 얻어맞았다고 뽀르르 달려와 내게 링너트를 돌려주는것이 아님을 알고있다. 적당히 봐주는 때는 끝났다. 이것은 제대로 싸워주겠다는 선전포고이며, 나와 마찬가지로 그만 사랑하겠다는 표현일거다. 아무런 말도없이 링너트만 남긴체 그는 돌아섰고 나는 죄없는 바닥만 노려보며 한참을 서있었던것 같다. "안녕하세요" 퀄리파잉 이틀째를 무사히 마치고 경기당일이 되어 피트에 들어섰을때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 한가운데 모르는 사람이 있었고 난 '누구냐'는 눈으로 낯선이를 쳐다봤다. 짙은갈색, 고동색의 눈 닮은구석이 하나도 없는 색감이지만 얼굴에 잔영이 남듯 살짝 드리워진 에드의 얼굴이 뭍어나는 낯선이는 잘도 웃으며 내게 인사를 했다. 닮은 얼굴로 비슷한 선을 그으며 웃는 얼굴이라 깨름직하다. "누구야" 인사따윈 무시해버리고 누구냐고 따지듯 묻자 뻘쭘해진건지 낯선이는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세컨드 드라이버야, 인사 좀 제대로해라" 내가 너한테 물었어, 얼? 왜 네가 대답하고 그런대. 흥- 콧방귀를 끼며 새식구인듯한 세컨드 드라이버를 노려보자 말없이 우물쭈물이기만 한다. 아까처럼 웃으며 넉살좋게 다시 굴어보시지. 스르륵- 그를 째릿 노려보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프로필을 들여다 봤다. 돈좀 생겼나보지, 얼? 세컨드를 들여놓게. 와드득. 사탕을 씹어먹으며 프로필을 쭉- 살피던 나는 이름란에서 인상을 그었다. "자이컨 프로스트" 앞이름 말고 뒤에 있던 프로스트가 무척 거슬렸다. 뭐야, 너? 정체를 불어라. "너 프로스트냐?" 질겅질겅 사탕을 우겨씹으며 신경질적으로 묻자 자이컨은 그렇다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새꺄, 너 프로스튼데 왜 우리팀에 겨왔냐? 기분도 나쁜데 한대 패버릴까란 얼굴로 자이컨을 계속 노려보는데도 얼은 모른체 하고있다. 저놈의 능구렁이 도대체 무슨 속셈으로 프로스트를 끌어들인거야? 씨발, 볼수록 닮았잖아. 에드를 닮은얼굴로 우물거리는 모습이 보기싫어 휙 돌아서 나와버렸다. 아, 경기고 뭐고 다때려치고 도망해버리면 좋겠다. 목에 걸린 링너트가 거슬렸다. 걸을때마다 차가운 금속의 이물감을 전해주는것이 싫었다. 에드놈 속도좋지 어떻게 이런걸 목에다 걸고 다니냐? 괜히 죄없는 에드를 씹으며, 재수없는 에드의 동생 자이컨도 덩달아 씹어줬다. 와드득. 사탕이 맛이없다. 플라스틱으로 만든것 처럼 딱딱하고 무맛이다. 젠장. [기이이이이이이이이--------------------------이-------ㅇ] 프로스트팀 2대와 우리팀 2대가 정신없이 뒤섞인체 앞을향해 달리고 있었다. 코너링도, 직선코스도 완벽하게 커버하며 달리는 자이컨의 실력은 고작 18살 풋내기가 하는 수준이라기엔 기가막힐 정도로 환상적이였다. 이러다가 퍼스트 뺏기고 세컨드로 주저앉겠다 싶을 정도다. 그러나 고맙게도 이 마음씨 좋은형제는 나를 위해 봉사하는 것인지 서로가 서로를 물고 달리고 있었다. 이유는 무엇인고 하니, 다 나를 키워주신 능구렁이 영감탱이 얼의 수작이다. 얼의 지시에 따라 피트인 했던 자이컨은 무려 한바퀴나 멈춰서 있다가 트랙으로 돌아올수 있었다. 얼은 파렴치하게도 내뒤를 바싹 따르던 에드 앞으로 그의 동생인 자이컨을 밀어넣었다. 지금 함께 트랙을 돌고있지만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이컨은 한바퀴나 뒤쳐진체 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에드는 트랙으로 돌아올때 무식하게 자신의 앞을 파고든 동생의 행동을 혼이라도 내는듯한 기세로 맹공을 퍼부었고 자이컨은 나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여유있게 에드의 앞을 휘청이며 달리고 있었다. 잘하면 내년에 해고될지도 모르겠군. 난 키득거리며 트랙을 질주했고 형제의 난투극을 보는 관중은 흥분의 도가니탕에 퐁당 빠져 광분중이였다. 무뇌아들 같으니라고. 형제의 피끓는 전투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들은 왕왕 울어댔고 그런것 따윈 신경도 쓰지않은체 나는 잘 달렸다. 어째 재미가 없다. 얼은 이걸노린것 같지만. 이런식으로 달린다면 더 이상 욕먹을일 없겠다. <자이컨, 뭐하는거야?> 에드는 자신의 동생은 코너 끝까지 몰아붙였지만 자이컨은 아무렇지도 않는것인지 타이어로 거의 선을 맞문체로 달리고 있었다. 위험한짓이다. 저러다 날아가면 쥐뿔도 남는거 하나없다. 난 자이컨을 불렀고 그는 대답이 없다. 피트에서 나몰래 다른 작전이라도 내린건가 했지만 얼의 말을 들으니 그런것 같지도 않다. <자이컨!> 얼의 커다란 부름에도 자이컨은 말이 없었고 난 그의도를 알아챘다. 지금 에드와 바싹 붙어 달리고 있지만 자이컨은 힘을 비축하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 랩 헤어핀에서 뒤따르는 차량과 거의 붙듯이 달리다가 가속을 올려 순간적으로 튕겨지듯 앞으로 내지르는 사냥꾼의 맹공. 자이컨은 내가 즐겨하는짓을 준비하고 있었고 얼도, 나도 바보가 아니였기에 금방 알아봤다. 심지어는 관중석의 얼간이들도 알아본 모양이다. <잘하는짓이군> 얼에게 하는 소린지, 자이컨에게 하는 소린지 모를 혼자만의 말을 주절인후 난 속도를 급감했다. 거의 1미터 가량 떨어져있던 자이컨과 나사이의 거리는 바싹붙는 모양새가 되어버렸고 나의 미친행동에 자이컨은 휘청거렸다. 마지막 랩 헤어핀이 되었지만 코앞에 있는 나를 자이컨은 물지못했다. 에드가 앞에있고 내가 뒤따르는 중이였다면 분명히 난 그를 물었을것이고 역전에 성공했을것이다. 그런데 자이컨은 뒤에 딱달라 붙어서 물어버리는 행동따윈 생각도 못한건지 피니쉬 라인까지 얌전히 달렸다. 내가 고의적으로 로이든을 막아서서 에드를 앞으로 멀찍히 둔체 나중에 튕겨나가듯 내질러 물어버리는것은 따라할수 있을지언정, 목숨과 직결된 바로 앞에서 내지르는 상대를 물어버리는짓 따위 아직 마음약한 자이컨은 못한것이다. 그러나 나는 팀원이 덤비려고 했다는 사실에 격분했고, 그렇게 열이뻗친 내게 나무랄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은 죄지은 사람마냥 내눈치만 봤고 자이컨은 말이 없었다. "이거받아, 사하" 얼은 열받은 나를 달래려는듯 상자하나를 내밀었고 거친 행동으로 그것을 받아든 나는 갈기갈기 상자를 여보란듯 찢어댔다. 핸드폰? 손바닥만한 신형 핸드폰의 폴더를 열고 전원을 켰다. 띠리리링- 하고 울리는 요란스런 시작음과 함께 액정에 번호가 떴다. 에드의 번호. 갖고싶던 그 숫자들의 조합. 대충뭐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짐작했다. 둘중에 누군지 알아내는것만 남았다. "누구한테서 이번호 받아낸거야" 상자를 내민것은 얼이였는데 질문은 자이컨의 얼굴을 보면서 했다. 자이컨은 얼을 힐끔쳐다 봤지만 '한놈만 패' 라는 말에 무척 동감하는 편인 나는 한번 찍은 자이컨의 면상만 빤히 들여다 봤다. 자이컨은 입이 타들어가는듯 움찔거렸다. 트랙에서 미친듯이 달릴때는 그렇게 용감무쌍해 보이더니 아직 어리구나. 가엾은것. 에드인가, 아니면 프로스트씬가? 난 꼭 답을 얻어내고팠고 그랬기에 미친듯이 자이컨을 노려봤다. "번호는 형꺼지만, 소유주는 아버지에요" 아하, 땡큐. 자이컨은 망설이며 대답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어르신이 만만찮은 사람이란건 알았지만 이렇게 지독하게 굴줄은 몰랐다. 얼은 내게 선물을 주기위해 번호의 소유주를 찾아가 의뢰했을것이다. 이바닥에 잔뼈가 굵은 얼정도라면 프로스트씨도 쉽게 무시는 못했을터이고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합의를 봤겠지. 번호를 주는 대신 자신의 아들하나를 세컨드 드라이버로 우리팀에 데려가는 조건으로. 결국은 자신의 소중한 아들내미들을 치고박고 싸우는 꼴로 만들었지만 사실 목적은 우리팀으로 들여보낸 아들을 이용해 나를 날려버리실 계획이였던 모양이다. 무서운 영감탱이. 이제 확인작업 끝났으니 화풀이를 해야겠지. 나는 이를 아득 갈았고, 자이컨 인상을 휙- 그렸다. 너 오늘 죽었어.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난 피식 비웃음을 머금고 질문했고 자이컨은 무슨 그런말이 있냐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달리는거 아닌가요?" 얼씨구, 말은 잘하네. "그럼 왜 나한테 안덤볐어?" 바로 코앞에 있는데 박아버렸으면 하늘로 붕 날아가버렸을텐데 왜 안그랬냐고, 멀리서 노렸다가 무는짓은 멋있게 보이긴 하지만 상대방에게 큰 타격을 주진 않는다. 물론 어떤식으로 가서 부딪히던간에 머신은 아작이 나겠지만서도. 난 있는데로 거만을 떨며 자이컨을 닥달했고 곰처럼 듬직해뵈는 인상으로 자이컨은 무덤하게 대답했다. 에드 닮았다는거 취소다. 에드는 저렇게 둔한짓 안한다. 그리고 저렇게 등신같이 굴지도 않는다. 답답하게 굴기는. "본대로 하려고 했을 뿐이에요" 본대로 한다고? 나는 목숨을 걸고, 에드가 나 좋아하니까 비켜줄거야 스스로 자아도취에 빠져서 미친놈인척하고해야 할 짓을 지금 너는 본대로 하려고 했을뿐이라고 했냐? 진짜 이집안 피를 뒤집어 쓰고싶구만. 하! 얼 만큼이나 능구렁이 같은 어르신은 나를 아주 날려버릴 셈은 아니셨는지 멀리서 무는것을 주문한 모양이였다. 그나저나 이시발, 고작 18살 먹은놈이 내가 목숨을 담보로 하는 곡예를 본대로 한것뿐이라니 정말 짜증난다. 니네 천잰거 지금 나한테 와서 자랑하는거지!?!!! "너 죽어도 상관없어?" 난 고개를 짤랑짤랑 흔들며 물었고 자이컨은 눈을 황망히 굴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요령없이는 할수없는짓을 그저 본대로 한다는 말자체가 그리 쉬운것도 아닐뿐더러 고작 18살 먹은놈이 본대로 한다는말이 무척이나 거만스럽게 들렸지만 이렇게 무나, 저렇게 무나 목숨을 걸고 해야하는 짓임은 틀림없었기에 난 자이컨에게 진짜 죽어도 상관없냐라고 다시 물었다. "상관없어요" 이런 싸가지라곤 개뿔도 없는 놈을 봤나! 젠장, 재수없기로는 에드도 자이컨 못지 않지만 오늘부로 제일 재수없는건 너다. 우드드득. 난 손을 풀듯 깍지를 낀채 뼈를 투둑거렸고 자이컨은 인상을 슬쩍 그렸다. 죽어도 상관없다고? 뭐 이딴게 있어. "그래? 그럼 내가 죽여줄게" 난 코웃음을 한번치고 자이컨의 얼굴로 주먹을 내질렀다. [퍽-] 둔탁한 살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고, 곧이어 우당탕탕 물건 넘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내가 다짜고짜 죽여준다며 자이컨의 얼굴을 때리자, 놀란 미캐닉들이 달려들어 내게 맞고 비틀거리는 자이컨을 붙들기위해 그의 뒤쪽으로 달려갔지만 전혀 소득없이 모두 한데 뒤범벅되어 나자빠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등신들. 태권V는 태권도 3단이다. 태권도 3단이면 악의 무리를 무찌르고, 정의를 수호한다. 나는 태권도 4단이다. 3단까지는 민간인들도 꽤 갖고있는 단수라면 태권도 4단은 개폼떠는 사범들이 주로 갖고있는 단수다. 대리석도 격파하고, 송판은 박살을 내는 주먹이 자이컨의 얼굴에 날아들었다. 죽어도 상관없다는데 오늘 바싹맞고 그생각 뜯어고치는게 좋을거다. 뭘 알고 그런말을 하냐? "쿨럭" 내게 얼굴이 뭉개질정도로 맞은 자이컨은 기침을 쿨럭이며 일어났고 난 상황 봐주지 않고 날아올라 자이컨에게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정신없이 바꿔차대는 날라서, 발차기를 선보였고 한대맞고 가까스로 일어났던 녀석은 발차기를 연타로 맞고 완전히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권투선수들이 글러브를 끼는 이유는 맞는 선수의 얼굴이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때리는 선수의 손을 보고하기 위해서다. 경기때는 하얀붕대를 오른손에도 왼손에도 촘촘히 감싸서 장갑을 대신한다. 오리지날 오른손 잡이인 내 오른손에 얻어맞고, 발에 신나게 채인 자이컨은 넝마가 된지 오래였다. 아프냐? 난 즐거운데. "아직도 죽고싶냐?" 난 붕대가 감싸여진 손을 쓸며 자이컨에게 물었고 녀석은 고개를 도리짝 흔들었다. 줏대없는놈. "억울하면 고소해" 정나미 뚝덜어지는 목소리로 말한뒤, 휴대폰을 챙겨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자이컨은 신나게 패줬고, 얼은 그것 때문에 기겁했을것이고, 데이빗은 말할나위 없이 내게서 뚝 떨어지고 싶을것이다. 그래, 그래 나만 나쁜놈이지. 양손에 빡빡하게 붕대감고 인상그린체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다 죽여버릴듯한 암흑의 기운을 내뿜어대자 달걀세례 던지는게 취미가 된 군중조차 어찌 반항 한번 하지않고 오늘은 조용했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술한잔, 술두잔, 술세잔, 쭉쭉 스트레이트로 독주를 들이키며 혼자서 자축했다. "나 완전히 채인거지," 만취에 가까울정도로 정신이 헤까닥 나가버린 나는 호텔 전화기를 들고 꾹꾹꾹 에드의 번호를 눌러서 음성메세지를 남겼다. 에드의 번호, 오늘받은 갖고 싶었던 그번호. 발음이 완전히 꼬여있는 상태였지만 난 꿋꿋하게 전화기를 든체로 청승을 떨었다. 술먹으면 용감하고 무식해지는 무뇌아가 되는것은 모든이의 공통점이다. "에그야-, 보고싶어" 우리달걀 뭐하니? 피식피식 웃으며 저장버튼 꼭 누르고 수화기를 내려둔체 그대로 잠들었다. 지가 헤어지자고 한 주제에 나는 왜 이모양으로 질척거리고 있는걸까. 목에 걸린 링너트보며 징징거렸다. 새꺄, 너도 내목에 걸려있는것 보다 에그놈 목에 걸려있고 싶지? 재수없는 새끼. 아, 링너트는 여자였지. 오, 쏘리. 바꿀게. 이기집애야, 너도 내목에 걸려있는것 보다 에그놈 목에 걸려있고 싶지? 재수털리는 가시내. 로 정정한다. 술 마시고 헤어진 애인한테 전화걸어서 주정하는 짓만큼 추한게 또 있을까 했는데 나는 어제 아예 대놓고 마음껏 한모양이다. 아침에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보니 새로받은 휴대폰에 메세지가 어디보자 5개나 들어와 있다. 술먹고 메세지 남기고 자다가 일어나서 또 술먹고 메세지 남기고 자길 무려 다섯번이나 반복했다니 이런 거지같은 경우가 다있나! 절망감에 물든 얼굴로 어질러 놓은 주위를 대충 치우고 전화를 들어 음성을 확인했다. "나 완전히 채인거지, 나쁜새끼. 에그야- 보고싶어. 진짜 재수없어. 씨발, 너 뭐그렇게 잘났어? 나없으니까 행복해 미치겠지?" [탁-] 전화기 배터리를 빼버렸다. 오, 하느님 맙소사. 망가져도 이렇게 망가지다니 혼자서 아주 땅파서 맨틀까지 뚫고 들어갔구만. 깔끔 담백한 인간관계를 그토록 선호했건만 나는 그냥 일반인이였던 모양이다. 죽어! 죽어! 죽어! 썅! 그리고 죽어라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지만 슬그머니 고개를 쳐드는 궁금증과 호기심에 빠르게 옷을 챙겨입고 연습 라운딩을 하고 있을, 어제 나에게 죽이 되도록 터진 자이컨을 만나기 위해 방을 나섰다. "불어-" 딱 하루 만난사이지만 무척 많은 일이 있었던고로 자이컨과 나는 꽤 이상한 의미에서 친숙해졌다. 물론 자이컨은 아침 일찍 내얼굴을 피트에서 보곤 하얗게 질린체 입을 꽉 다물어 버렸지만 나의 사랑스런 주먹의 움켜쥠에 어쩔수 없이 내옆에 딱 붙어 앉아서 현재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볼수도 있다. 모름지기 모든현상은 생각하기 나름인것이다. "불라니까" "안돼요" 거의 반울음소리가 된 자이컨은 테이블을 부여잡으며 안된다고 했다. 안되기 뭐가 안돼, 새꺄. 난 어여쁘게 움츠러드는 자이컨의 목덜미를 쥐고 협박했고 주먹을 내보여줬다. 하얗고, 하얗게 질려갔지만 자이컨은 의외로 강단있게 나의 협박을 거부했고 그럴수록 나의 성질만 건드리는 꼴이였지만 어제 그렇게 맞고도 녀석은 파악을 아직 못한 모양이였다. 아, 쥐방울만한게 사람 열받게 하네. "너 죽는다" 잔뜩 깐 목소리로 주먹 꽉 쥔체로 협박하자 자이컨은 '안돼요' 라며 테이블로 곤두박칠 쳤다. 그에 아랑곳 하지 않고 난 자이컨 앞에 하얀종이와 펜을 내밀었고 녀석은 눈을 꾹 감은체 번호들을 삐뚤빼뚤하게 썼다. 오호, 땡큐! 헤어졌으면 그것으로 끝! 이라고 더이상 치근덕 되는건 서로에게 추할뿐이라는 말이 정설처럼 돌아다니고 정의처럼 명명되어 있지만 나는 헤어진 애인의 동생을 주먹으로 협박해서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헷헷헷. 악당처럼 웃어보인 나는 번호가 써진 종이를 즐거운 마음으로 입수했고 자이컨은 절망에 빠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 봤지만 무시했다. 자고로 세상은 주먹으로 통하는 법이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방금 도착한 나에게 종업원은 굳은 목소리로 질문을 해왔다. 자리에 앉으며 창밖을 한번 내다본 후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는걸까하는 걱정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수많은 취재진. 통유리 건너에 있는 수많은 기자들. 바글바글하게도 모여있다. 자이컨에게서 강탈한 에드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을때 그는 무척 당황했었다. 사하라고 똑부러지게 부르던 그 어느날과 사뭇다르게 '루이?' 라며 환청을 들은듯 멍하게 내이름을 물어왔다. 나는 약 3시간 동안 전화기 앞에서 왔다리, 갔다리했던 망설임 따윈 까맣게 잊어버리고 고압적인 목소리로 그에게 약속장소와 시간을 불러주고 나오라고 명령을 한뒤 전화를 끊어버렸다. "저거 네가 부른거야?" 자이컨은 내게 맞았다. 아주 신나게. 그 며칠전 에드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맞았다. 무진장 쎄게. 자이컨의 상처가 아물대쯤 나는 에드에게 전화를 걸기로 결심했고 대회를 며칠 앞둔시점 라이벌인 두사람의 만남은 글쎄다, 기사 거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에드는 깔끔하게 정장을 빼어입고 나왔고 나역시 그에 못지 않는 빤질한 옷을 입고 나왔다. 다만, 에드는 지금이라도 당장 리맨들이 가득있는 회사 책상을 하나 차지해도 될 진중한 옷이라면, 나는 무슨 날라리 탕아처럼 입고 나왔다는게 달랐다. 내가 글치뭐. "카페 주인이 취재의뢰 했나봐" 에드는 난처한듯 밖에서 셔터를 눌러대는 그들이 온 이유를 설명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래. 취재라. 아마도 한창 슬럼프인 에드 아야톤의 일상에 관한 기사는 의외로 비싸게 팔리는가 보다. 돈 놓고 돈 먹는게 이세상 돌아가는 이치지. 약속 시간보다 약 20분쯤 늦은 나는 그에게 사과를 하기로 했다. 밖의 바글거리는 기자들이 더 모인 이유는 내가 늦었기 때문이기도 할테니까. "우회전 차선에서 직진으로 가려고 잠깐 정차했더니 뒤따라 오던 녀석이 '시발, 개새끼' 라고 욕하길래 손좀 봐주느라 늦었어" 마치 사귀던 그때처럼 느긋장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자 에드는 조금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운전중에 말이다 욕하는 것들 한데 몰아넣고 다 갈아버려야 한다. 어디서 욕질이란 말인가. 사람이 실수도 할수있고, 조금 천천히 갈수도 있는 법이지. 그렇게 아등바등 달려봤자 1,2초 밖에 일찍 못간다는걸 모르는걸까? 지들이 무슨 0.001초를 다투는 포뮬러 원 파일럿도 아닌 주제에 그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지금도 봐라. 나한테 욕하니까 으슥한 곳에 끌려가서 두들겨 맞느라고 시간 날려, 아파서 서러워, 병원가니 돈들지, 괜히 호기로 욕했다가 배로 욕먹으니 속상하지 않나. "무슨일로-" 깊게 쉼호흡을 한 에드는 내게 물었다. 망설임이 담김 질문. 음, 이해해. 헤어지자고 난리친 놈이 약속 덜컥 잡더니 20분 늦은 주제에 하하호호 이리저리해서 늦었어, 에그야 라며 떠들어대니 황당하긴 하겠지. 거기다 저기 저 번쩍거리는 섬광들. 아, 정말 거슬린다. 에드의 물음에 대답을 하듯 난 주머니에서 조그만 트로피 하나를 꺼냈다. 그것은 내 엄지손가락 만한것으로 언젠가 목에 걸린 링너트와 바꾸었다고 봐도 무방한 전력이 있는것으로 에드에게 꽤 뜻깊은 트로피였다. 더불어서 내게도 뜻깊은 트로피다. "받아" 링너트를 돌려받았으니 나도 주는거야 라는듯 내가 차분하게 트로피를 내밀었다. 나무 트로피가 자신의 앞으로 쓰윽- 밀려오는걸 보는 에드의 표정은 처음보다 더욱 굳어져 있었다. 눈썹이 꿈틀하고 한번 뒤틀린것 같기도 했고, 꿀떡하고 목이 울린것도 같았다. 받으라고 내민 트로피를 빤히 들여다 보는 에드를 관찰하며 나는 링너트를 받을때 나도 저랬을까하며 웃었다.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해. 늦은것도 미안해. 이만 가볼게. 조심히, 잘들어가" 오래된 친우를 만났다가 헤어지는것 처럼 다정하게 끝인사를 하고 몸을 일으켰다. 에드는 여전히 굳은체로 나무 트로피를 노려보고 있었고 그것이 한동안 지속될것 같다고 생각해 나는 미련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의외로 일반도로에서 운전하는것은 쉽기도 했고, 어렵기도 했다. 쥐뿔도 달리지도 못하는것들이 왜그리 속력을 내려고 하는건지 평범한 전륜구동차를 몰고가는 내가 만만한건지 툭하면 나를 추월해가는데 그때마다 속이 따끔따끔한것이 즐겁지 못했지만 난 일반도로에서 굳이 속도낼 필요가 없다며, 이건 직업병이라며 스스로를 열심히 다독이며 내갈길 가는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조용히 운전을 했다. 오늘은 드물게 내게 무려 '시발, 개새끼' 라고 욕하는 놈이 있었기에 그냥 보내줄수 없어 한방해 추월해서 그 싸갈머리라곤 벼룩만치도 없는 놈의 차앞에 '끼이이익-' 괴소리를 내며 돈주고도 쉽게 볼수없는 급커브 후 완벽하게 정지하기를 눈앞에서 생생하게 선보인 뒤, 놈을 끌어내려 으슥한 골목으로 끌고가 패준것은 중차대차한 일이 있는 날 욕먹고 가만있을수 없었기 때문이다. 밖은 여전히 북적이는 기자들로 가득했다. 변함없이 왼손에 하얀붕대를 감고나온것이 상당히 위험스러워 보였는지 그들은 쉽사리 내게 질문을 던지지 못한체 안에 남아있는 에드를 찍어대느라 바빴다. 걸어가며 슬쩍 노트북을 투닥이는 어느 파파라치의 내일자 기사를 훔쳐보니 '슬럼프에 빠진 에드에게 사하 트로피 선물' 이라며 큼지막하게 글씨를 박아넣고 있다. 아주 소설을 써라. 소설을 써. "고백이야, 등신들아" 혼자서 속살거리며 난 비죽이 웃었다. 트로피 아래에는 에드가 예전에 자신의 번호라고 새겨놓은 까슬한 숫자들이 남아있다. 그런데 지난 대회 우승 축하의 의미로 얼에게 나는 그 번호가 등재된 휴대폰을 선물로 받았다. 그러니 이제 그 트로피 아래에 새겨진 번호는 내 전화번호다. 그것도 직빵통화 가능한 번호-!! 너는 알까? 거기에 새겨진 번호가 이제 내 번호라는걸. 바닥에 내 전화번호 있어. 너는 알까? 트로피를 돌려주는게 아니라, 고백하는거란걸. 혼자만의 고백을 한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일반도로 주행을 또 한번 해야하는 것이 난감하다는듯 이마를 쓸었다. "전화해, 에드" 속으로 한마디를 삼킨것도 같다. 빨리 전화안하면 확 밤길에 매복하고 있다가 덮쳐버린다. 라고. 완